잃어버린 시급을 찾아서

홍덕구(동국대)


  나는 시간강사다. 시간강사는 ‘시간+강사’다. 과문한 탓에 나는 접두어로 ‘시간’이 붙는 다른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시간농부, 시간교수, 시간의사는 없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제로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에도 ‘시간’이라는 접두어는 붙지 않는다. 시간알바? 역시 이상하다. 더 정확한 용어를 쓰자면 나는 ‘시간제 강사’에 가까울 것이다. 시간강사보다는 ‘시간제 강사’라는 용어가 시간 단위로 강의료를 받는 강사라는 나의 상태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는 것은 시간강사라는 표현이 이 노동의 어떤 부분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 행정상 나의 고용계약은 학기 단위로 맺어진다. 매 학기 시작 전에 작성하는 강사 위촉계약서에는 나의 시급과 노동시간, 고용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주당 세 시간, 시급 사만 오천 원, 본 계약은 개강일부터 종강일까지 유효. 나와 대학 사이에 맺어진 이 계약은 내가 제공해야 하는 노동의 총량을 명시하고 있으며 대학은 결코 계약서에 명시된 것 이상의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대학은 나를 학기 단위로 고용하고 시간 단위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불일치에서 무급노동이 발생된다.
  하나의 강의가 한 학기 동안 제대로 운영되려면 최소한 강의 시간과 동일하거나 그의 몇 배쯤 되는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해당 강의를 맡을 만한 능력, 즉 학위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몇 년 간 투자했던 시간과 돈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강의를 준비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비용만이라도 강의료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개강일부터 종강일까지만 유효한 대학과 나의 계약관계에 따르면, 개강 전부터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다음 학기 강의를 준비할 의무가 나에게는 없다. 내가 받는 강의료는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시급으로 계산되므로 이것은 분명한 가외노동이자 무임금 노동이다. 더구나 공들여 준비한 강의가 폐강될 때의 물적,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공산품을 만드는 업체가 다른 업체에 부품을 주문해 놓고 부품 값은 제품이 팔리는 것을 보고 주겠다고 하는 셈이다. 제품이 잘 팔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시장 출시조차 못 하게 된다면 부품 제조업체는 부품 대금을 포기해야만 할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받아내야만 할까? 하청업체에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원청이 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이런 경영방식,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닌가? 강사노조가 활성화된 어떤 국립대에서는 매 학기마다 ‘폐강 보조금’이 책정된다. 일정한 금액이 학기별로 책정되고, 맡았던 강의가 폐강된 강사들이 이를 동등하게 나눠 가져가는 식이다. 교육부는 평단사업 말고 이런 제도를 장려해볼 생각은 없는가?
  무급노동은 종강 후, 즉 계약 종료 후에도 발생한다. 잠시 학부생의 입장이 되어 보자. 어떤 강의에서 출석 꼬박꼬박 하고, 과제 열심히 하고, 시험도 제법 괜찮게 치른 것 같은데 학점이 생각보다 좋지 않게 나왔다면? 성적 입력 오류가 의심된다면? 담당 교강사에게 성적에 대해 문의하는 것은 수강생의 당연한 권리이다. 이 권리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다만, 그렇잖아도 정신없이 바쁜 학기말에 밀려드는 성적 관련 요청들을 처리하다 보면 ‘이건 가외노동인데’라는 생각이 종종 들 뿐이다. 나와 대학의 고용계약은 종강일을 기점으로 종료되며, 내가 받는 대가는 ‘시간당’ 강의에 대한 것뿐이다. 채점, 보고서 피드백, 성적 정정 요청에 대한 응대 등 종강 후까지 이어지는 노동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무급노동으로 인식된다. 나 자신조차도 이것이 무급노동, 가외노동이라는 것을 자주 잊게 될 정도니 대학이 이 노동들에 대한 대가를 순순히 지급해줄 리 없다. 내가 정말 ‘시간제 강사’라면 이런 종강 후 노동에 상응하는 임금 또한 시급으로 쳐서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강사다.
  2011년 고등교육법 개정 이후 ‘공식적으로’ 시간강사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대학에는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에 시간을 팔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만 대가를 받는다. 잃어버린 시급을 찾고 싶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9: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