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에 대한 강단 역사학의 비판

강력한 힘을 가지고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고대국가가 한국사에 존재했다고 보고, 그러한 고대국가의 존재를 매우 강조하는 입장은 오늘날 대중들에게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만화, 드라마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에는 이러한 입장을 바탕에 깔고 있는 문화콘텐츠들이 1990년대 이래로 상당수 등장한 바 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현세의 만화 『천국의 신화』,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다분히 쇼비니즘적인 이러한 입장이 단순히 대중문화콘텐츠에 흥미를 더하기 위한 요소로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중역사서를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강단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이라고 규정하면서 쇼비니즘적 재야사학의 입장에서 해석된 고대사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덕일은 자신의 대중역사서와 대중강연을 통해 한국의 주류 사학계는 식민사학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의 저서에서는 유사한 주장을 하면서, 강단 역사학을 ‘매국의 역사학’이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이덕일,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만권당, 2015).
이덕일로 대표되는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에 대해, 강단 역사학계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역사비평』은 제114호(2016년 봄)와 제115호(2016년 여름)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연속기획으로 각각 3편의 논문을 실었다(이 기획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이 기획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논문의 저자들은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을 ‘사이비 역사학’으로 규정하며, 이들의 고대사 왜곡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학문의 범주를 벗어난 쇼비니즘적 재야사학은 ‘사이비 역사학’

우선 눈에 띄는 연구는 쇼비니즘적 재야사학을 ‘사이비 역사학’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일종의 ‘역사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는 기경량의 ｢사이비 역사학과 파시즘｣(제114호)이다. 기경량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옹호하는 세력이 ‘역사 파시즘’의 한 축이라면, “우리나라 상고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며, 과거 국가의 국력과 영토에 이상 집착하는 일련의 비합리적인 행위들”이 다른 한 축의 ‘역사 파시즘’이라고 본다(220쪽).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이미 학문적 범주를 벗어났기 때문에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용어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사이비 역사학’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사료의 조작을 시도했으며, 둘째, 사료 조작을 바탕으로 대중선동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경량은 ‘사이비 역사학’이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이비 역사학’은 박정희 정권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따른 국정 교과서의 고대사 내용에 불만을 가진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대종교 신도로서 단군과 고조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은 1975년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하여 강단 역사학계에 대한 공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고조선 역사 가운데 1천 년 이상이 일본인들에 의해 상실되었다는 것, 단군과 기자는 실존인물이고 그 영토는 중국 북경에 이르렀다는 것, 왕검성은 중국 요령성에 있었고 낙랑군은 북경에 있었다는 것, 백제가 3~7세기에 중국 동해안을 통치했다는 것, 통일신라 국경이 한때 북경이었다는 것, 고구려·백제·신라가 일본 문화를 건설했다는 것, 여진도 우리 종족이라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주장의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역사관은 최근의 ‘사이비 역사학’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기경량에 따르면, ‘사이비 역사학’의 등장은, 일제강점기 식민주의 사학의 주요 이론 가운데 타율성론에 해당하는 ‘반도적 성격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한국사의 무대가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반도적 성격론에 대응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적 성격론에 대한 근본적 반론은 자의적으로 적용된 지리적 결정론의 비합리성을 폭로하는 것이고, 이는 이미 강단 사학계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식민주의 사학의 반도적 성격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사이비 역사학’인 것이 기경량의 주장이다.


한사군 재(在)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이 아니다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자들은 광대한 고대영토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특히 한사군(漢四郡)의 일부가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보는 ‘한사군 재(在) 한반도설’을 비판하면서, 한사군이 현재 중국의 하북성(河北省) 난하(灤河) 유역에 위치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사군 한반도설’이 곧 ‘식민사학’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체로 ‘한사군 한반도설’을 인정하고 있는 강단 사학자들을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한다. 『역사비평』의 이번 기획에 실린 6편의 논문들 가운데 3편은 이런 한사군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위가야의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제114호)는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과는 달리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비 역사학’은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안으로 비정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학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사군 한반도설’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발견된다. 우선, 중국 사서의 여러 주석서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조선 전기의 역사서들에서도 이런 입장이 드러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역사지리학적 차원에서 한사군 위치 비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에도 상당수는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했다. 물론 요동설이나 요서설도 있었지만 이는 당대에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한사군 한반도설’이 곧 ‘식민사학’이라는 ‘사이비 역사학자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한사군의 위치가 요동 혹은 요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게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위가야는 한사군 위치가 요동이나 요서에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기록은, 여러 사료를 통해 보았을 때 “군현이 옮겨진 결과를 기록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243쪽), 한사군 문제에 대해 ‘사이비 역사학’이 범하고 있는 오류의 상당부분은 바로 이러한 ‘교군(僑郡, 옮겨진 군)’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위가야는 ‘사이비 역사학’이 여전히 식민주의 사학의 양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한사군의 성격을 식민지로 규정했던 일본인 식민주의 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사군을 식민지로 보면서, 한사군의 위치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이비 역사학자’들에게서는 “중국의 식민지였던 한사군이 현재 우리 영토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엿보인다고 한다(246쪽).


낙랑군은 평양 일대에 위치했었고, 근대적 식민지도 아니다

안정준의 ｢오늘날의 낙랑군 연구｣(제114호)는 한사군 가운데 하나였던 낙랑군(樂浪郡)의 위치가 오늘날 평양 일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고 있다. 위가야의 논문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낙랑군이 한반도 내, 특히 평양 일대에 위치했다는 설은 조선 후기에 성립되어 이어진 것이다. 특히 20세기에 들어 고고자료가 발굴되면서,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낙랑군의 중심지가 평양 일대였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통설로 자리 잡는다.
물론 낙랑군 고고자료 발굴은 초기에 일제가 주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훨씬 더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고, 학계에서 특히 주목하는 고고자료들 역시 해방 이후 발견된 것들이다. 이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주장, 즉 ‘현재 학계는 총독부 주도 발굴 자료만을 내세워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한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고고자료들은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안정준에 따르면, 강단 역사학자들은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통해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낙랑군이 지배층인 중국인(한족)과 피지배층인 토착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보았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달리, 한국 연구자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토착민의 전유물이 지배층 무덤 내에서 다수 출토되었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결국 그간의 낙랑군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는, 낙랑군이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낙랑군을 중국인이 지배하는 근대적 식민지 개념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안정준의 주장이다.
이정빈의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제115호)는 한사군이 오늘날 중국 하북성 난하 유역에 소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이정빈에 따르면, 한사군이 난하 유역에 있었다는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은 사료해석부터 잘못하여 “시공을 달리하는 여러 사료 속의 동명이지(同名異地)를 동명동지(同名同地)로 논증”한 것이다(258쪽). 또한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 가운데 제시된 사료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 이정빈은 앞서 소개한 위가야와 마찬가지로,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과 잘못된 사료해석은 ‘교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사군 가운데 특히 낙랑군의 교군은 일찍이 지적된 바 있으며, 구체적 논증도 이루어졌고, 새로운 출토문자자료를 통해 심화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결국 ‘사이비 역사학’의 주장과 달리 낙랑군은 난하 유역에 위치했던 것이 아니라, 대동강 유역에 소재했던 것이다.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의 문제점

강진원은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제115호)에서 특히 역사학계 외부에 식민주의적 역사관의 주요 이론 가운데 하나인 타율성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타율성론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사의 전개 과정이 한국인의 자주적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영향에 따라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관점”을 말한다(213쪽). 이 가운데 강진원은 ‘만선(滿鮮)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에 집중하고 있다.
만선사관은 만주와 조선을 하나의 역사적 단위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사관은 만주 지역에 진출하는 일제에 학문적 기여를 하는 것에 궁극적 목적을 두고 있었으며, 주로 일본의 동양사 전공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만선사관에 따르면 조선사는 만주사에 종속된 위치에 놓인다. 강진원은 만선사관이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고 본다. 첫째, 만주사와 조선사의 구분이 모호하며, 둘째, 조선에 대한 만주의 영향력을 주장하는 동시에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대한 영향력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모순되고, 셋째, 시기적 범주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선사관의 이러한 문제점들은 만선사가 “일제에 의해 창조된 자의적·편의적인 역사단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218쪽).
반도적 성격론은 “한국의 역사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특히 대륙과 해양에 위치한 외세의 영향에 의해 수동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관점이다(219쪽). 강진원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은 역사의 결정적 요인이 지리적 조건에 있다는 환경결정론적 지정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반도적 성격론에 따르면 한반도에 자리 잡았다는 특성 때문에 한국사는 타율적인 숙명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리적 요인은 역사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모든 것을 결정짓거나 영구적 속성을 확정짓는 요인이 아니다. 반도에 위치해 있었지만 해외 진출을 활발히 했던 유럽 국가들의 사례, 그리고 한국사에서도 주체적이었던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이는 충분히 반증될 수 있다고 강진원은 주장한다.
1960년대부터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타파되었다. 그러나 특히 학계 외부에는 이러한 만선사관이나 반도적 성격론에 기초한 사고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고 강진원은 진단한다. ‘만주를 회복해야 한국이 강대국이 된다’거나 ‘만주를 영유했을 때가 전성기였다’는 생각은 만선사관과 유사하며, 한국의 반도적 특성을 강조하며 대륙과 해양 세력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생각이나 ‘대륙’, ‘반도’, ‘열도’로 중국, 한국, 일본을 지칭하며 속성을 부여하는 태도, 특히 일본이 섬나라라는 특성을 부각하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반도적 성격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들 논문 이외에 신가영의 ｢‘임나일본부’ 연구와 식민주의 역사관｣은 오늘날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소개하면서, 김현구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2010)를 완전히 오독하여 ‘식민사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덕일을 비판하고 있다.

『역사비평』의 이번 기획에 실린 논문의 저자들은, ‘사이비 역사학’이 오히려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공히 지적하고 있다. 위가야가 지적했듯이,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자들은 오늘날의 욕구에 부응하여 ‘유리한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골몰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사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역사가의 현실이 해석에 투영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획의 논문들을 보면,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은 ‘해석의 다양성’을 넘어서고 있는 듯하다. 물론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용어는 아직 합의된 용어라고 보기 어려우며, 자칫 ‘올바른 역사학’을 전제하는 위험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기사에서는 ‘사이비 역사학’에 따옴표를 붙인 것이다. 한편, 쇼비니즘적 재야 역사학의 관점이 오늘날 대중들에게 널리 수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석도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역사학만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 곽태진 기자 karajan86@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6: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