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아니 매 학기 중후반이 다가오면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또 다시 바쁜 일거리가 늘어난다. 기말고사와 과제 등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일이야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겠지만 시간강사에게는 좀 더 특별한 일이 있다. 5월과 11월쯤에 시작되는 다음 학기 강의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대학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한 학교는 어디에 있는지, 또 그 강의를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따져 이력서를 제출한다. 단순히 이력서만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할 강의를 준비해 강의계획서를 같이 첨부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는 간단한 세미나 계획서만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이렇게 지원을 한 후에는 그냥 무작정 기다린다. 그나마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강의에는 초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자라도 오면 다행이다. 대부분 연락이 없으면 안됐구나 하는 짐작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때로는 몇 학기 연속으로 강의를 하던 학교에서 갑자기 과목이 없어지기도 한다. 강의를 개편하는 것이야 대학 나름의 자율이 있는 것이고 그들의 교육 목표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의도가 다분히 신자유주의적 노동체계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고등교육법 시행이 내년으로 미워지면서 행해진 대학 자체의 구조조정에 의해 과목이 재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시간강사는 전임교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 비전임교원 수는 대학평가의 고저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시간강사가 많은 학교는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그렇기에 대학들은 강의를 재편하면서까지 기존의 전임교수와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인 강의전담교수, 초빙교수, 겸임교수 등에게 강의를 더 많이 몰아주고 있다. 개정 고등교육법이 시간강사의 지위와 경제적 현실을 다시 옭아맬 것이라는 예상이 그것의 시행 유예 전부터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강의 자리라도 생기면 다행이다. 강의를 하지 못하는 학기에는 수입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 이런 것에 대비해 미리 돈을 모아두지 그랬냐는 주변의 걱정도 있지만 사실 강의를 하고 받는 강사료는 차비와 식비를 빼고 나면 한 달 생활하면서 책 사보는 데도 빠듯한 돈이다. 그나마 주변의 지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사료를 인상하면 이런 일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강사라는 직위의 해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화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노동의 신축성을 통해 효용을 높이고자 하는 자본과의 싸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난 분명 “자본”이라고 썼다. 대학이 자본이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자면 대학이 자본 그 자체이거나 자본의 속성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어하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 그 자체의 속성보다는 스스로의 배를 불리기에 급급한 모습, 전임교원에 대한 목표관리 방식의 성과 추출 제도, 노동신축성이 극대화된 고용방식 등 모든 모습이 자본의 축적방식과 흡사하다.

결국 시간강사들은 학문 탐구와 강의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자신의 고용지위에 대한 싸움, 학교에서 전임교수와의 관계 정립,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괴물과도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나중에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일을 후에 하게 되더라도 이러한 사회구조를 뒤엎지 않는다면 그 많은 시간을 학문에 투여한 교육 노예의 삶이 역전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