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자에게로 가는 길

남다은(영화평론가)

“타자가 나로부터 어떠한 거리에서 시작되는지를 지칠 줄 모르게 시선으로 만지는 법을 영화가 내게 가르쳐주길.”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그렇게 꿈꿨다. 반면 후기 구조주의자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반反영화”(1973)라는 글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움직임은 회귀의 움직임이다. 다시 말해 동일한 것의 반복과 그 번식의 움직임이다....타자성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동일한 것이 회귀하는 법칙.” 그에게 영화의 포커스, 프레이밍, 장면연결의 방식과 장치들은 결국 그런 동일성의 강화를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두 사람의 견해가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논지처럼 보이지만, 리오타르가 회귀의 법칙을 말하는 건, 결국 회귀될 수 없는 것, 즉 재현할 수 없는 지평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그 지평의 다른 이름은 ‘타자’일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란 결국 타자의 심연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해야만 하는 장소다. 좀 쉽게 말해서, 타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는 없다. 타자라는 거대한 추상이 아니라, 주체의 눈앞에, 주체와 함께 존재하지만, 주체의 언어만으로는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타자라는 구체적인 현존에 대해 묻는 것.

그러나 한 편의 영화가 그 물음에 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지난 몇 년간 개봉되어 비평적 관심을 끈 한국 독립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와 관련해 그들이 당면한 공통된 궁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재현하는 사회 구석진 곳의 타자, 이를테면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애니멀 타운>), 노예(<사람을 찾습니다>), 탈북자(<무산일기>), 건달(<똥파리>), 창녀(<빗자루 금붕어 되다>) 등은 한국 자본주의체제에 기생하지만, 체제로부터 배제된 자들이다. 조르조 아감벤 식으로 정의한다면, “죽여도 처벌받지 않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추방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호모 사케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은 파국적 사건 이후, 파괴된 상태의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들에게는 어떤 도약과 단절의 계기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 안에서 이 타자성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극적인 전환점 없이도, 이들의 행위, 실은 사회적 의미망으로 걸러지지 않는 텅 빈 행위와 그 행위의 반복을 어떤 식으로든 영화적 활동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때, 이 영화들은 타자의 세계에 개입하거나 규정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러티브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미학적 차원에서도 이들이 고수하는 일련의 사실주의적인 태도(롱테이크와 핸드 헬드, 신체의 노골적인 물질성의 형상화, 공간의 리얼리티에의 천착 등)는 그런 맥락에 있다. 문제는 이들이 유령처럼 부유하는 타자의 일상을 그저 관찰하는데서 나아가, 그것을 영화적 사건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즉, 한 자리를 뱅뱅 도는 서사에 클라이맥스를 기입하고자 할 때 발생한다.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틀 안에서 설명되지 않고,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살덩어리처럼 보이던 타자의 존재가 영화적 사건을 계기로 가시화되는데, 그 사건은 대개의 경우 폭력과 죽음에 연루된다. 그런데 폭력과 죽음을 불러들일 때, 이들이 갑자기 상투와 추상에 관대해지고, 서사적인 개연성이 확연하게 떨어지는 그 순간의 틈이 장르적인 화법으로 메워지는 공통된 경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분노의 서사는 타자를 기존 체제의 논리 안에서 해명될 수 있고 사회의 도덕률 안에서 판단 가능한 존재로 너무 쉽게 위치시키고, 주체에게 두려움을 안기던 타자의 존재를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영화가 한 작품 안에 존재하는 듯 느껴지는 이러한 모순, 그러니까 이들이 타자를 재현할 때 어김없이 부딪히는 난관은 이 영화들의 부주의함이나 결함이기도 하지만, 실은 얼마간은 근본적이고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타자가 왜곡되지 않고 올바르게 재현되었는지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자는 우리 중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토록 도달하려는 타자성은 어떤 특정한 형상으로 이미 제시되어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의 징후와 모순과 부정으로만, 안타깝지만 그런 방식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재현하려고 하지 않을 때, 문득 우연하게 영화의 시간과 공기로 마술처럼 스쳐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