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의 나무에 괴상한 열매가 열렸네. 이파리와 뿌리에 흥건히 고인 피”

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광기의 시대를 생생히 고발한 스틸 컷

한국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단순히 노래 잘하는 재즈 보컬 혹은 라디오 방송의 단골 레퍼토리 ‘I’m a Fool Want You’ 정도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 물론 빌리 홀리데이가 뛰어난 보컬리스트인 것도 맞고, 언급된 곡이 뛰어난 노래라는 점도 틀림없다. 허나 그녀를 대표하는 곡이 실은 ‘Strange Fruit’이라는 괴이한 제목의 곡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더구나 이 노래가 흑인들의 울분과 한을 담은 저항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괴상한 열매’라는 제목 안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와 이곳저곳에서 백인 농장주들의 학대 속에 여생을 마쳐야 했고,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 때문에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던 흑인들의 애환이 들어 있었다. 노래의 타이틀은 백인들로부터 린치를 당하고, 나무 위에 비참하게 매달린 흑인 토마스 십과 아브라함 스미스의 사망 사건으로부터 따온 것이었다. 두 흑인의 죽음은 빌리 홀리데이가 활동했던 때가 인간을 공개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정상’으로 작동하던 시대, 피부색으로 인종의 우열을 가늠했던 이 광기의 시대였음을 암시했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교사였던 루이스 앨런에 의해 시로 쓰였고, 1939년 빌리 홀리데이에 의해 노래로 탄생하게 되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이 노래와 조우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었다. 머나먼 타지로 건너와 죽도록 일만 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던 동료들과 매한가지로, 그녀 역시 고단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몸을 팔아야만 했으며, 심지어 소녀 시절 백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알코올과 마약에 찌들어 생을 마감했다. 화려한 영광의 무대 뒤에는 이처럼 숨겨진 이면이 있었다. 그녀의 생애는 당시 흑인이라는 인종이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전형이었다. 마치 자신의 기구한 삶이 투영된 듯 허공으로 내뱉어진 노래 ‘Strange Fruit’은 1939년 1월, 뉴욕 최초의 인종개방 클럽에서 초연되었고 곧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빌리 홀리데이는 이 노래를 부를 때 과도한 감상을 이입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녀는 덤덤하고 차분하게 노래를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녀의 몸속에 깊게 체화된 ‘흑인으로서의 유전자’는 이 노래를 단순히 입으로 부르기를 거부했다. 육체 내부에 잠긴 응어리를 남김없이 토해내겠다는 듯, 더 나아가 그녀는 자신을 버릴 듯 노래한다. ‘Strange Fruit’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처절한’ 모순덩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이라는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고, ‘Strange Fruit’은 그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다. 이 노래가 뛰어난 저항가인 이유가 바로 그 점에 있다. 원색적인 수사나 말초적인 선동을 배제하고도, ‘Strange Fruit’은 역사에 남을 권리를 당당히 허락받았다. 영국의 록 매거진 <모조>는 2004년 ‘대중음악의 저항가 100곡’을 선정하고, 이 곡을 무려 5위에 랭크하기도 했다.

청중 그리고 가수의 영혼마저 삼켜버린 노래

금방이라도 숨을 멎을 듯 위태롭게 흘러가는 이 재즈곡은 논란이 불거질 것을 두려워한 소속사에 의해 취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의 유출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노래는 이윽고 편견과 배제의 선을 넘어 기어코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는 듯 세상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노래하던 클럽을 찾은 사람들은 ‘Strange Fruit'를 꼭 듣고 싶어 했는데, 개중에는 그녀를 조롱하는 백인 연주자들의 요청도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계속 노래했는데, ‘Strange Fruit’은 홀리데이의 매 공연을 갈무리하는 곡으로 선택되었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뒤이어 가수 자신의 영혼마저 삼켜버릴 듯 울리는 노래에 전율을 느꼈다. ‘Strange Fruit’은 “조용히, 하지만 거대하게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고전들이 지나갔던 궤적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음악이 쾌락과 위안의 도구로 머무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있었던 빌리 홀리데이의 몸을 빌려, ‘Strange Fruit’은 음악의 차원을 넘어선 역작으로 우뚝 섰다.

이 곡은 그녀를 인기 스타로 끌어올렸지만 정작 가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호텔의 정문을 통해 공연장으로 들어설 수 없었고, 백인들은 홀리데이를 노래 잘하는 인형 정도로 간주했다. 그것이 동시대 흑인의 현주소였다. ‘Strange Fruit’이 발매된 지 수십 년이 지난 다음, 공연 투어를 돌던 중이었던 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백인 동료로부터 음식을 전달받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식당 주인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다. 흑인에 대한 인식은 쉽게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흑인은 그저 백인들의 구성체에 볼록하게 솟은 ‘혹’과 같은 존재였다. 이후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인권 운동과 시위의 현장에 불을 당긴 실제상의 첫 번째 노래가 ‘Strange Fruit’이었다는 점을 흑인들의 가시 박힌 일대기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비극적인 죽음

주변의 남자로부터 이용당하고 결혼에 거듭 실패한 빌리 홀리데이는 1959년 마약 중독으로 숨을 거뒀다. 그녀의 나이 44세.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나날이 부식되어 가고 있던 도중이었다. 병원 내에 있던 어느 누구도 그녀가 가장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하나라는 것을 몰랐다. 너무나 초라했던, 그래서 지금 듣는 ‘Strange Fruit’이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비극적인 말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