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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마셔도 고대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기획보도] 마셔도 고대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글쓴이 : | 등록일 : 2017-11-12 23:29:53 | 글번호 : 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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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걸리 하면 고대, 고대 하면 막걸리?!

‘막걸리 대학교’, 고려대학교를 들어왔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이다. 옆 동네 Y 대학교 친구들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나이가 지긋하신 부모님 세대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그렇게 부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막걸리는 우리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

막걸리는 어떤 이미지일까?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세련되지도 않고, 소주나 맥주처럼 일상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막걸리는 막걸리만의 색깔이 있다. 약간은 촌스러워 보여도 정겹고, 무엇보다 ‘전통’이 있다. 사람들은 막걸리의 이런 이미지 속에서 고대를 찾았다. 조금은 우직하고 투박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대학,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이것이 막걸리에 담긴 고려대학교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고려대학교가 막걸리 대학교가 된 계기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역시 사발식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이 감시와 통제의 상징이었던 종로 경찰서 앞에 ‘막걸리를 마신 후 다시 뱉어(?)내면서 저항했다’라는 이 유명한 ‘카더라’는 아무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매년 새내기에게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런 배출 행위는 군부 독재의 시기였던 70~80년대에 완전한 고려대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발식이 고려대의 대표 행사가 되면서 막걸리 역시 고려대의 상징 중 하나로 인정됐다.

그러나 ‘소맥’의 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고려대 주변에서도 막걸리를 파는 토속 주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단어’만 남아버린 막걸리, 그 흥망을 함께 했던 막걸리 가게들, 그리고 현재 고려대학교 학우들. 우리는 이들에게 ‘막걸리’의 의미에 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 고대생의 영원한 ‘막집’, 막걸리집

‘막걸리와 고려대생’이라는 주제가 결정된 후 두 기자는 막걸리 하면 생각나는 그 곳, 이름부터 매우 정직한 ‘막걸리집’(이하 막집)으로 달려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후 기자는 사장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사장님은 웃으시면서 한마디 하셨다. “내일 5시에 와~ 우리 집이 안암에서 제일 일찍 여는 집이야.”

다음 날 5시를 조금 넘게 찾아간 막집은 한적했다. 3시 반부터 가게를 여신 사장님께서는 이미 하루 쓸 재료와 반죽 준비를 마치셨다. 남은 건 오늘 팔 막걸리를 통에 담는 일. 그렇게 정성스럽게, 단둘이서 15년째 맞는 하루였다. 기자들은 막집의 두 사장님 이하순(69) (이하 이), 양맹선(62) (이하 양) 씨를 만나봤다.

기자: 막집은 언제, 왜 열게 됐는가?

양: 15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탁자만 있는 게 아니라 방도 있어서 앉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10년 전에 원래 사장님한테서 이 식당을 인수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게는 변한 게 없다. 벽의 낙서들이나 저기 기타나 부엌 안에 소쿠리까지... 메뉴도 그대로다.

기자: 15년 동안 하셨으면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어떤 점이 변화했는가?

양: 사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옛날에 학교 다니던 애들이 아직 오기 때문이다(웃음) 졸업하고 오고 결혼하고 또 오고...

이: 어떤 애는 정말 자주 와서 아주 친해졌다. 박사 학위도 여기서 따고 삼성에도 취직하더니만 어느 날은 결혼식에 부르더라. 같이 가서 축하해줬다. 어느 날에는 아기 돌 사진을 보내서 여기 어딘가 붙여 놨다. 근데 요즘은 바쁜지 잘 안 온다(웃음)

양: 그 친구는 정말 일찍 성공한 편이다. 우리 집에서 마시던 애들이 일찍 성공해서 사회에 나가면 정말 뿌듯하다.

기자: 말씀을 들어보니 막집은 고대생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참살이에 가게를 하시면서 기억 남는 일들이 있는가?

양: 얼마 전에 80대 노인 3분이 여기에 있던 모든 학생의 술값을 다 계산해주고 가셨다. 나이가 있으신데도 학생들과 잘 노시더라. 참 멋졌다.

이: 멋있었지 암(웃음) 고연전 때는 진짜 난리다. 애들이 막걸리 찬가를 엄청 부르는데 진짜... (그리고 두 사장님은 막걸리 찬가를 불러주셨다. 기자들보다 가사를 더 잘 알고 계셨다) 연대 애들도 막걸리 좋아하더라. 기차놀이 할 때 아주 잘 마신다.

기: 마지막으로 사장님들께 막걸리와 고대생은 어떤 의미인가?

양, 이: 막걸리로 하루하루를 벌 수 있기 때문에 막걸리는 우리를 살려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고대생이 무조건 최고다! 제일 환영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는 기자들 옆에 새로운 사람들이 앉았다. 그중 한 사람이 식탁을 만지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 졸업하고 정말 오랜만에 여기 온 거 같다”


# 막걸리찬가, 그리고 AGAIN 막걸리

막걸리집에서 인터뷰를 끝낸 후, 기자들은 이공대 쪽에 ‘막걸리찬가’라는 새로운 토속주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봤다. 토속주점이라 해서 예스러울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세련된’ 반전의 가게였다. 이제 막 연 지 두 달이 되어 간다는 박현규(46) 사장님(이하 박). 원래 하시던 ‘마루’를 접고 종목을 막걸리로 바꾸신 사장님은 ‘막걸리찬가’를 통해 참살이에서 2 ROUND를 준비하고 계셨다.

기자: 상호가 ‘막걸리 찬가’다. 벽에 막걸리 찬가 가사도 쓰여 있고, 군데군데 옛날 고대 사진도 붙어 있다. 이런 것들은 사장님이 직접 정하셨나?

박: 직접 했다. 고대하면 사발식, 사발식 하면 막걸리가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기자: 왜 굳이 막걸리였는가?

박: 고향이 전주다. 전주에서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 몇 개가 세트처럼 나와서 따로 안주를 주문할 필요가 없다. (막걸리찬가는 반계탕, 두부 김치 등 4개의 안주가 나온다) 안암에 전주식 막걸리가 없어서 조금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여기가 연대였으면 절대 막걸리 장사를 안 했을 것이다(웃음). 고대여서 했다.

기자: 두 달 동안 장사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

박: 얼마 전 약간 으스스한 일이 있었다. 가게를 마감한 후 새벽 4시에 혼자 가게를 청소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서 거기서 뭐 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나에게 친구들은 어디에 있냐고 되묻더라. 그 친구의 친구들은 이미 3시에 집에 간 뒤였다. 그 친구가 화장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애들이 찾지도 않고 그냥 가버린 거 같다. 결국, 그 친구와 같이 퇴근했다.

기자: 많이 놀라셨을 거 같다(웃음) 여기 오는 친구들은 그럼 보통 어떤 분위기인가?

박: 생각만큼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일학년 때 사발식에서 질린 거 같다(웃음) 요즘 친구들이 막걸리를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 거 같다. 팔리는 비율도 소주 1 막걸리 1 정도다.

기자: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사장님에게 고대생과 막걸리는 무슨 의미인가

박: 연대생이 서울 깍쟁이의 이미지라면 고대생은 조금 순수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막걸리는... 막걸리는 예전의 향수인 거 같다. 막걸리는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한다.

인터뷰가 끝난 후 사장님에게 “원래 막걸리를 좋아하셨나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아니요”였다. 사실 사장님은 ‘맥주파’셨지만, 막걸리 가게를 시작하시면서 많이 공부하셨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반전이 넘치는 막걸리 찬가였다.


# 고대생에게 막걸리를 묻다, 막터뷰

막걸리를 파는 사장님들을 만나보니 이제 막걸리를 마시는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기자는 평소 막걸리를 좋아하는 고려대 학우들의 신청을 받아 총 4명을 선정했다. 그 후 선정된 (사진 왼쪽부터) 전승환(가정교육과 14), 김우빈(사학과 15), 이시환(신소재공학부 17), 문수빈(일어일문학과 17) 4분과 ‘막걸리집’에서 함께 막걸리에 대한 인터뷰(이하 막터뷰)를 진행했다.

  # 막걸리와 나

Q. 막걸리와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시환: 새터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처음 한 잔 마셨다. 그 뒤로 안 마시다가 사발식에서 먹고 그때 이후로 막걸리가 더 좋아졌다.

수빈: 새터 때 새내기의 패기로 1.5병을 마셨는데 비워내지 못했다. 그 후 응원을 한 시간 반 동안 하고 방에서 죽어(?)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정신을 차렸지만 한 달 동안 막걸리를 마시지 못했다. 지금은 소주보다 낫다.

승환: 기억이 잘 안 난다. 2병 마셨는데 몽롱했다.

우빈: 성묘할 때 음복하느라 한 모금 마신 걸 제외하면 사발식 때 처음 마셨다. 두 병 반을 마시고 토했다.

Q. 막걸리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우빈: 다른 대학 식품영양학과 친구가 막걸리의 프렌차이즈화에 대한 팀플을 진행했다. 막걸리 하면 고대라고 해서 내가 설문조사를 하게 됐다. 중광에 가보니까 초코 막걸리, 오레오 막걸리, 요구르트 막걸리, 장미 막걸리가 있었다. 정말 놀랐던 건 맛은 다 ‘혁명적’이었다. 장미 막걸리에는 막걸리 위에 꽃잎이 떠 있었고 오레오 막걸리에는 건더기가 있었다. 그래서 오레오는 절대 반대했다.

시환: 솔직히 술이 약한 편은 아닌데 공대라서 주변에 잘 마시는 애들이 많다. 그런데 잘 마시는 애들도 발효주나 와인을 마셨을 때 숙취가 있더라. 그런데 나는 막걸리에 숙취가 없다. 막걸리만 마시면 동기들을 이긴다는 느낌이 들어 막걸리를 좋아하게 됐다. MT갈 때도 막걸리를 사 가서 별명이 막걸리 대장이다.

  # 막걸리와 사발식

4명 모두 막걸리를 제대로 접한 자리가 ‘사발식’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사발식은 새내기 고대생들에게 막걸리를 소개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막걸리를 마시고 토하게 하는 강압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학우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Q. 사발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시환: 우리 같은 경우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고 선택적이어서 괜찮았다.

수빈: 우리 과는 사발식을 폐지했다. 새터 때 조발식을 하지만 왜 하는지, 혹은 사발식의 역사나 의의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사발식을 상징적인 이벤트의 느낌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악습 폐지 운동’ 등으로 강제성보다는 자율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사발식이다. 하지만 불과 2, 3년 전의 상황은 조금 달라 보였다.

우빈: 우리 때(15학년)도 선택권이 있긴 있었다. 막걸리를 안 마실 사람들은 안 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애들이 알아서 다 나왔다. ‘나가자’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승환: 강제성이라기보다는 선택이 다양하지 않았다. 그냥 저희는 ‘’저희 위부터 그렇게 해왔으니까 해야 한다’였다.

사발식을 폐지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오랜 역사이니만큼 이어나가야 한다’, ‘역사 속의 하나일 뿐이니까 과거로 남기자’ 등 사발식에 대한 여러 입장이 있다. 이에 대해 좀 더 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Q, 사발식의 존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빈: 나는 사발식을 이어나가자는 입장이다.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고대의 정신을 생각하고 의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사발식에서 변질시키는 것이 문제지, 그 자체는 긍정적인 것이라고 본다.

우빈: 전통의 양면성인 것 같다. 전통이 형식화되면 ‘꼰대’가 되지만 한편으론 그 속의 의미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숭고한 문화니까. 하지만 우리는 사발식을 할 때 뭐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막걸리를 ‘마시고 토한다’에 집중한다. 그렇게 보니까 현재 사발식이 나쁘다고 느껴지는 거다. 뭘 저항하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이 없다. 고대다움, 더 나아가 지식인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발식을 하기 위해서 저항한다’가 아니라 ‘저항하기 위해서 사발식을 한다’ 선후 관계를 바꿔야 한다.

수빈: 동의한다. 너무 몇십 년 전의 일보다는 현재 저항해야 할 세태, 예를 들어 교육적 문제와 같은 것에 맞춰 저항하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시환: 맞다. 형식적으로 꼰대 문화가 되면 문제가 되지만 무엇인가 계승한다는 정확한 의미가 된다면 괜찮다고 본다.

  # ‘단어’만 남아버린 막걸리

과거 막걸리와 함께한 고려대학교지만 맥주와 소주 등 술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안암 상권이 현대화됨에 따라 막걸리의 입지는 좁아졌다. 이제는 막걸리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그러한 술이 됐다. 정문에 있던 막걸리촌은 축소됐고 막걸리 촌을 지키고 있던 막걸리 가게들이 몇 남지 않게 되었다.

Q. 막걸리의 쇠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빈: 제 고등학교 친구들은 막걸리가 아재답다고 느낀다. 인식이 그렇다 보니까 막걸리의 수요가 줄어 그럴 수밖에 없지만 아쉽다. 고대 주변의 상권 현대화가 되면서 고대 내의 막걸리 문화는 그냥 이미지가 됐다. 고대 당사자가 심지어 고대니까 막걸리를 마신다.

Q. 막걸리의 부흥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시환: 막걸리도 프렌차이즈 화 해서 싸게 만들면서 전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게 어려운 부분이라서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수빈: ‘막걸리’ 하면 아재다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러한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친숙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막테일이나 아이싱같이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기자의 막중 진담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인 두 기자. 어떻게 하면 ‘막걸리 기사’답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두 기자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결론을 지어보자!” 그 길로 바로 편의점에 가서 두 병의 막걸리를 샀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하던 그 취기처럼 이번에도 다시 한번 막걸리의 힘을 빌려서 기사를 마무리 짓게 된 것이다.

그렇다, 기자들 지금 막걸리에 취했다. 진정한 ‘막중 진담’이다.

호 기자: 처음 ‘막걸리’를 아이템으로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그냥 사발식 때 먹었던 전통적인 술로만 생각했다. 막걸리보다는 현대식 술인 소주와 맥주가 좋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막걸리집’과 ‘막걸리찬가’ 사장님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니 막걸리에는 이야기가 있었고 정겨움이 있었다. ‘왜 자꾸 오냐’면서 우리 입에 호박전을 넣어주시고 처음 간 우리에게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사장님들. 막터뷰를 진행하면서 마셨던 막걸리와 처음 봤지만, 막걸리라는 주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인터뷰이들.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시나 보다.

수 기자: 새내기 분들과 함께 인터뷰하면서 문득 고대에서 나의 첫 막걸리를 생각하게 됐다. 재수한 후 붙은 고대였기 때문에 이미 사발식의 악명을 Y대 친구들에게 들은 이후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발식에 참여했지만 받은 잔은 밥그릇으로 ‘한 잔’. 솔직히 속으로 ‘에게’했다. 왜냐면, 막걸리가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더 먹고 싶었다. 사발식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취재 중에서 제일 공감했던 부분은 “사발식을 하기 위해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기 위해서 사발식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사발식은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의 옳고 그름은 그것을 존속시키려는 사람들이 행사 안에 담는 의의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0 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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