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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악(惡)의 연대기
[문학의 향기] 악(惡)의 연대기
글쓴이 :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7-05-17 22:58:06 | 글번호 : 8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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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연대기, 괴물」, 『연대기, 괴물』, 문학과지성사, 2017

악(惡)의 연대기

  2014년 이후 4월은 그저 아름다운 계절의 일부일 수 없게 되었다. 꽃은 여느 때와 같이 피고 가벼운 차림의 연인들은 손을 잡고 그 꽃길 아래를 거닐 지만 그 따스한 광경마저 차가운 바다 아래 죽어간 수백 명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죽은 자의 고통을 기억하고 남아 있는 자의 삶을 위로하며 무책임한 국가의 뻔뻔스런 민낯에 분노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봄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희망의 분위기와 어색하게 공존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러한 다짐은 무엇보다도 세월호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 남아 있는 자들이 비로소 죽은 자의 넋을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동시에 남아 있는 자들을 그 압도적인 심리적 상처로부터 구출하고자 하는 필사의 노력이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의 풍경을 이런 식으로만 그릴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엄연하게도,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에 불과하다거나 나라 지키다 죽은 장병들도 있는데 소풍가다 죽은 애들이 무슨 대수냐는 말들에서부터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하라는 새된 다그침과 저거 다 보상비를 노린 유가족들의 쇼라는 냉소까지, 깨끗한 물에 귀를 씻어 못들은 걸로 할 수만 있다면 골백번 귀를 씻고 싶었던 막말들이 우리 주변에 함께 했다. 임철우는 그 말들 속에서 우리 시대 현존하는 악(惡)의 형상을 본다. 「연대기, 괴물」은 세월호 참사를 당면한 현재로 삼고 대한민국의 탄생을 그 기원으로 하는 ‘악(惡)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한 노인이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투신자살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노인의 이름은 송달규. 그는 왜 자신의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것일까. 소설은 송달규의 탄생을 둘러싼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자동차는커녕 바퀴 달린 자전거 한 대 없는 궁벽지고 고립된” 남쪽 바다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한국 전쟁의 참화는 이 작은 섬까지 삼켜버리고 만다. 시작은 보도연맹 사건이다. 전쟁이 터지고 보도연맹원들은 집단 학살당한다. 그 후 경찰이 철수한 섬은 인민군에 의해 점령당하지만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섬은 다시 국군에게 접수된다. 비극의 씨앗은 “스스로를 ‘빨갱이 사냥꾼’”이라 칭한 서북청년단이 경찰 병력과 함께 섬에 들어오면서 배태된다. 부역자 처단이라는 광기에 휩쓸린 그들은 송달규의 외조부를 고문하는 한편 그의 둘째 딸 옥례는 서북청년단 대장 김종확에게 강간당한다. 송달규는 김종확과 옥례 사이에서 태어난 “악마 놈의 핏줄”이었다.  
  열일곱에 섬을 떠난 송달규는 광주에서 3년 간 머물다 베트남으로 파병된다. 거기서 그는 얼결에 베트남 양민 학살에 가담하게 되고 그 결과 “극심한 신경불안증과 불면 증세”로 인해 “밤낮 없이 계속되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1980년의 비극은 그가 광주에 있을 때 잠시 일했던 양씨 아저씨네 가족을 풍비박산 냈으며 그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은 그는 정신장애인 집단 수용시설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끝내 노숙자 신세로 거리를 떠돌게 된 것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기차에 뛰어드는 것처럼, 송달규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괴물의 환영을 죽이기 위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든다. “아아, 마침내 그는 놈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그것은 그의 아비였고, 또한 바로 그 자신이었다. 온몸으로 피냄새를 풍기는, 세상 모든 악의 형상이었다.” 사실 한국 현대사의 폭력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악의 형상으로 물들어간 인물이 분열증 속에서 선로에 몸을 던지는 이런 장면은 <박하사탕> 이후 더는 낯설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거니와 ‘악’에 대한 소설적 탐구가 여기서 그리 치밀하게 수행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악의 연대기’에 세월호 사태를 연루시키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세월호 사태는 보는 이에 따라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이기도 하고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해 기획된 음모이기도 하며 국가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임철우는 대한민국의 기원에 내재하며 아직까지 국면마다 그 힘을 자랑하고 있는 분단체제의 규정력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마타도어를 수행하는 사람이 송달규 자신의 아버지이자 서북청년단 재건을 기도하는 김종확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김종확은 말한다. “단순한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 시체 장사 한두 번 해봤나? 종북 세력에게 끌려다니면 안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안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안보’를 빌미로 분단체제를 온존시키려는 세력과 마주 싸우는 일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서북청년단이 불행하게 조우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그 분단체제를 어떻게 허물 것인가. 다가오는 5월은 그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0 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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