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발령받은 첫 출입처는 한 국립대였다. 주말에 총장과 출입기자단의 단체 등산이 잡혀 있다고 했다. 행사를 며칠 앞두고 홍보팀 직원이 전화를 걸어 왔다. 분홍색과 하늘색 중 고르라고 했다. 총장 앞에서 멜 등산용 가방을 주겠다는 거였다. 어디서 보고들은 건 있어서 나는 “마음만 받겠다”고 대답하고 ‘이 정도면 멋졌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받으셔야 저희가 편해져요.”

“일단 먹여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는 게 홍보 업계의 정설이었다.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고 나면 대개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만나서 식사 한 번 하자”는 식이다. 받아먹는 자가 있으니 먹이는 자가 계속 생겨난다. 구악(舊惡)의 종류는 다양하다. 한 선배는 열 명 가까운 후배를 데리고 간 술자리에 은행 홍보팀을 불러 계산을 시켰다. 고깃집 구석에 앉아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타사의 한 부장은 말도 없이 부원 전체를 데리고 나왔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위안을 삼아야 했다. 경상도의 어느 동네 얘기를 하다 갑자기 지역 기관에 전화를 걸더니 “과메기 좀 보내보라”고 주문하던 선배는 늘 돈과 힘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하던 사람이었다. 다음날 기자실엔 과메기와 막걸리가 배달됐다. 어느 날엔 정의와 부조리에 대해 토로하고, 이튿날엔 기업이 돈을 대준 해외출장 사진을 자랑하던 동료도 있었다.

많은 기자들이 스스로 규칙을 세우려 고군분투했다. 공짜 밥을 먹은 만큼 기부금을 내는 동료도 있었고, 술을 얻어먹고 나서 “유흥주점에서 접대를 하더라”며 기사를 써 해당 부처 기자실의 문화를 바꾼 사람도 있었다(물론 욕은 옴팡지게 먹었다고 한다). 나는 종종 술에 취해 문 연 빵집을 찾아가 쿠키세트를 샀다. 밥값 대신 취재원 손에 들려주며 “가족들하고 드세요” 할 때면 이게 다 뭔가 싶었다. 다들 왜 이렇게 구차하고 힘겹게 사는가. 썩은 부분을 어디서부터 들어내야 할까. 나는 떳떳한가.

김영란법을 둘러싸고 “한우와 굴비가 다 죽는다”는 등 별말이 다 나온다. 몇 년 전 한창 법안이 통과되네 마네 할 때는 모든 언론사가 달라붙어 기사를 썼다. 사공이 너무 많아 배는 자꾸 휘청거렸다. 법 적용 대상에 최종적으로 기자가 포함되자 내부에선 “편하게 취재도 못 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사당국이 밥을 빌미로 기자들의 취재를 감시할 여지가 있다는 거였다. 안 받고, 안 먹고 취재하면 책잡힐 일이 없다. 난장(亂場) 속에 상종해도 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연스레 갈렸다.

처음으로 받은 ‘기자님 대접’이었던 분홍색 등산가방은 상표도 떼지 않은 채 몇 년째 장롱에 박혀 있다. 묵고 묵어서 신물이 나게 된 내 양심처럼.

<프로파운더>

*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쓰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7 1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