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이십대를 마감하면서


  이제 이십대를 마감하는 입장이 되면서, 그러나 여전히 이십대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종종 나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에는 누구나 쉽게 ‘나이 따위는 별 거 아니야, 언제나 청춘일 수 있어.’라고 말하곤 하지만, 어쩌면 나이 따위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보다 그 나이에 걸맞게 사는 게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건 아닐까.

  지금보다 어릴 때는, 항상 조숙하다는 게 골칫거리였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또 책이나 영화 따위를 좋아하다 대학원으로 굴러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다 비슷하겠지만 늘 경험한 것보다 너무 많은 걸 안다는 게 문제였다. 연애를 하기 전에 섹스를 알고, 결혼을 하기 전에 불륜을 알고, 티켓팅을 해보기도 전에 여행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십대란 전혀 모르던 것을 경험했던 시기라기보다는 이미 알던 것을 따라잡기 바쁜 시기였다.

  연애도 했고, 여행도 했고, 읽고 싶은 만큼 책을 쌓아놓고 읽기도 했고, 방학 내내 수백편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마음속에는 항상 도달해야 하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하는 게임처럼, 그 이미지들을 좇으며 이십대를 보냈다. 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그런 청춘을 유예시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 더 머무르고 싶었고, 더 클리어하고 싶었고, 더 욕망하고 싶어서 덜컥 ‘또 학생’이라는 길을 선택한 건 아닐까.

  재미있게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내가 알던 그 공부가 아니었다.’라는 말이다. 다른 경우로 말하면, 내가 알던 그 연애가 아니다, 내가 알던 그 여행이 아니다, 같은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삶이 주어진 미션들을 수행하는 거라면, 그 미션은 언제나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르다. 결국 모든 게 자신의 의기양양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기 마련이다.

  다시 나이 얘기로 돌아가면, 어느덧 이십대는 끝나버렸고 캠퍼스에 가득한 신입생들의 기분은 겨우 노력해야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스무 살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 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은 쪽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들 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저 뜬구름 같았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혼자 시내나 한참 걷던 날들, 그러다 구름에서 내려올 때면 초라하게 짝이 없는 현실과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방황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고생스럽긴 해도 살만큼 살아낸, 구름보다는 만질 수 있는 경험들이 쌓인 지금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갈수록 줄어드는 가능성과 여러 한계들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점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게 좋다. 산만한 욕망들을 어느 정도 벗겨내고 안정된다는 것이, 내가 할 수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내가 선택한 이 일을 잘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기에 나는 이십대가 끝난 이 나이가 마음에 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0:5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