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강사칼럼]

왜 인문학 강사마저 대학카르텔 앞에 침묵하는가

류승완  강사



요즘 들어 ‘교피아’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 대교협과 교육부 관료들의 이권담합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대학들은 그 자체가 ‘기업’이다. 여기에 재벌·토호와 조중동 신문이 한 통속이 되어 대학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다.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국사회에서 대학카르텔의 막강한 힘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 안의 숱한 비리와 제도적 착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강사들이 침묵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학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강사는 교수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강의마저 빼앗긴다. 교수라는 거의 유일한 신분상승의 꿈이 사라지고, 스스로 선택한 학문의 길도 막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사들이 야합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대학 안에서 지속적으로 싸우기가 쉽지 않다. 진보로 알려진 지식인들도 대학카르텔에 맞서지 않는다. 대학들은 이미 한국사회의 ‘큰 형님(Big brothers)’이다. 대학이 강사들에게 침묵을 강요함으로 해서 한국학계에는 여러 가지 기현상이 나타난다. 그 하나가 인문학의 왜곡이다. 대개 인문학은 ‘돈’보다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는 학문이다. 자본독재를 비판하는 일도 으레 인문학의 몫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한국 인문학은 어찌된 일인지 자본독재의 폐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봉사한다. 이른바 ‘치유와 힐링의 인문학’이다. 자본독재의 문제점은 한줌의 자본가들이 절대다수 대중들이 생산한 가치를 가로채는 것(專有)이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경쟁을 강요한다. 대학 안에서는 상대평가와 강의평가로 대학생과 강사들을 서로 싸우게 만든다. 교수들은 끊임없이 경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언론은 이를 찬양한다. 세상은 경쟁이 넘쳐난다.

모든 경쟁은 ‘경쟁력’과 ‘도태’관계로 환원된다. 여기에 경쟁의 본질적 모순이 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경쟁의 본질적 모순을 지적하고 때로 과열경쟁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이 돈보다 경시되는 경우에는 경쟁의 필요와 정당성에 대한 물음도 던져야 한다.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문학은 경쟁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경쟁에 동원되고 있다. 경쟁력을 위한 처세술을 설파하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이 경쟁자체에 회의를 가지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다. 동양철학은 어떤 경우 사회모순을 외면하는 기회주의나 처세술이 삶의 지혜라는 식으로 대중을 오도(誤導)하기도 한다. 많은 인문학 교수들이 대학카르텔의 지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인문학 강사들은 인문정신을 포기하고 생계수단으로 인문학을 한다.

비판과 실천정신을 버리지 않는 강사는 거의 교수가 될 수 없는 것이 한국대학의 정확한 현실이다. 젊은 인문학자들은 대학원 입학에서부터 학위논문 심사를 거쳐 강사생활을 하는 3단계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자기검열에 빠져든다. ‘학교법인-교직원-교수’로 이어지는 대학권력과 강사들의 눈치보기가 결합된 자기검열은 대학판  생로병사의 비밀이다. 한번 자기검열에 빠진 강사들은 너무 쉽게 굴종한다. 나중에는 굴종을 즐기기까지 하며, 모순과 허위에 가득 찬 대학강단에서 한 명의 아큐(阿Q)로 살아간다. 이 땅의 인문학 강사들이여, 자기검열에서 깨어날 일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06: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