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터뷰

절필, 권력에 대한 하나의 저항

안도현 시인




법의 이름으로 사법부의 권위 추락시킨 사례
시인들, 펜으로 민주주의 지킬 것

이명박 ․ 박근혜 정권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나쁜 정권
시인들은 독재권력에 맞서 펜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애써 왔다



지난 여름 시인 안도현은 절필을 선언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라는 그의 선언은 ‘안도현 절필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회자되었다. 30여년 간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활동하며 열 권의 시집을 출간해온 한 작가의 갑작스러운 절필 선언이었다. 그가 절필을 선언하게 된 데에는 검찰의 공도 컸다. 안도현 시인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도난 당한 안중근 의사 유묵을 소장하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되었다는 글을 트위터에 게재했었는데,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그를 기소한 것이다.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비방 혐의가 기소 항목이었다. 한국작가회의는 즉각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받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러나 최근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전부 무죄’ 판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최근 판결을 받은 안도현 시인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근래의 심경을 들어보았다.


사법부의 권위 추락시킨 사례

먼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검찰의 기소 사실 자체에 매우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항변했다. “제가 검찰에 기소된 날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날이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자, 정치적으로 물타기를 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희석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를 기소한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검찰의 기소 과정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안도현 시인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도난 상태로 공시된 상태고, 많은 도록과 전문서적이 유묵의 소장자를 ‘박근혜’로 명시하고 있으니, 문화재청 홈페이지와 도록 등의 자료를 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명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검찰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유묵을 도난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그는 재판부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 참여재판 배심원단이 7:0으로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재판장이 사법상의 양심을 운운하며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재판부가 현 정권의 눈치를 봤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국민의 대표로서 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과 자신을 조롱한 판결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안도현 시인은 이번 판결이 “법의 이름으로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킨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절필 선언은 권력에 대한 저항

안도현 시인은 권위적인 군사 독재시기에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고 복구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30여년 간 지속해오던 시를 쓰지 않겠다는 절필 선언에 이르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제 스스로 지켜나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서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시 쓰는 일을 중단한 것은 시를 쓰지 않는 것도 권력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평생의 일을 포기해야 할 만큼 현실은 엄중하기만 합니다. 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일을 거들었지만, 박근혜 정권이 출범할 당시에는 이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의 중추 기관들이 지난 대선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파렴치한 뉴스들이 연일 터져 나왔습니다. 불을 끄기 위한 현 정권의 대응 또한 옹졸할 따름이었구요. 저는 한심한 이들에게 나라를 맡겨 놓았구나 싶어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시인들 펜으로 민주주의 지켜온 것

최근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안도현 시인은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의 나비의 기분’이라는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재판장을 박근혜 대통령의 충신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혹자는 그의 정치 참여와 대외적인 발언을 두고 시인이나 예술가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세간의 견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정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인 정치인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자리에서 시국을 이야기하는 것도 정치고, 선거에 참여해 투표를 하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정치입니다. 물론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현실 정치에 관여할 경우에 그 목적성을 눈여겨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지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어렵게 다듬어온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나쁜 정권으로 규정합니다. 우리 시인들은 일제강점기와 분단, 그리고 무지막지한 독재권력 앞에서 펜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문학이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그 부름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정치를 억지로 분리해서 사고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지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해 전북 이리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5년만에 복직되었다. 최근에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 중이다. 작년 5월 출간된 󰡔북항󰡕을 마지막으로 시 쓰기를 중단한 그가 박근혜 정권을 지나는 동안 마음 속에 어떤 시들을 눌러 담고 있을까? 지극히 평온한 외관 아래에 현실을 향한 공격성을 숨기지 않았던 그의 시의 향방이 궁금해졌다. 단호한 어조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이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지에 대해서 물었다. “대학원 과정은 학부와는 다르게 전문적으로 각자 자신의 전공의 깊이를 획득해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찌 되든 나는 내 전공 공부에만 몰두한다는 식의 논리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학문의 영역을 도서관이나 책상 앞에 묶어두는 것에 불과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과 호흡하는 학문이 필요한 때입니다. 모두가 정치현실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학문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부단히 긴장하는 공부가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정리: 선민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3: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