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발언대]

시간강사의 슬픈 불안



내가 시간강사를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처음 강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내가 배운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는 마음에 박봉의 시간강사라도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학위를 받은 후, 진정한 ‘보따리강사’ 생활에 접어들면서 불안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업 시간강사? 이렇게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강의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대학에 강의전담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거나 아니면 보따리강사가 부끄러워 전업이라 아니하면 강사료가 반토막이 날 수도 있다. 강의료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 난 매 학기 초 강사임용조서에서 ‘전업’에 체크한다. 전업 시간강사가 되니, 우선은 물리적으로 몸과 마음이 불안해졌다. 시간강사를 위한 개인연구실이 있는 학교를 보지 못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공동연구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매일 아침 강의를 위해서 학교에 오면 대도관에 들러 자리를 맡아 놓는 버릇이 생겼다. 혹여 아침에 강의가 있어 점심시간이 지나 들르면 자리가 없다.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일찍 등교한 적이 없는데, 시간강사 생활이 고등학교 때보다 더 ‘빡’세다. 아 그렇구나! 전업 시간강사는 몸 한 곳 둘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끄럽게 무거운 내 노트북 놔둘 곳도 없다.

그나마 강의는 잘하고 싶어서, 강의를 위한 책들-물론 다 필요하진 않지만-을 강박적으로 바리바리 싸들고 학교에 나온다.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올지도 몰라. 이것도 들어가기 전에 미리 보고 들어가야지 다짐하지만 그냥 ‘보따리강사’의 포스를 유지하는 보따리가방인 듯하다. 책 둘 곳이 없어 매일 들고 다니니 어깨는 오십견이 올 것만 같다. 이참에 필요한 모든 책을 스캔해서 스마트패드에 넣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한다. 근데 이런, 스마트패드가 내 한 달 강의료란다.

오늘 수업 후에 학생이 나를 찾아와서 상담하고 싶단다. 고민이 된다. 어디로 오라고 해야하나? 학교 벤치에서? 아님 로비? 아님 못들은 척 그냥 지나갈까? 이메일로 하라고 할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학생은 불안한 듯 쳐다본다. 시간강사는 강의를 고를 수 없다. 그냥 배정해주는 대로 감사히 받아야 한다. 혹여나 감사하게도 다양한 과목을 많이 맡게 되면, 일주일에 강의안만 몇 개씩이나 준비해야한다. 꼭 대학원 때 밀린 발제하는 기분이다. 일주일동안 강의안 만들고 자료 구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런 생활에서 난 또 불안해진다. 내 전공분야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어쩌면 무관한 강의를 맡아야만 하는 현실 혹은 먹고 살기 위해서 맡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내 학문 분야의 최신 논의와 경향으로부터 유리되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언젠가 내 전공의 팔촌 정도쯤 되는 과목을 강의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평가는 후했다. 나의 강의가 열정적이었단다. 그럴 수밖에, 죽을힘을 다해 용쓰면서 강의했으니. 그들의 눈에 열정적으로 보였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문제는 학기 후에 한 학생이 찾아왔을 때다. 내가 강의했던 과목을 전공하여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단다. 조언을 부탁하는데, 뭔가 의미 있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불안했다. 두루뭉술한 조언으로 일관하는 내 모습에 불안했을 학생에게 미안하다.

강의를 업業으로 하는 전업강사에게 고용불안은 숙명인 듯하다. 밥벌이가 불안하니 연구를 꾸준히 할 수도 없다.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더 열심히 노력하면 괜찮은 나만의 연구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다그치지만, 어째 나를 슈퍼맨으로 만들어 보고픈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처럼만 느껴진다. 현실은 바쁜데 연구는 무슨 연구, 그냥 있는 거 예전에 썼던 거 밀어내기에도 급급하다.

내 꿈은 교순가? 그냥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 배움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좋았다. 시간강사 생활이 박봉에 시달리고 불안정해서 힘들지만, 그나마 좋은 것은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을 나누고 가르치는 즐거움일 것이다. 누구는 날 ‘교수’라 부르고, 누구는 날 ‘강사’라, 또 누구는 날 ‘박사’라 부른다. 참 불안정하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둡기 때문에, 시간강사들의 일탈이 늘어가고 있단다. 일탈을 할 생각은 없고, 이번 주말에도 난 복권을 사야만 할 것 같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1:4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