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발언대

- 전공과 적성의 괴리


  필자는 컴퓨터공학도들에게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전산직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공학도들은 전공을 살려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전공의 특성을 활용하여 더 많은 입사 지원 기회를 얻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의 차이는 바로 전공 실력 특히, 프로그래밍 실력에 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기업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군을 분리하여 채용 실기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학부 때 프로그래밍 기초를 잘 닦고,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응용 실력을 쌓은 학생들은 실기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반면에 프로그래밍 수업에 자신이 없어서 개론 수업만 골라 들은 학생들은 시험 뿐 아니라 업무를 수행할 엄두가 나지 않아 타과 학생들과 경쟁해야하는 부서를 지원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학생들 간에 실력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느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적성’이다.

  프로그래밍은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활용하여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컴퓨터 언어의 문법을 첫 번째로 습득해야하고, 두 번째로는 주어진 요구사항을 어떻게 프로그램으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두 번째 작업에서 학생들의 ‘적성’ 차이를 볼 수 있다. 매 학기마다 수업태도가 매우 좋고, 질문도 많은데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문법 공부와 여러 예제들을 분석하는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요구사항이 바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는 하지 못한다. 이런 학생들이 안타까워서 매주 과제풀이 반을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 문제인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한 대다수의 학생들이다. 이들은 조용히 수업을 듣고 실습도 하는데 머리를 써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쫓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 과제는 친구들과 해결하고 성적은 대체적으로 중위권에 속한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최상위권 학생들은 어떨까? 신기하게도 개론 수업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도 이 그룹에 꽤 많이 속한다. 이들은 프로그램 요구사항이 주어지면 덤덤히 받아들이고, 며칠이 걸리더라도 시간 투자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내력이 강하다. 이것은 절대로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입생 때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계속해서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쌓아가고, 교외에서 개최되는 공모전 및 인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는 개론 수업만 듣고, 영어공부만 하면서 졸업한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신입생들에게 미리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세상에 모든 회장이던 사원이던 결국은 매일 아침 출근해야하는 회사원이다. 평생 반복된 일상을 살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그리고 계속 닥쳐오는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택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고, 이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전과 계획을 세워서 적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대신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공 공부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해보아야 한다.”

국내 많은 대학들이 왜 연구 중심 대학이 될 수 없는지를 강의를 하면서 많이 느낀다. 학생들이 적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취업에만 급급하여 전공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데 과연 연구 인력을 모집할 수 있을까? 연구 인력들을 경쟁시켜서 좋은 인력을 키우기는커녕 경쟁 시킬 인력이 없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 대학기관에서나마 신입생들에게 자아 성찰을 통해 적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사명감으로 학생들이 많은 전공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대내외 연구 활동을 통해 연구자로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