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프리젠테이션

내가 맡은 강의에서도 학생들이 주제를 정하고 팀을 만들어 발표를 하곤 한다. 그 중 한 팀이 대학의 시간강사 문제를 다루어보겠다 한다. 우리 자신과 직접 연관되고 흥미로운 주제라며 격려했다. 다들 ‘스펙’ 쌓고 자기 앞가림하다 보면 바로 옆에서 내몰리는 이들에게 관심두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들이 반갑고 기특해서 내가 더 들떠서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팀의 발표를 들으며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좀 다른 종류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학생들은 시간강사들의 시간당 평균 강의료가 3만 5천원, 매 학기 세 과목씩 강의해도 방학을 빼면 연봉 천만 원밖에 안 된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석사도 졸업하지 않은 자신들이 대졸 초봉으로 받는 액수에 비해 얼마나 낮은지, 학위를 따는데 드는 시간과 돈을 감안하고 같은 연배의 다른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또 얼마나 형편없는지 말했다. 솔직히 좀 창피했다. 속으로 ‘그래, 녀석들아. 너희가 오히려 갑이다’하면서 들었다. 성균관대에서 해직당한 류승완 박사가 당시 교과부 앞에서 강사법 시행령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했는데 담당과장이 같은 학과 동기더란다. 물론 사학재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료 대 강사들의 대변자로 만났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의 항로가 달라진 고위관료 대 실직자의 모습이어서 비참하고 억울했다 한다. 내 나이에 가까운 이들이라 더 공감이 갔다.

발표자들은 전국대학강사노조의 한 강사가 학교 안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 앞을 지나는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시위에 무관심한 학생이 많았고 호의적인 학생도 조금 있었지만 다음 학생의 말은 잘 잊히지 않는다. “시간강사의 권리랑 우리의 학습권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시간강사면 더 노력해 학생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뭐 물어보면 ‘이메일로 보내라’는 말만하고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수업의 질도 별로다. 자기들이 선택한 직업이지 않나. 그러면서 왜 처우개선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대뜸 ‘짜식들, 뭘 알고나 좀 얘기하라 그래!’하는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해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비정규직교수의 수업의 질이 정규직교수보다 못한 건지도 마음에 계속 걸렸다.

무엇보다 낯 뜨거웠던 것은 발표 학생들이 시간강사들의 “기회주의”와 “이중적 의식”을 지적했을 때이다. 시간강사들이 ‘나만은 정규직으로 임용될지 모른다’는 희망이나 당장 다음 학기 강의를 얻기 위해 정규직교수들이나 학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부당한 대우를 감내한다는 것이다. 다른 비정규직과는 다르게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가르친다는 자존심이 있지만 생존을 위해 정규직교수들에게 보여야 하는 굴신은 자긍심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임을 비정규직교수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본말과 선후가 뒤집힌 것이다. 발표의 기본 내용도 비정규직교수문제와 전국강사노조의 활동을 소개하고 이런 문제를 양산한 친기업적 교육정책과 대학구조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학생들이 시간강사를, 그때 강단에 서 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신경 쓰였다. 선생이 학생의 프리젠테이션에 의해 리프리젠트된 상황이 재미있었지만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선생으로서의 자질부족이나 살기 위한 타협도 돌아보며 부끄러웠지만, 내 나이에 맞는 경제적 사회적 성취를 떠올리고 남들과 비교하게 되자 더욱 작아지는 듯했다. 물론 이건 그저 내 경우일지도 모른다. 나는 발표가 끝난 후에 꽤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다 결국 “실은 제가 바로 그런 시간강사예요...” 하며 코멘트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도 가난하고 지위가 낮다하여 누군가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회라면 이미 끝장난 사회일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살기 위해선 어느 수준의 물질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어서 품위나 자존심을 매일 집구석에 떼어 두고 나서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들을 부끄럽게 여겨서야 되겠는가? 서울대의 고 백모, 텍사스 오스틴의 고 한경선, 조선대의 고 서정민 박사. 이들은 소박하게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고 애썼던, 열사도 투사도 아닌 그냥 평범한 강사들이었다. 연구, 강의, 잡일들을 성실하게 병행하며 버텼지만 결코 열리지 않던 정규직의 문 앞에서 좌절하고 떠나간 그들을 어찌 부끄러워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은 다른 이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