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는 지난 106년 동안 시대와 민족의 변화를 선도해왔습니다. ‘고대정신’이라 불릴 정도로 ‘자유, 정의, 진리’를 추구하는 교풍(校風)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에서 교육이 연구와 국제화에 밀려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고대신문이 학교의 역사와 변화를 정리하고, 대학교육의 위상과 미래를 다뤘습니다.
<편집자 주>


영혼 없는 교육하는 한국 대학 … 끊임없는 혁신 통해 다시 태어나야  

우리역사는 4.18혁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생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배움을 몸으로 실천하는 제자들이 희생을 당하자 아픈 가슴을 가누지 못한 교수들이 시위대열에 함께 섰다. 순수지성들의 결연한 저항이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씨를 뿌렸다. 오늘날 대학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학생들을 학점 순으로 줄을 세운다. 지식을 사회를 위해 쓰는 지성인 대신 자신을 위해 쓰는 기능인을 양성한다.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의 패자를 만들고 승자의 힘을 정의로 포장한다. 대학교육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학의 모습은 분명 문제가 있다.

첫째, 대학은 영혼 없는 교육을 한다. 대학이 새로운 가치를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고 사회비판능력을 잃어 생명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고도의 성장과정에서 선진국의 실용학문이 필요했다. 따라서 대학의 주요기능이 해외학문을 수입해서 가공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되었다. 한편 정부의 정책은 대학을 정치적으로 순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산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대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급기관으로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은 언론으로부터 일방적인 서열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언론 앞에 고개를 떨구었다.

이러한 대학의 모습에 대해 교수의 책임이 크다. 교수는 각자 고유의 학문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창의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그 내용을 열띤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감동으로 전달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의 잘못을 정직하게 비판하고 올바른 변화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많은 교수들이 시대의식 없이 논문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다. 강의는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연구하고 가르쳐서 학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인가에 대해 애정 어린 고민이 부족하다.

둘째, 학생들은 교육의 주권을 잃었다. 학생이 없는 대학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따라서 학생의 수요에 따라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대학의 규정에 따라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의무만 있다. 대학들이 택하고 있는 학점의 상대평가제는 누군가 희생을 해야 하는 무한경쟁을 강요한다. 따라서 함께 토론을 하고 학습을 하는 공동체 교육을 어렵게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져야 내가 이긴다는 적대적 의식을 길러 사회 발전을 이끄는 지식인의 인성 발달을 저해한다. 더욱이 입시지옥을 힘겹게 빠져 나온 학생들을 다시 학점지옥에 밀어 넣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한다. 학점은 엄격한 절대평가를 기본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벌이 아니라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줘야 한다. 특히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더 큰 보상으로 주어 학생들이 즐거운 경쟁을 하게 해야 한다. 영어강의 수강의무화는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영어강의는 전공분야별로 필요에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학문을 영어교육의 수단으로 희생시키면 안 된다.

셋째, 대학이 재정난에 빠졌다. 대학이 능력사회 대신 학벌사회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대학입시에는 막대한 투자를 해도 막상 대학에는 투자를 안 한다. 돌파구는 약자의 고통강요이다. 결국 등록금을 계속 올려 년간 1,000만원 시대를 가져왔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알바이트로 밤을 지새거나 휴학을 한다. 기업은 대학교육의 수혜자이다. 우수한 졸업생을 채용하여 이익을 번다. 그러나 대학투자에 인색하다. 학교보다 더 큰 연수원을 지을 망정 기부금이나 장학금을 내는 것에는 등을 돌린다. 그리고 졸업생의 실무능력이 없다고 탓을 한다. 대학은 신지식이나 기술을 개발하여 기업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재정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이 먼저 개발하고 대학이 뒤따라 간다. 대학은 기업에게 저자세로 자금을 구걸하다시피 한다.

결론적으로 대학은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학문을 수입하는 대학이 아니라 수출하는 대학으로, 학생의 창의력을 억제하는 대학이 아니라 발산하는 대학으로, 사회불의에 순응하는 대학이 아니라 거부하는 대학으로 모습을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교수와 학생이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갖고 마음껏 연구하고 공부하는 열정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대학은 사회에 올바른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사회는 대학에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여 대학과 사회가 한 몸으로 발전하는 상생체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이필상 본교 교수 ∙ 16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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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1:5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