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대신문입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입니다. 학우 분들도 이때만큼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일을 도우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분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서먹서먹하신 분도, 시간만 나면 ‘취업은 언제하냐’는 잔소리에 몸서리치시는 분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역시 명절은 그만의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놓았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놓았든, 어떠한 철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상을 잠시나마 한발자국 물러나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명절이 아닐까요. 더불어 알듯 모를 듯한 공허감과 일상의 방향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들이 밀려오는 요즘입니다.  

역시, 이럴 때는 글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 학기 고대신문에 실렸던 글 몇 편을 소개합니다.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 선배님들, 학우 분들이 써주신 글들입니다. 매주 배부되는 신문에서 읽어보신 분, 이번에 처음 보신 분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쪼록 학우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탁류세평] 창의교육은 원전 오독에서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96

학생들에게 영화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거의 예외없이 과제를 완수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생각대로 리포트를 썼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표절이나 대필이 아니더라도 내용 요약과 표현들이 너무 흡사한 탓이다. 틀려도 좋은데 새로운 게 별로 없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본 척 할 수는 있다. 영화에 대한 보도기사나 스포일러가 많아 안보고도 많은 정보를 얻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안 본 사람과 본 사람은 그들과 조금만 얘기를 나눠보면 금세 구별이 된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은 구체적인 장면도, 자신만의 생생한 감동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봤지만 별 생각 없이 보았거나, 자신의 견해가 틀렸을까봐 말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를 안 보고도 본 것처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념 없이 보고 독창성 없이 표현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문제는 강의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학기 전공강좌에서 학생들에게 고전 텍스트를 직접 읽게 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뒤르케임의 <자살론>,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원전들은 잘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이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쉽게 읽혀지는 책이란 말은 아니다. 그 가운데 <자본론>을 제대로 다 읽은 학자는 국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지 않던가. 힘들겠지만 학생들에게 원전을 직접 읽고 자신의 느낌과 의견을 노트에 써오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도록 했다. 국내 5명 학자의 뒤를 이어, <자본론>을 완독한 여섯 번째 독자이자 최초의 대한민국 학생이 되는 영광을 안게 될 것이라고 격려도 했다.

학생들은 원전을 읽어본다는 데에는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내용을 정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일부 학생만 제외하면 대부분은 원전 독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리하여 예전처럼 내용요약이나 잘 정리된 개념 내지 이론을 원했다. 하지만 원전의 내용과 이론에 대한 요약은 인터넷에 널려 있고, 이에 관한 서적도 셀 수 없이 많다. 학생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도 또 교수에게 똑같은 것을 원한다.

언제까지 교수나 남이 정리한 다이제스트형 정보, 이미 출판되고 인터넷에 떠도는 낡은 정보만을 습득하려는 걸까. 학생들은 왜 스스로 요약하고 정리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할까. 오랫동안 학생들은 수능위주의 요약정리와 주입식 공부의 타성에 길들여져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몰랐고, 학원에서 요약 정리한 명저 읽기와 천편일률적인 독후감 작성요령을 배워왔다. 대부분 학생들은 원전을 읽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표현하는 데 낯설어 했다. 

남들의 원전 정리나 서평을 미리 읽으면 선입견과 편견이 생길 수 있다. 고전 텍스트에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극할 대목들이 많기에 백지상태에서 자유롭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학생이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창의적인 독서와 발표수업방식에는 교수의 사전 강의나 독서방향 제시도 방해가 된다. 고전에 대한 지나친 경외감으로 주눅드는 것도 금물이다. 오독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려야 한다. 모든 독서는 오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전은 과거에 대해 탁월한 해석과 방법을 보여주지만 현재에 대해선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전의 탁월한 교훈을 음미하며 적용, 비판, 보완을 해보는 과정이 창의적인 공부 방식이다. 지금부터라도 타성적 수업방식에서 벗어나자. 창의교육은 원전을 직접 읽고 오독을 자유롭게 논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택수 인문대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