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어언 30년 전 대학 1학년일 때 첫사랑이 연세대 출신이어서 오랫동안 延·高大가 익숙하였다. 물론 언론을 통해 고연대가 훨씬 자주 노출되기도 하였다. 지방의 한 대학 강단에 서다가 고려대로 오면서 연·고전을 고·연전으로 바꿔 잠꼬대를 하기까지 3년 이상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처음 고려대로 왔을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연세대 교수님들이 내게 종종 하소연했다. “요즘 교내 회의에 가면 고려대가 워낙 빨리 치고 올라와서 온통 고려대 이야기만 한다”. 물론 과장이 섞여 있었겠지만, 3~4년 전의 고려대는 정말 연세대 교수들에게 상당한 부담이었고, 갓 고대인이 된 나로서는 뿌듯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요즘 이분들을 만나면, 아무 이야기가 없다. 이제는 별로라는 내색도 비친다. 延·高大가 곧 高·延大로 바뀔 것 같던 등등한 기세도 어느 틈엔가 사그라졌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정량적 지표인 논문, 연구비 등은 연세대를 따라 가기가 버거워 보인다. 요즘 연세대 교수님들 만나면, 과거 고려대에게 추월 당할 뻔 하였던 악몽(?) 때문인지 정말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다.

최근 발표된 2009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고려대가 연세대를 추월하여 종합 4위를 하였다. 축하하지만 정말 기뻐할 일인가?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대학평가의 항목을 보면 교육여건, 국제화 등은 학교 정책에 의해 심하게 변하는 지표이다. 실제 매년 순위가 급격하게 바뀐다. 그러나 교수 연구업적과 졸업생 평판은 거의 변화가 없다. 즉 학교의 진정한 실력은 연구업적과 졸업생 평판에 의해 결정되며, 이들 지표들은 단시간에 상승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졸업생 평판은 고려대가 서울대와 1.2위를 줄곧 다투고 있다. 하지만, 교수 연구업적은 연세대, 성균관대에 이어 한동안 6위를 유지하다, 2009년에 한양대에 추월 당해 7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고려대의 경쟁력이 졸업생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결코 대학의 중요한 기능인 교수들의 연구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가슴 시린 반증이다.

일전에 한양대 교수님들을 만나니, 한양대는 고난이 시작되었다고 농담을 하신다. 고려대 보다 상향된 기준으로 연구업적을 평가하고, 심지어 정년보장 교수님들도 평가가 강화되어 모두들 힘들어 하신다고 한다. 그 결과가 2009년 한양대의 연구 분야 약진으로 나타난 것 같다. 글로벌 고려대를 위하여 우리 대학 구성원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였으면 한다. 고려대에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고, 정말 열심히 하신다. 자질이 우수하고 열의에 찬 학생들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연구 역량이 자꾸 뒤로 간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해결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간절한 생각이 있지만, 주관적이고 예민한 문제들이 많아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서울대, KAIST, 포항공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여러 경로로 듣는 연세대, 한양대 등이 추진중인 여러 정책들을 보면 앞으로 차이가 더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우리도 앞으로 뭔가 더 극적인 변신을 꾀해야 할 것 같다. 고려대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신 이사장님, 그리고 고려대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앞서는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교수님들, 교직원님들 및 학생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연구 및 교육의 高·延大가 조만간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 글이 진정 고려대를 위한 충정임을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훈(보건과학대 교수·생체의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