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학 09학번 새끼호랑이 나어흥양. 나양은 대학에 오면 중앙도서관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빌려 고뇌를 하고, 잔디밭에 앉아 선배, 동기들과 심각한 토론을 해보기도 하는 생활을 할 것이라는 ‘논스톱’스러운 로망을 가지고 입학을 했으나…….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철학책, 문학책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추천하는 주변인들. 어느새 나양도 토플책과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니 3월 한 달, 나양의 캠퍼스 라이프는 고등학교 때의 로망과는 한참 멀어졌다.

  수강신청 날. 몇 과목은 수강신청 3초 만에 빨갛게 ‘마감’표시가 뜨는 반면, 몇 과목은 3월 초순이 돼도 10명이 채 몰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취향 및 선호도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이런 선호/비선호 과목들이 몇 학과에 치중돼 있다면?

▶ 학생들 “기초학문은 흥미 없어요.” 줄줄이 폐강

  이번 학기 폐강된 과목은 총 102개. 그런데 이 폐강된 과목 중 많은 기초 학문 수업들이 폐강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월 19일 KUBS 보도) 그 실태를 정확히 알아보고자, 우리학교 폐강 과목의 리스트를 보면 실용영어나 대학영어, 신입생 강좌와 같이 복수 개설이 된 과목을 제외한 교양 및 전공 과목 중 폐강된 과목의 수는 75개. 이 중 우리가 기초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수업은 ‘고전 문학과 역사 기행’, ‘동아시아 문명사’, ‘대수학특강’ 등 25개로 전체의 30%를 넘어가고 있다. 폐강 과목 중에는 ‘커리 큘럼 변경’이나 유사 과목 개설 등의 이유로 다른 이름의 과목으로 대체돼 개설된 과목들도 있어, 순수하게 학생의 선호가 낮아 폐강된 과목만을 생각한다면 기초 학문 폐강 비율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다른 학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연세대학교 총 30개의 과목이 폐강됐고, 이 중 ‘언어와 문화’, ‘문학과 사회’ 등 기초 학문 수업이 폐강된 경우는 10과목으로 역시 30% 가량 이르렀다. 서울대의 경우는 폐강된 전공 과목의 수를 산출해 놓지 않아 폐강된 교양 과목의 수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국 고대 사회의 고고학적 이해’, ‘나노 기술의 이해’, ‘식물과 생활’, ‘한국 고전 문학과 성’ 등 총 4과목이 폐강되었고, 이 중 인문학, 또는 자연 과학과 관련된 수업이 다수 폐강됐음을 알 수 있다.

▶ 기초학문 붕괴, 이대로 가면 과학, 문화 발전 어려워져

  95년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억하는지. 매장을 확장하기 위해 지하의 기둥을 불법으로 빼, 지상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백화점이 폭삭 무너져 버린 대형 사고였다. 이 후에도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은 다리 및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면서 기초 공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기초 학문의 붕괴’라는 말은 최근들어 나온 말이 아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던 삼풍백화점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듯,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학문도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기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또한 기초 학문이 튼튼하지 않으면, 응용 학문도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학교 국문과 김일철 교수는  “수학, 물리학, 화학이 약하면 응용과학이 약해지고, 문학, 철학, 사학이 약해지면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없다.”이와 같은 현상에 우려를 표시했다.

▶ 기초 학문 전공자 키우지 않는 사회

  그렇다면 왜 우리 대학생들 사이에 기초 학문이 이렇게 천대받고 있는 것일까?

  취업 등을 할 때 응용 학문을 한 사람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최근 들어 우리학교 뿐 아니라 타 학교에서도 경영대학 전공 수업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세대 교무처 관계자는 “경영학과 과목의 경우, 이중전공과 부전공자 등 거의 모든 단과대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밝혔다.

  기초 학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기초 학문을 소외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최근 지원자 수가 감소하는 추세긴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이나 언어 등을 심도 있게 배워 이러한 학문에 대한 이해를 높여, 우리나라처럼 기초 학문이 천시 받지는 않는다.

  또한 학부제가 기초 학문의 소외를 가속화 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공이 배정돼서 들어오는 학과제에 비해, 대학 입학 후 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 보니 비인기 전공에는 지원자가 적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기초 학문 육성, 다른 학교의 사례로 배워본다면

  수능 성적표가 나온 후의 고3 교실. 진학 지도를 하는 담임 교사와 학생. 학생의 장래 희망과 적성을 토대로 희망 대학과 학과를 논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수능 성적표에 나온 백분위와 등급을 본 후 배치표에서 해당하는 칸을 짚으며 “일단 대학 가자”고 설득하는 담임이 대다수이다. 이런 진학 지도 후, 자신의 전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앞으로 어떤 학문을 배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입학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남들이 좋다는 인기 지원을 해 붙은 후야 ‘차라리 인문학을 배울껄,’ 또는 ‘공대에 갈껄 그랬나’하고 후회하는 학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학교 국문과 김인환 교수는 “기초학문의 범위와 교육방법에 대한 토의 결과를 정리한 안내서를 발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학교에서는 단과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또는 전공진입자 등을 위한 전공 설명회 등을 통해 각 전공의 특성에 대해 알려주고 있지만, 그 전부터 각 전공에 대한 설명이 담긴 책자등을 통해 꾸준히 기초 학문에 대해 학생들에게 알려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교양 수업 등에 신청 인원이 적게 몰리더라도, 학교 측에서 지원을 해 최대한 폐걍률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 서울대 교무과 측은 “서울대는 타 학교에 비해 기초 학문 폐강률이 낮다”고 밝혔다. 실제 폐강 과목의 비율을 보면 서울대학교는 전공을 제외하고 단 4개의 교양만이 폐강된데 비해, 우리학교는 총 102과목, 전공 및 신입생 강좌 등을 제외하면 총 46개의 교양과목이 폐강이 됐다. 우리 학교의 폐강률이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세대의 경우와 비교해도 폐강된 과목의 수가 비교적 많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 교무처에 ‘폐강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문의해 보니, 서울대의 경우 수요가 한참 못 미쳐도 어느 정도 감안을 해서 최대한 폐강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학교는 교양과목은 20명, 전공 10명, 영어 및 외국어 강의 7명, 신입생강좌 10명, 실험실습강의 10명 미만의 학생의 수강신청을 했을 경우 폐강이 된다. 서울대 측에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부 법규는 없으나 최대한 폐강으로 인해 교수 및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초 학문을 육성하기 위해선, 정부와 대학의 협동이 필요하다. 충남대가 매달 열고 있는 ‘대전 인문학 포럼’이 바로 지자체의 지원이 기초 학문의 육성에 도움이 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포럼은 충남대 인문대학이 주최하고 대전시가 1000만원의 재정 지원을 해 매달 인문학계의 유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하는 행사이다. 지난 3월 24일에 연  포럼은 원래 200명을 대상으로 하려고 했으나 희망자가 많아 급하게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을 대여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학교의 경우 특강이나 포럼이 각 부서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각 학과사무실이나 동원리더쉽센터, 또는 교양교육실에서 주로 이런 행사를 주관하는데, 홍보도 미비하고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특강 시간 때문에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지 않는다. 또한 충남대의 경우처럼 큰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각 강연마다 연관성도 적고, 큰 계획이 잡혀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충남대의 경우 시와 함께 하는 사업인 만큼, 적어도 1학기의 연사 및 포럼 날짜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벌써 다 짜여져 있었다.

  부실한 공사가 대형 참사를 가지고 오듯, 우리도 우리 학문의 대형 붕괴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기초 공사를 손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가시적인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미래의 더 큰 참사를 위해선 지금부터 다시 기초를 튼튼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