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9월 고연전이 기다려지는 것은 학우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고연전의 함성을 추억하다 보면 고대를 대표해 활약하고 학교를 떠난 운동선수들의 근황 역시 궁금해진다. 여기 작년도 프로야구 2차 지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졸업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며 활약하고 있는 한 선수가 있다. 바로 본교 체육교육학과 04학번, 여건욱 선수.

(여건욱 선수 (오른쪽))

여건욱 선수는 작년 9월 SK 와이번즈 유니폼을 입었다. 학창시절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것에 비해서 드래프트 순위에서는 다소 밀렸다. 하지만 프로 선수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고, 탄탄한 실력과 묵묵한 노력으로 많은 것을 만회해가고 있는 그. 직구가 최고 146km의 구속을 자랑하며,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뽐내는 투수다.

전지훈련이 끝나고 시범경기가 개막했다. 19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는 1사 만루 상황에 교체 투입돼 1실점만을 허용하는 등 활약을 보여줬다. 이처럼 그는 새롭고 넓은 환경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가고 있다. 아마추어 대학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과 프로 구단에 입단해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그에게 물었다.

“몇 개월 되지는 않았지만 던져보니 실투를 놓치는 타자들이 없어요, 특히 1번 타자들 쪽에는. 아마추어에서는 (제가 던지는) 공이 빠르다고 생각해서 직구를 던지면 파울이 나오고 그렇게 되면 유리한 카운터에서 타자를 제압할 수 있었는데, 프로에서는 실투를 던지면 안타나 홈런을 맞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정심을 잃게 되어서 볼넷을 주거나 연타를 맞게 되더라고요. 그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여 선수의 말에서 결코 빈틈이 허용되지 않는 프로들의 세계가 느껴지는 것 같다. 야구는 심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종목인 만큼, 큰 무대에서 긴장을 하게 되면 큰 선수가 될 수 없다.

“긴장을 원래 잘 안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긴장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또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다소 긴장이 되네요.”

치열한 프로의 세계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할 법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야구 꿈나무들이 여 선수처럼 당당히 프로 야구선수로 데뷔할 날을 손꼽으며 오늘도 실력을 연마하고 있지 않은가. 그도 학창시절 멋진 선배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항상 모델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선수는 지금 삼성 감독님이신 선동열 선배님이에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님이시고,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고의 투수시죠. 한때는 서재응 선배님이 멋있어 보이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변덕이 심한가봐요(웃음). 요즘 서재응 선배님 성적이 좀 좋지 못하시다보니 다시 또 선동열 감독님이 예전에 던지시던 동영상보고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하죠.)”

우리학교 81학번 선배이기도 한 선동열 감독이 해태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당시 대단했던 프로 야구의 열풍만큼이나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한창 진행 중인 WBC에서도 우리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지금도 야구에 대한 그 인기가 못지않다. 바야흐로 한국야구의 부흥기가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가 스포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또 그만큼 야구를 지켜보는 관중도 많아졌다. 시즌 개막은 내달 4일로 눈앞에 다가왔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경기를 서게 될 여건욱 선수는 감회가 어떨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한다는 자체가 프로 선수로서 좋은 것 같아요. 플레이 하나하나에 관중분들이 박수도 쳐 주시고 야유도 해주실 거고 이런저런 응원도 많이 해주실 건데, 프로야구선수는 인기를 먹고 사는 거잖아요. 실력도 겸비하고, 인기도 많이 얻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어야죠.”

“직구도 자신 있지만, 포크볼을 배워서 요즘 잘 사용하고 있어요. 타자들 헛스윙을 유도 하거나 범타 처리할 때 쓰죠. 타자를 타이밍을 흐트러트려가지고 풀스윙을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에요.”

신인선수답다고 해야 할까, 아님 그 반대로 신인선수답지 않다고 해야 할까. 자신감이 넘치는 여 선수의 포부가 시원시원하다.

기자가 만난 여 선수는 신중하고 조용하지만, 꽤 장난기가 있어 보였다. 대학 재학 시절에 에피소드를 물으니 자신은 대학의 로망을 잘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고 회상하는 그다. 지금은 운동선수들도 필수 학점을 채워야 하는 규정이 있어 학교에 자주 와서 강의를 듣곤 하지만, 여건욱 선수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는 주로 운동 숙소가 있던 송추에서만 훈련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때문에 학교 지리를 몰라 시험 시간에 지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후배들은 학교를 자주 가고 그랬었는데 저는 학교를 진짜 잘 안 갔거든요. 한 10번 갔나? 거의 송추에서 생활해서 그렇죠. 대학시절에 몇 안 되게 기억 남는 게 있다면 1학년 때인가, 임해훈련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 바다 수영 하는 거. 거기서 같은 체육 교육과 친구들이랑 선배님들이랑 그때 많이 친해졌던,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참, 시험에 지각했던 기억도 나네요. 시험 보는 장소를 프린트해서 갔어요. 그런데 거기를 못 찾아 가겠는 거예요. 학교를 워낙 안 갔으니까. 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갔는데도 이미 시험을 보고 있고. 학교 안에 어디 찾아오라 하면 정말 어딘지 모르겠어요. 학교가 크잖아요. 그래서 아는 데는 중앙광장이랑 사대 신관본관, 중앙도서관 그 정도?(웃음)”

그러면서 그는, 일정이 너무 바빠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함께 공유한 친구들과 전혀 만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최근엔 일본에서 세달 여 기간 동안의 전지훈련도 있었다. SK 내에서, 실력이 좋은 소위 스페셜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단 명단에 뽑혀 추가적으로 더 훈련까지 받았던 것. 그러니 친구들과 만나 휴식을 가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 그러나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동기들과 항상 연락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격려가 된다고 했다.

(일본 훈련 때 여건욱 선수)

“(친구들을) 고연전 끝나고 나서 못 봤던 거 같아요. 전부다 각자 다른 구단으로 가게 되고, 또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자주 못 만나는데, 연락은 아까도 버스에서 인천 오면서 안동현 친구하고, 유광조 친구하고, 박성호 친구하고 했어요.”

대학시절의 마지막 2년을 가르쳐주신 양승호 감독님도 아직 찾아뵙지 못했다고 하는 그. 여 선수 기억 속에 있는 감독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잘 웃으셨고 선수들 위해서 편하게 해주실려고 그러고 때로는 호랑이처럼 무섭기도 하셨고 한마디로 좋은 감독님이시죠. 제게 말씀은 별로 없으셨지만, 마음으로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기자는 조금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여건욱 선수에게 마지막 고연전이 되었던 작년도 정기전 얘기였다. 당시 우리학교는 연세대에게 9대 2로 크게 패했다. 우리 학우 분들은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얻어갔겠지만, 반면 선수들은 큰 좌절감을 맛본 쓰라린 경험이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건욱 선수는 참 욕심이 많은 선수였다. 그만큼, 자신이 4학년 선배로서 치룬 작년 고연전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해 보였다.

“될 수 있으면 작년 고연전 정말 생각을 안 하려고 그래요. 한 고연전 끝나고 정말 한 달 동안은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데, ‘내가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생각을 안해야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생각이 들더라고요. 운동장에 나가가지고 몸을 푸는데 연대 쪽에는 텅텅 비었더라고요. 그런데 고대 쪽은 계단까지도 자리 잡고 앉아계시고 지고 있는데도 그렇게 응원해 주시는 거 보고 시합 중에 막 눈물이 날려고 했어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 이렇게 해주는데 우리가 이렇게 플레이 하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제가 점수 차이가 좀 나는 상황에서 올라갔고, ,나름대로 던지고 내려와서 9회가 되었는데 작년에 우리가 이기고 나서 했던, 9회 2아웃 3아웃되는 순간 뛰어 나와서 서로 막 부둥켜 안고, 그랬던 걸 연대생들이 하는 게 너무 보기 싫은 거에요. 그래서 저는 9회를 안 봤어요. 어떻게 보면 잘못된 건데... 먼저 버스 타서 버스 안에서 연대 학생들이 지르는 함성소리 듣고 ‘아, 끝났구나.’ 혼자 버스에 타있는 순간 이제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이것으로 대학생활이 끝이구나.’”

선발이었던 신정락 투수 다음으로 마운드에 선 여건욱 선수는 점수 차이가 이미 벌어져 있던 차라 마음에 부담도 더했다고 한다. 게다 당시 여 선수는 선수들 내에서 소위 ‘4학년 병’이라고 일컫는, 일종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프로에 입단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심해지면서, 4학년 선수들이 성적이 부진해지는 경향을 두고 선수들 사이에서 이를 ‘4학년 병’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래서 3학년 때까지 최고의 선수로 자타가 공인했던 그도 4학년 때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었다.

“끝나고 나서 생각해 본건데요, 제가 감독님이랑 코치님한테 한번 선발로 나가면 안 되겠느냐고 말해볼까도 했거든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신정락 선수가 너무 좋았고 또 제가 말할 그런 위치가 아니었어요.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한 성적을 가지고 선발 나간다고 하기엔. 중요한 게임이잖아요. 학교로서도, 선수로서도.”

누구나 좌절의 순간은 겪게 마련이고, 모두가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분명 후배 선수들 중에도 여건욱 선수가 했던 고민을 안고 있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여 선수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여 선수의 당부에서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과,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 연습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해가지고 프로 드래프트 지명 순위 앞당기고, 4학년들은 마지막 고연전인데 이기는 방법밖에 없죠. 무조건 이겨야죠. 열심히 해서 꼭 이겼으면 좋겠어요. 작년같이 그런 안 좋은 일 되풀이 안했으면 좋겠어요.”

여 선수는 누구보다 학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여 선수에게서 조금은 유치하지만,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땐 자부심 빼면 시체라 그랬어요. 친구들이 저한테. 신촌에 놀러간 적 단 한 번도 없고요. 파란색 티, 파란색 신발, 파란색 핸드폰 파란색은 단 한 가지도 진짜 사용 안했습니다.”

여 선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많은 학우들이 궁금해 할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해 대학 4년 동안 선의의 라이벌로서 매년 맞붙었던 연세대학교 선수들과 만나게 됐을 텐데, 팀 내에서 고대-연대 간 신경전은 없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여 선수는 신경전이라기보다는 짓궂은 장난처럼 선수 간에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고 대답했다. 한때는 라이벌이었지만, 팀 내에서 또 다시 한 동지로 게임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같은 추억을 공유한 만큼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다고 했다.

“1년 위에 권영진 선수라고 1루수보고 투수도 하고 3번 타자 쳤던 선수가 있는데요. 제 성격도 그렇고 영진이형 성격도 그렇고 서로 장난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오히려 권영진 선수보단 김용우 선배님이나 최길성 선배님이나 나이 드신 분들과 장난을 더 치곤 하는 것 같아요. 그치만 나이차가 더 있다 보니까 직접적으로는 못하는데, 뒤에서 말하고..(웃음) 그렇다고 뒷 담화 하는 건 아니라요, 그냥 조용히 선배님 귀에만 살짝 들리게끔, “연대가 뭐 잘하는거 있었나?” 이런 식으로 말이죠.(웃음)”

연대 출신 선수들도 있지만, 최근엔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 고졸신인들도 많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큰 여 선수인 만큼 그는 이 선수들에게도 자신이 고려대학교를 다녔다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곤 한다고 했다.

“지금 같이 들어온 고졸 선수들이 한 4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4명 그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보면 대학생활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다시 고3으로 가더라도, 2004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가더라도 다시 고대를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대답해요.) “프로에서 러브콜이 와도요?” 이렇게 물어와요. 그럼, “난 다시 고대다.”(라고 해요.) 고대가 제 얼마 안 되는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되게 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걸 알게 되었고, 하여튼 저는 다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제 선택은 고대에요.”

애교심을 마음에 간직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진 그. 그는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그 자신의 목표를 위해 오늘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4월4일이 한국 프로야구 개막전이거든요. 지금 현재로서는 목표가 개막전 엔트리에 드는 거구요. 그다음 목표는 그때 가서 다시 세워야죠. 이미 마음속으로는 정해졌지만 앞에 있는 목표 먼저 달성해 놓고 그 다음 목표를 향해 가야죠.”

당찬 그의 각오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만큼,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