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또 베네의 이재훈 쉐프님은 한국의 이탈리아식 요리 실력으로는 한 손에 꼽히고 그 중에서도 한식 식재료를 이탈리아식으로 풀어내는 솜씨는 대한민국 원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십니다. 최근에는 바로 옆집인 빨레 드 고몽 총괄 쉐프도 맡으셔서 고몽의 퀄리티도 상당히 높이셨지요.

한달 전 쯤 갔었는데 고파스의 학생 분위기와는 안 맞아서 여긴 안 올렸다가 요즘 사치와 향락 분위기에 발맞추어 포스팅 해 봅니다.
간만에 귀국하신 80년대 학번 선배님께서 사모님이랑 방문하고 싶다고 여자친구 데리고 나오면 밥 사주신다기에 여자친구랑 냉큼 달려갔었습니다.

글 쓰고 보니 사진이 멋대로 올라갔는데 맨 아랫쪽의 2가지가 전채 요리였습니다.

멍게를 회뜬 다음 스파클링 와인에 살짝 데쳐 와사비를 섞은 크림 무스에 찍어먹는 요리였는데 함께 한 독일 리슬링 와인과도 환상적이었고 와인에 데치니까 비린내는 전혀 없으면서 살은 익지도 않고 상큼한 향이 도는 것이 아주 훌륭했네요.

그 다음은 싱싱한 피꼬막을 토마토와 부추, 소금과 올리브유로 아주 센 불에 빠르게 볶아낸 요리인데 빠르게 익히되 완전히 조개가 질겨지지 않게 만들어서 육즙이 팍팍 터지는 꼬막과 즙 많은 토마토를 같이 씹는 맛이 아주 그냥...!! 와인이 술술 들어갔습니다.

맨 윗 사진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특산 파스타인 따야린(Tajarin)입니다. 이 지역이 모스카토 다스티,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같은 제가 좋아하는 와인 산지여서 와인 공부할 때 몇 번 들르며 아주 좋아했던 파스타인데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다가 뚜또베네 메뉴에 올라와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따야린은 아주아주 얇은 생면 파스타인데 달걀을 듬뿍 넣어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걸 먹는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허브 세이지 잎과 아주 좋은 버터만 넣어서 허브향만 살짝 도는 버터맛 파스타를 만들거나 간 쇠고기와 토마토, 와인을 오랫동안 뭉근히 끓이고 졸여 만든 라구 소스에 비벼 먹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이번엔 4명이다보니 이 2가지 방식을 모두 내어 같이 나눠 먹었습니다. 산뜻한 버터세이지 따야린과 아주 묵직하고 고기맛의 존재감이 그득한 라구 따야린 ㅠㅜㅠㅜ

2번째 사진은 앞접시에 쉐어한 다음인데, 여튼 양송이 라비올리입니다. 라비올리는 이탈리아식 만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재료를 밀가루 피로 싼 음식인데 이 라비올리는 안에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볶아서 졸인 양송이가 들어가고 소스는 양송이를 갈아 만들었습니다. 이 음식의 신묘한 점은 라비올리의 밀가루 피는 아주 하늘하늘하게 익었는데 속의 고기는 레어 스테이크이고 고기와 볶은 양송이가 같이 씹히는 식감은 생 양송이를 불에 구워 씹을 때 결대로 씹히는 바로 그 식감이라는 점입니다. 이거 너무 신기해서 집에서 몇 번이나 따라해 보려고 했는데 전혀 안 되더라구요 ㅠㅜ

3번째 사진은 단골들이 요즘 '청담동 최고 족발 맛집 뚜또 베네' 라고 놀리는 이유입니다. 돼지 족발을 섬세하게 파내서 껍질과 발톱은 그대로 두되 뼈와 살을 제거한 뒤 이 살을 향신료와 함께 갈아 소시지 속 반죽처럼 만든 뒤 다시 속에 채워넣어 찌고 굽고 파로 만든 향유를 끼얹은 겁니다. 속 살은 부드럽고 촉촉한 즙이 가득하고 족발 껍데기는 부드러우면서 쫀득합니다. 불에 구운 향도 은은하고 고급 중식에서 하듯 뜨거운 기름에 파를 볶아 파 향기가 달달하게 배인 향유를 만들어 구운 파, 매쉬드 포테이토와 함께 얹어주시는데 그 맛이 또 끝내줍니다. 올드 빈티지의 바롤로와 함께 했는데 정말 훌륭했습니다.

4번째 사진은 단골들이 '돼지바' 라고 부르는 세미프레도입니다. 세미프레도는 아이스크림의 일종인데 일부러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로 부드럽게 만든 아이스크림입니다. 이게 흘러내리지 않도록 겉을 돼지바처럼 코팅하고 초콜릿 시럽을 뿌려 주는 거죠.

5번째 사진은 우리나라 티라미수 원탑인 뚜또베네의 티라미수입니다. 한국 소믈리에 대회 1등 경력의 김진석 소믈리에가 직접 고르고 볶고 블랜드한 원두로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려 그것으로 촉촉히 적신 시트에 마스카포네 치즈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티라미수가 맛이 없으면... 인생이 참 불행하겠죠 ㅠㅜㅠㅜㅠㅜ

사치와 향락을 즐기기 위해선 애석하게도 돈이 많이 듭니다. 오늘의 코스 요리는 와인 제외하고 음식만 미리 4인이 인당 7만원으로 알아서 맞춰 달라고 예약을 했습니다. 뚜또베네는 단품요리들을 따로 시키는 것이 더 메인인 곳이지만 4인 이상일 경우 미리 예약을 해서 가격에 맞게 코스를 짜 달라고 부탁드리면 굳이 단골이 아니더라도 해 주시고, 의외로 그게 만족도가 더 좋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흔히 보이거나 익숙한 메뉴들을 시키게 되는데 뚜또베네는 그렇지 않은 현지식 음식들이 훨씬 더 맛있거든요. 멍게와 꼬막처럼 메뉴판에 없는 것도 가끔씩 내 주시기도 하고 말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2:4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