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섯칼국수를 시키면 늘 '고기는 안해요?'하고 물어보기로 유명한 등촌에서 냉면을 개시했다기에 가봤습니다.
문앞에 냉면 사진이 박힌 입간판이 서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고기 사진은 왠지 생목살 사진인거같았지만 기분탓이었겠죠..?
물냉면을 주문했는데, 거의 뭐 시키자마자 바로 나옵니다. 설성인줄 알았어요.
비주얼은 다른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계란, 오이, 무 등등. 근데 육수얼음이 잔뜩 올라가있어요.
얼음덩어리 때문인지 양도 좀 많아보이고, 일단 어서 나를 마셔봐라고 속삭이는 듯한 그 모습에 혹해서 육수부터 한모금
후루룩 들이켰는데.... 달아요. 엄청 달아요. 고기 파는 집이 아니니까 어차피 육수는 사서 쓰는거라 큰 기대 안하긴 했지만,
워낙에 물냉면을 좋아해서 육수를 안남기고 다 마셔버리는 저인데도 나중에는 물려서 남길 정도로 달더라구요.
그리고 면을 한젓가락 죽 집어서 먹어봤는데.... 질겨요. 엄청 질겨요. 부정교합이 있는 사람은 한입에 한그릇 다 먹어야돼요.
공업용과 식용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식감 때문에 정신이 멍한 채로 꾸역꾸역 먹고 있을 무렵에 고기가 나왔습니다.
근데.. 이게 뭐랄까. 간장불고기..? 암튼 제육볶음에 쓰는 고기를 그냥 간장넣고 후라이팬에 볶은 뭐 그런거예요.
숯불고기는 구울때 연기가 많이 나는데 버섯칼국수 팔던 집 주방에 그 연기를 빼낼만한 시설이 되어있지 않을테니
나름 색다른 방법으로 고기를 만들어 내놓은 것 같은데.. 고기를 먹으면서 느끼는 불만족감이 '냉면에는 숯불고기'라는
공식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별로예요. 엄마가 냉장고에 있는 고기 구워먹으라고 해서 혼자 굽다가
색다른걸 해보고 싶어서 간장 들이붓고 졸였는데 실패했지만 버릴 수 없어서 먹는 그런 느낌. 아무런 특색도 없고 양도 적어요.
냉면은 제 친구고 냉면은 제 삶의 일부인데 그런 냉면을 먹다가 그냥 빨리 해치우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다니 서글펐어요.
무척 햇살 뜨거운 한여름에 운동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냉면 주세요!' 하고 외치며 자리에 앉아 연신 손으로 부채질하다가
냉면이 나오면 육수를 꿀떡꿀떡 마시고 얼음을 촵촵 씹어먹으며 눈깜짝할 새에 한그릇 다 비우고 배를 탕탕 두드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 때에만 갈 것 같은 집이예요. 안 그런 날엔 그냥 안갈래요.
물냉면/비빔냉면 5천원, 곱배기는 6천원, 고기추가는 3천원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30 19:27: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