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아직 안녹았는데 한 철 앞서나가는 학교괴담>

어느 망자(亡者)의 식당 소개 : <수향>

 "오늘 점심은 <숙향>에 가서 먹자."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말은 <수향> + <묵향>의 합성어임이 드러났다. 내가 너무 책을 열심히 읽었나. 역시 그렇겠지. (아하하하하하) 어쨌든 점심을 숙향, 아니 수향에 가서 먹게 되었다.

 이건 그냥 별 과장없이 차분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하는 얘긴데, 그제도 나는 이 집에서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삼가 바다의 솜사탕이라 부르고 싶은 <오징어볶음>과 세상의 모든 '1인분'에 경종을 울리는, 마치 제정 로마 시대의 궁중 연회를 연상시킬 만큼 막대한 양을 자랑하는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때 내 오른쪽 어깨 너머 후방 5시 방향에 앉은 누군가가 맛깔스럽게 먹던 학교 근처 철판볶음계의 단연 백미 <철판볶음밥>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나를 이리로 다시 부른 것이다. 사실 뭐 학기 중에는 자주 찾던 곳이었다. 복학 후 학교 다니면서 점심의 거진 과반 이상을 나는 이곳에서 해결했다. 허나 오랜만에 와서 정감 있었다, 라기보다는 몇 가지 문제가 눈에 띄었다.

 우선 영업 전략상의 실책이다. <반찬 부페>라는 새로운 슬로건은 명백한 잘못이다. <밥-반찬 무한정 리필 / 마음껏 가져다 드세요> 정도의 문구에서 이미 그 아가페적인 넉넉한 인심은 충분히 확인된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본격적인 부페식 식당 <ㅊㅁ>에 비하면 <부페>라는 관점에서의 이곳 반찬은 양으로나 종류 수로나 아무래도 밀리는 감이 있다. 즉, 괜한 문구로 오히려 옆집과 비교되면서 열세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서빙 및 카운터의 비숙련도 눈에 띈다. 잔돈 계산이 잘못된 거 같다며 좀전에 먹고 나간 팀이 다시 돌아왔을 때 내 테이블엔 밥 한 공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물론 맛은 있다. 반찬도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테이블 위를 가득 메운다. 그냥 아무 반찬이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브로콜리 같은 걸 막 가져다 주신다.

 식당의 본질은 맛이다. 전부라곤 함부로 말 못하겠지만 많은 절대 다수의 사회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문제, 계급의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식당 역시 최종 심급의 문제는 맛이다. 그것이 역사의 장엄한 법칙이다. <결국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실체는 음식>이라는 유물론의 위대한 통찰이다. 바로 그러한 <절대적인 맛>의 힘이 마케팅 상의 전략적 실패와 서비스 상의 잔실수에도 불구하고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곳으로 향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제 한번 닫혔던 나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왼쪽엔 참치, 오른쪽엔 볶은김치를 배치하여 한 숫갈 먹으면 마치 비둘기가 물어온 배추 한 잎에 뭍이 가까이 있다며 기뻐하던 노아의 환희와 격정이 바로 내 온몸으로 전해져 사지를 타고 흐르는 듯한 <참치김치철판볶음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도대체 참치 한 통을 다 부었단 말인가. 요즘 참치 작은 캔 하나만 해도 1,000원이 넘던데, 이렇게 재료를 막무가내로 아낌없이 쏟아부어서야 뭐가 남는단 말인가. 오른쪽의 김치는 어떻고, 먹기 좋게 롤스로이스 기법으로 조각조각 뿌려진 상추며 김은 또 어떤가. 아무리 숫가락질을 해도 저 아래 뭍힌 밥은 보이지 않는 막막함, 닿을 수 없다는 절망감! 밥을 먹으러 왔으나 밥을 먹지 못하는 단돈 3,500원의 부조리!

 한번 삐딱해진 마음은 함께 주문한 순두부찌개의 엄청난 순두부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포장된 순두부 400g이 2,000원에 육박하는 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무모함에 나는 아연했다.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이 넘치는 인심은 위험하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미증유의 과잉 인심이 그 따뜻한 기운으로 내 심장을 마침내 폭발시켜버릴 것만 같았다. 이것은 살인적이다! 혹시 악마의 술수가 아닐까? 허나 미처 막을 틈도 없이 순두부의 첫 숫가락이 입 안에 침략해들어왔고, 마치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한 장면처럼 나는 그 치명적인 맛 앞에서 무력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아주머니께서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형상으로 집에서 담궜다는 무 한 접시와 함께 덤으로 디저트로 딸기 한 접시마저 건내며 기어이 확인 사살을 하셨단 사실이다.

 그리하여 지금 하나의 유령이 학교 근처를 떠돌고 있다──<수향>에서 참치김치철판볶음밥과 순두부찌개를 먹다 죽은 때깔 고운 귀신이. 사실 <수향>은 기존에 찾던 사람들이 주로 찾는 매니악한 곳이다. 그 이유는 오직 <맛있는 건 나만 알고 먹어야지>라는 이기심이 유일하다. 나 역시 지난날 그런 이기적인 손님으로서 살아왔으나, 더 이상은 소문이 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로써 나는 <수향>의 존재를 쉬쉬하던 다른 손님들에게 배신자요 공적이 되었다. 그들은 이런 날 맹렬하게 비난할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있다. <수향>의 위대한 맛과 인심은 필요하다면 사람을 하나 매장하고 입막음을 해서라도 독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고 누구도 날 막을 순 없다. 나는 다른 손님들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수향>의 충신으로 죽으리라.

 카우츠키의 사돈의 팔촌의 일촌은 이런 말을 했다. "<입소문>의 운반자는 <식당>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학생-손님>이다. 그러므로 <입소문>은 외부로부터 식당들의 <맛의 투쟁>에 도입된다." <맛있는 건 나만 알고 먹어야지>라는 독점의 욕망은 <시장>을 왜곡하거나, 혹은 <시장>의 본질적인 불완전성을 반영할 뿐이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해결책은 <세계>에 대한 <개입>이다. 어떻게 <나>라는 유한한 출발점에서 그것을 이룰 것인가. 이 글이 세계에 개입하는 <나>의 구체적인 <행위>로서 작용할 수 있길 바란다.

 덧. 근데 진짜 맛있냐고? 이 몸은 먹다 죽은 때깔 고운 귀신이다. 귀신은 거짓말 안한다. 믿고 따르라.

20080228 김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