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썼던 글이라 반말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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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사람들에게 전통주는 다소 낯선 술이다.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홍보 노력에 의해 이강주, 소곡주, 홍주 등 다양한 전통주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이름이 썩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안동소주만은 어느정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색 병의 희석식 소주 때문일까.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전통주를 대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대체 어떤 술이길래 전통주의 대표격이 되었을까. 시판되는 안동소주 중 가장 오래된 주조법으로 주조되었다는 조옥화 명인 민속주 안동소주를 통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소주는 안동 지역에서만 만들어지는 술은 아니다. 곡물을 발효시켜 밑술을 내고, 이 밑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 주조법은 평양 지역(문배주)이나 제주 지역(고소리술)에서도 목격되는 방식이며, 그 전통은 안동소주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전인 고려시대로부터 이어진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지역에서 각자의 소주 만드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안동소주만이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의 대표격으로 유명해졌을까? 그 이유는 최초의 소주 대량생산 공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0년, 안동에는 조선반도 첫 소주 대량생산 공장이 세워지게 된다. 그 이름이 안동주조회사.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소주의 이름이 제비원표 소주이다. 이전까지 소주는 대개 집 안에서 개인적으로 주조하는 가양주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소주를 대량생산하여 상품화한다는 것은 상당히 혁신적인 발상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맞아들어가, 제비원표 소주는 조선반도 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까지 수출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것이 안동소주의 유명세의 기원이 되었다. 소주 하면 안동주조회사의 제비원표 소주. 하던 것이 소주 하면 안동소주. 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비원표 소주가 유명세를 달리는 것과 별개로 안동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마시던 민속주로서의 안동소주는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일제는 주세 징수를 위하여 가양주의 주조를 엄격하게 통제하였고, 기존에는 가양주를 주조하여 마시던 사람들도 이러한 탄압을 피해 공장에서 나온 소주를 마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의 상황도 썩 우호적이지 않았다. 곡물을 증류하여 소주를 빚는 것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작업이다. 끼니를 때우기도 빠듯한 곡물로 술을 담는 것도 모자라 그 밑술을 증류하여 내리는 술이니 그만큼 양곡 소모가 크다. 당연히 곱게 보일 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곡주, 특히 증류주의 주조를 막았는데, 결정적인 것은 1965년의 양곡관리법 시행이었다. 쌀 등의 순곡으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한 이 법에 의해, 가양주 뿐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 제비원표 소주까지도 주조가 금지되었다. 제비원표 소주는 우리가 흔히 아는 희석식 소주로 바뀌었으며, 종래에는 금복주에 통폐합당하게 되었다. 전통 방식의 증류식 소주가 자취를 감추고 희석식 소주가 '소주'의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증류식 소주의 제법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법을 피해 꾸준히 밀주를 만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무형문화제 제12호, 전통식품명인 제20호 조옥화 명인이다. 안동 지역 어르신들은 조옥화 명인을 농담과 존경을 반쯤 섞어 '제일 오랫동안 밀주를 만들어서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만든 밀주가 결국 전통 증류식 소주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현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조옥화 명인에 따르면, 민속주 안동소주는 안동 지역의 가장 전통적인 제법을 따른 술이라고 한다. 밀로 누룩을 띄우고,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전술을 낸 뒤 증류하는 방식이다. 백미와 누룩을 서로 다른 비율로 추가해 가며 3번에 걸쳐 발효시키는 박재서 명인의 3단 사입법과는 다른 투박한 방식이다.

800밀리리터짜리 호리병. 유리병 형태의 저도(25도 내외)주가 나오는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와 달리,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는 45도짜리만을 판매한다. 조옥화 명인의 설명에 따르면 최초 증류시는 70도가 넘는 소주가 나온다고 하며, 이를 계속 증류하여 가장 맛이 좋은 45도가 되도록 맞춘다고 한다.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는 민속주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민속주란 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마시던 술로, 조옥화 명인은 자신의 안동소주가 일반적인 '증류식 소주'가 아닌 '안동 지역의 민속주로서의 소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스키 잔에 따르려고 했는데, 당장 씻어놓은 게 없어 아쉬운대로 비운의 보니토 와인잔에 한 잔을 따랐다. 증류 후 별도 숙성 없이 바로 병입하는 쌀 증류주다 보니 색은 완전히 투명하다. 따르는 순간 알싸한 알콜향과 함께 누룩향과 단 곡향이 강하게 피어오른다. 나무를 태우는 듯한 연기냄새가 특징적이다. 이 부분이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나 다른 증류식 소주와 구별되는 조옥화 명인 안동소주의 특징적인 점이다. 박재서 명인 안동소주가 3단 사입과 정제 과정을 통해 누룩 냄새나 불 냄새를 없애고 쌀의 곡향을 강조하는 데 반해,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는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두어 향과 맛이 굉장히 거칠다.

 높은 알콜 도수에도 달달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최근의 증류식 소주와 달리, 입에 머금는 순간 알콜 향과 누룩 향, 불 향이 강하게 입안에 퍼져 쉬이 삼키기가 어렵다. 넘어갈때도 다소 매캐하게 목을 태우며 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강한 향이 지나가고 나면 쌀을 기반으로 한 술이 기본적으로 그렇듯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찾아오고, 누룩의 향은 진하지만 깔끔한 후향이 되어 남는다. 섬세하고 부드럽다는 일반적인 전통주의 이미지와는 달리 거칠고 강하면서 복합적인 맛이다. 

 같은 증류주인 위스키와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통 속 숙성에서 오는 추가적인 풍미는 덜하다. 하지만 기름지고 향이 강한 안주도 쉬이 곁들일 수 있을 법한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맛이 특징적이다. 안주 없이 술만 마시더라도 입안에 남은 후향이 다음 잔을 찾게 하는 그런 술이다.

 이 안동소주는 800밀리리터 한 병이 35,000원이 안 된다. 소주라고 생각하면 희석식 소주랑 비교하게 되니까 엄청 비싸게 생각되는데, 위스키나 보드카같은 다른 증류주랑 비교해 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게다가 전통주라 인터넷 구매도 되고 말이다.

 요즘 소확행이 유행이 되고, 혼술이 대세가 되며 위스키같은 비싼 술을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 중 한번쯤은 전통주에 할애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나 또한 안동소주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통주를 찾아 즐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