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년 가까이 살았던 건물에서 이렇게 더러운 기분으로 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법대후문 GS25 인근에 위치한 대성빌딩에 살았구요, 며칠전에 다른 건물로 옮겼습니다. 다음은 제가 그 건물 영감님께 드린 편지 전문입니다. 학생보다 그저 돈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읽어 보세요! 참, 요즘 고대 학생들에 대한 영감님의 재미있는 평가도 있습니다.

현재 소유하신 대성 빌딩에서 얼마 떨어진 가까운 곳으로 방을 옮겼고 월세 20만원이 채 안되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방보다 훨씬 깔끔하고 조용하며 쾌적해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방 계약 때 여기 건물주께서 하신 말씀이 영감님 건물에서 이쪽으로 거처를 옮긴 학생이 꽤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저에겐 마냥 단순하게 들리진 않더군요.

저는 108호에 살던 학생입니다. 무언가 말씀을 드리려고 할 때마다 영감님 하고 싶은 말만 하시고 제 말은 계속 막으셔서 편지로 대신 말씀 올립니다.

얼음통과 화장실 부속품이 없어진 것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해 웃어른 앞에서 목소리를 다소 올린 것에 대해, 그리고 전화 예절이 바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것들이라 처음 이에 대해 말씀을 꺼내셨을 때는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 상황에서 갑자기 영감님께서 ‘그런 말은 나한테 안통한다’고 하시며 저를 거짓말하는 것처럼 취급하셔서 흥분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저는 그 두 가지를 본 적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도 인간인 이상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순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사과를 먼저 드립니다.

학생이 방을 쓰면서 잘 없어지는 물건이 있으면 이에 대해 계약서에 명시를 하셔야 나중에 이의 제기가 가능한 겁니다. 엊그제 저한테 말씀하실 땐 얼음통과 싱크대 뚜껑 이 두 개가 잘 없어진다고 하셨으면서 ‘그럼 이를 기록해야 하지 않나’고 여쭈니까 그렇게 치면 기록 대상이 넘쳐난다고 하셨죠? 책상이나 의자 침대 등 분실 가능성이 없는 가구류를 빼면 그 외에 기록할 것들이 대체 뭐가 있는 건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시엔 서랍 및 옷장 손잡이 같은 걸 예로 드셨는데.... 솔직히 웃을 뻔 했습니다. 기록에 남기지도 않고 아무런 조치도 없는 상황에서는 설마 학생의 고의로 그런 것들이 없어진다 쳐도 영감님은 할말이 없으신 겁니다. 차라리 새 학생이 방에 들어올 때 ‘이런 두가지 도구가 있으니 쓸거면 써라’고 하셔서 쓸 사람에게만 확실히 양도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한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을 나중에 와서 ‘없다’고만 하시면 저희 학생들은 어이가 없으며 자신의 실수가 있는 학생이라도 관련한 기억과 영감님이 제시하는 증거가 없는 한 절대 수긍하지 못합니다.

제가 영감님께 정말 실망한 점은 너무나 뻔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겁니다. 학생이 비운 방을 청소하기 위해 아줌마를 쓰는 비용이 학생이 부담하는 것이 이 동네 뿐만 아니라 신림동도 그렇다고 말씀하셨죠? 신림동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친구, 여기 법대 후문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친구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영감님을 어떻게 생각할지 예상되지 않으시는지요. 너무나 당연하게 계약서 상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면 이기는 건 제 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렇게 편지로 제 생각을 전해드립니다. 청소비로 제했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또 제 말을 막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실까봐 일단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한겁니다.

제가 방을 험하게 썼다고 하셨죠? 이에 대해 제가 인정할 수 있는 건 딱 하납니다. 벽에 붙였던 사진을 뗄 때 도배가 작게 네다섯군데 벗겨진 거 그것뿐입니다. 그 외에 제가 다른 어떤 시설을 파손하거나 아니면 더렵혔나요? 전혀 없습니다. 그 어떤 가구나 가전기기에도 흠집 하나 없습니다. 방바닥도 마찬가지구요. 벽 군데군데 얼룩이 남아 있는 건 모기를 죽일 때 생긴 제 핏자국입니다. 설마 이걸 탓하실리는 없을 거라고 믿으며, 설령 탓하신다 해도 오히려 할 말은 제가 있습니다. 모든 틈을 틀어 막아도 밤새 들어오는 모기 때문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룻동안 잡아 죽이는 모기가 7-8마리는 됐으며 무엇보다도 긴 시간동안 한두마리씩 들어와서 낮부터 밤늦게까지 시달렸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더군요. 참다참다 이에 대해서 말씀 드렸을 당시에도 그냥 ‘원래 그런거다. 다 그런다’만 말씀하셨죠? 지금 제가 있는 이 방은 전혀 그렇지 않고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른 건물 어디에 있는 방도 그렇지 않습니다. 비닐과 테이프로 에어컨과 창틈을 막고 하루 종일 화장실 문과 싱크대 뚜껑을 닫고 있고 하루 내내 현관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모기는 여름 내내 하루 종일 나타나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상황은 이와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제가 쓴 방을 특별히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청소를 하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운 방 청소는 당연히 건물주가 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신림동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와 통화하실 때엔 ‘얼음통 사는거. 변기 고치는 거 다 푼돈이다, 돈은 문제가 안된다. 중요한 건 계속 사실을 부정하는 학생의 태도다’라고 말씀하시더니 기어코 다른 사유를 들어가며 보증금에서 제하시는 것을 보고 인간적으로 실망 많이 했습니다. 요즘 고대 학생들은 공부는 안하고 거짓말만 배운다구요? 고학번일수록 요령을 피운다구요? 그리고 그게 꼭 저에 대한 말은 아니라구요? 화법이 특이하십니다. 하신 말씀중에 최소한 ‘나이 먹을수록 요령을 피운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영감님을 면전에서 뵙고 끝까지 사실 관계를 따져 부당하게 떼인 돈을 돌려 받는 건 어른 공경의 차원에서 마음이 편치가 않아 그냥 편지를 통해 그간의 사정과 그 외에 이 방에서 살면서 느낀 불편함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려 합니다. 그리고 다른 고대 학우들의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 편지 전문을 제가 아는 모든 고대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릴 예정입니다.

- 창문을 모두 닫아도 건물 뒤 주차장에서 차가 시동을 걸 때마다 매연 냄새가 스며들어 옵니다.

- 방음 전혀 안됩니다.

- 엘리베이터 앞에서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새벽 두세시까지 시끄럽고 방에 필요이상으로 먼지가 많이 쌓여 이사온 처음 한달간 코 안에 피가 굳어 있는 등 살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 제가 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열쇠로 문을 여셔서 두 번이나 크게 놀랐습니다. 두어번의 짧은 노크에 ‘예’라고 크게 대답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두 번째엔 기분이 많이 상했습니다. 두 번 모두 사과 한마디 안하셨구요.

- 모기. 정말 끊임없이 들어왔습니다. 빈틈이나 구멍이 전연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낮부터 새벽까지 끊임없이 들어오더군요. 영감님께서는 현관을 여닫을 때마다 들어오는 거라고 하셨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거니와 그 방에서 하루 종일 처박혀 있는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 무엇보다 배달시킨 신문이 없어지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요, 아마 스무번 가까이 누군가 제 특정 신문을 가져갔습니다. 어떤 날은 뻔뻔하게 섹션이나 광고지만 남겨놓기도 하면서요. 역시나 이것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냥 일찍 나와서 가져가라고만 하셨습니다. 신문도 엄연한 사유재산입니다. 현관에 설치된 CCTV의 용도를 여쭈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건물주 차원에서 메모를 통해 간단한 공지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언젠간 새벽에 일어나 신문 안쪽 면에 경고 글을 써놓고 새것처럼 다시 정돈해 바깥에 놔뒀는데,,, 나중에 슬쩍 보니 바로 영감님께서 그걸 읽고 계시더군요. 그 때 저랑 마주친 것 기억나시죠? 그리고 그 날만 유일하게 신문이 이미 펼쳐졌던 흔적으로 제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번창하세요.

200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