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강동 공사하고 그 주변에 시끄러워서 더 손님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원래 예전부터도 꼭 구두방 추천하고 싶었지만요ㅋ
학교 안에 구두방 있는거 모르는 분 은근 많이 있네요. 중도와 사대 사이로 들어가서
중도 뒷편으로 가보면 조그만 가건물같이 구두방이 있습니다. 여느곳처럼 번호 자물쇠도
팔고 열쇠 복사도 해주십니다.
특별한 것은, 딱히 닫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그곳에서
홀로 먹고 주무시며 구두를 고쳐주십니다. 술도 못마시시고 혼자 남은 생을 보내시는
처지시라 딱히 주말이라도 어디 가지 않으시고 매일같이 아침 7시부터 밤11시까지 문을 여세요.
당뇨가 있으셨는데 다리가 썩어가는 것을 모르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리가 불편하시고
눈도 잘 보이지 않으시지만 50년 넘게 이일을 해왔는데 어떻게 눈이 안보인다고 못할 수가
있냐며 너무 잘 고쳐주십니다. 고대에 계셨던 햇수가 오래된 만큼 사회에 나가고도 학교에
들르면 일부러 만나뵙고 가려고 동문들이나 교수님들께서 심심치 않게 구두닦으러 오신다고
합니다. 다리가 썩어가는 것을 성금을 모아서 고쳐주신 분들도 그런 선배님들이시고요.
할아버지께서 실력도 실력이시지만 2000원 정도부터 시작하는 굽갈기 같은 것도 꼭 좋은
물건을 쓰셔서 며칠 신어보면 알아요. 그 덕분에 요즘에 다들 물가가 올랐는데 손익이 잘 맞진
않지만 고대생들한테 얼마 더 받아서 뭐 하겠냐 하십니다. 다 가족같고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할아버지께서 말이 많으시진 않지만 갈때마다 안부나 질문을 꺼내면 적적하신 게 덜어
지시는지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나 고대 예전 이야기, 일하시면서 생긴 에피소드, 구두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데 재미있고 도움도 많이 됩니다. 할아버지의 충고는 듣는 게 좋지요.
여학생들은 실내화 없으면 학교에 새 구두를 신고 와서 발이 다치거나 갑자기 신발이 망가지거나
할 때 참살이길까지 나가서 싼 슬리퍼라도 사기 난감했던 적 있을건데요, 이럴 때 할아버지
찾아가면 됩니다. 구두 안쪽을 살살 두드려 주셔서 덜 아프게 해주시기도 하시고 어떤 게 문제인지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안에 손님을 위해 마련된 슬리퍼를 빌릴 수도 있고요. 물론 양심껏 사용하고
감사히 돌려드려야 하겠지요. (딱히 돈을 주고 구두를 고치지 않고도 이유를 말씀드리고 정중하게
부탁드리면, 당연한 것에 왜이리 예의차리냐는 듯 빌려주신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단지 장사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고대생들의 발을
묵묵히 다독거려주신 분이십니다. 학교에서 학회 주점이라도 한다면 부침개라도 한 장 부쳐서
찾아가는 재롱둥이들이 되어보아요ㅋ 교내비공인 재롱자격증이라도 발급을... 응... 응?!
아참, 복사카드도 판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7:0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