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붕선생益朋先生이 군역軍役을 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 같은 소대小隊의 선임先任이자, 고려학당高麗學堂의 사형師兄 왈,
“혹시 자네는 고파수高波水라고 알고 있는가?”

익붕선생이 대답하길, “초문이옵니다.”
그러자 사형은 담배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잇더라,
“끌끌끌, 자네는 고려학당에 몸을 담은지 꽤 되거늘, 아직 고파수를 모르는겐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동물원動物院이라는 곳에 들려보게나.
자네가 면학勉學에만 힘을 쓰니, 세간에는 어둡구나.”

“사형, 그곳은 어떠한 곳입니까?”
익붕선생이 묻자, 사형이란 자는 가볍게 웃더라.
“고파수는, 고포웅高布雄이라는 자가 처음 세운 촌락으로,
고려학당에서 함께 배우던 학우學友들이 모이는 곳일세.”

익붕선생, 재차 묻기를,
“그렇다면 사형, 동물원은 어떠한 곳입니까?”
그 물음에 대하여, 사형은 담배연기마냥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곧 알게 될걸세.”라고만 하더라.


익붕선생이 군역을 다한 어느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더라.
“사형께서 그리 말씀하셔, 내 고파수라는 곳이 매우 궁금하구나.”

익붕선생,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고파수 앞에 도달하였는데,
촌락이라고 들었으나, 그 규모가 과연 사형께서 칭찬할 따름이로다.
거대한 대문 앞에, 수많은 장정과 아낙들이 줄지어 서있더라.

그런 광경에 넋이 나가 멍하니 서 있자,
황색 도포와 호랑이 가면을 쓴 괴한이 다가오더라.

“선생께서는 어연 일로 오셨소?”

“내 사형께 듣기론, 이 마을이 고파수라고 들었소만.
이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데, 어찌하면 되겠소?”

그 자는 헛기침을 크게 하고 익붕선생에게
“당신은 고려학당의 학우가 맞소이까?
신분이 불명한 자는 출입이 금지되오.”

그 말을 들은 익붕선생은 소매에서 학당증명서를 꺼내, 괴한에게 보여주더라.
그 자가 증서를 훑어보고 말을 잇기를,
“이를 보아하니 고려학당의 학우가 맞소.
향후, 고파수를 방문코자 할 시에는 이 명패를 상시 소지하고 다니시오.”

익붕선생, 작은 목판을 건네 받으면서 묻더라.
“이게 무엇이오?”

“그 패는 선생께서 고파수의 회원임을 보이는 것이오.
이 명패를 타자에게 양도하거나, 매매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소.
기우에 그쳤으면 하나, 혹여 그런 불상사가 있을 경우,
한 해 동안 고파수 출입은 생각도 하지 말구려.”

“알겠소, 그리 하외다. 헌데, 당신은 누구요?”

“본인은 고파수의 촌장, 고포옹高布翁이라고 하오.
고파수에 학우가 늘어 환영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나,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기에, 이제는 고파수에 얼굴을 비출 수 없소.
말이 많았소. 이만 가 보겠소이다.”
하며, 군중 속으로 사라지더라.


익붕선생, 고파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진기한 풍경이 많더라.
고파수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건물이 여럿 있어,
각각 정사게政事揭, 호게虎揭, 우게優揭라고 하였다.
그 가운데 있으며, 가장 거대한 호게에 입장하자,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서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더라.

운동 얘기를 하는 자도 있거니와,
물건을 대여할 수 있는지 묻는 자도 있었고,
바 선생이 가택 안에서 난을 피우고 있음을 걱정하는 자도 있거니와,
동자들에게 학문을 사사한다는 이가, 쉬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다른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었으며,
미래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포부를 외치는 이도 있고,
곡식을 양도하겠다며, 추첨을 하는 이도 있더라.

헌데, 그중 가장 특이한 관경은,
그런 호게 가운데서, 홀몸으로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자였다.
그 자는 자신의 미모를 뽐내는 듯,
헐벗은 몸으로 하체를 유려하게 흔들며,
자신의 고간을 타 학우들에게 자랑하더라.

“저 자는 무엇을 하는게요?”
익붕선생이 옆의 행인에게 묻더라.

행인은 혀를 차며 대답하길,
“저 딱한 자는 탈출한 것이외다.”

“탈출이라 함은, 저 자가 옥에서 나왔다는게요?”

“다르오. 저 자는 악명 높은 동게이動揭異외다.
저 자는 이곳 호게가 동게動揭인줄 착각하고
눈을 뜨코 차마 볼 수 없는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오.”

익붕선생은 찬란하게 고간을 뽐내는 그 딱한 자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동게란 곳이, 내가 지금 향하는 그 동물원이렸다.
헌데, 저런 광인들이 동게에서 왔다고 하니 심히 두렵구나.
사형께서 동물원을 들리라고 함에는 큰 뜻이 있을 것이다.’

이윽고 익붕선생은 발걸음을 옮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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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게 탈출했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3 08:5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