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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제 올린 북해도 여행기에서 우즈벡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관심 가져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원래는 다른 여행기를 업로드할까 했는데,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우즈벡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제목에 물음표가 붙어 있는 이유는, 사실 우즈벡을 여행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난 2017년, 본교 사회봉사단 소속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1월 29일부터 2월 12일까지 머물렀는데, 주중에는 현지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 수업을 했고 여행은 주로 주말에 이뤄졌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사회봉사단 정식 단원은 아니지만, 사회봉사단 부단장님이 저희 과 교수님이셨고, 저희 단과대 학생 4명을 별도로 모집했기 때문에 선발되는 행운을 겪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 중에서도 본교 해외봉사단을 통해 우즈벡 땅을 밟아 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고, 그 중에 또 일부는 저와 같은 기수로서, 2주간 동고동락을 했던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ㅎㅎ
제가 이쪽 음악은 잘 몰라서... 일단 우즈벡 국가를 BGM으로 넣어 보았습니다.
여튼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다녀간 곳은 많이 없습니다.
사진 찍은 순서에 상관없이 제가 짧게나마 봤던 것, 들었던 것, 겪었던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설명을 드리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1.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정부청사 앞에는 광장이 있고, 그 광장의 중앙에는 티무르의 동상이 있습니다.
원래는 마르크스의 동상이 있었는데 독립을 하고 민족정기를 세우는 과정에서 새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머나먼 후손으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주변 부족을 규합하여 대제국을 세운 인물로,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벡의 영웅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의 우즈벡족은 티무르의 후손을 몰아내고 현재의 영토에 자리잡은 민족입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티무르 제국을 계승했고, 또 우즈벡 지역 출신 인물 중에 티무르보다 유명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티무르의 나라'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민족의 개념이 불분명하기도 했고,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동네 민족의 역사가 좀 많이 복잡합니다.
튀르크 + 몽골 + 페르시아 + 아랍 + 러시아... 아이고...
2. 그리고 그 앞에는 티무르 박물관이 있습니다.
다행히 영어를 하는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이쪽 동네 사람들의 영어 구사율은 정말 절망적입니다...
3. 박물관 안의 지도입니다.
티무르 제국의 최전성기라는데 어느 정도 우즈벡 국뽕을 감안하고 보셔야겠습니다.
연두색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역이고 실제 영토는 민트색입니다.
여담이지만 말년에 티무르가 명나라 원정을 계획하다 병사했다는데, 실제로 이뤄졌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지네요.
4. 제가 수업을 했던 학교입니다.
타슈켄트 교외에 있는데,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대충 우리나라 가평초등학교+가평중학교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한국어 수업은 사전에 희망자를 받아서 진행하였는데, 우즈벡어 반과 러시아어 반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습니다.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 중 상당수가 학교에서 자국어를 주로 쓰는 학생과 러시아어를 주로 쓰는 학생을 나누어 수업을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보다는 좀더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는데, 그래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말 안 듣는 학생, 장난치는 학생은 항상 있었습니다 ㅎㅎ
고려인 학생들은 거의 러시아어 반에 있었는데, 항상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마지막 날에는 울기까지 했습니다... ㅠㅠ
5. 평일 점심은 저 학교에서 급식을 같이 먹었습니다.
사진은 우리나라의 칼국수 비슷한 라그만이라는 음식입니다.
중국의 라몐과 같은 기원을 가진 음식이라고 하네요.
한복도 김치도 중국 거라고 우기는데, 라그만 갖고 우기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6. 같은 라그만도 밖에서 비싼 돈 주고 사먹으면 이렇게 고오급으로 나옵니다... ㅎㅎ
7. 이거는 우즈벡어로는 '오쉬', 러시아어로는 '쁠롭'이라고 부르는 볶음밥... 이 아니라 기름밥입니다.
우즈벡에서는 결혼식 하는 날에 신랑 집안 남자들이 다같이 모여 오쉬를 만들고, 이를 신부 가족에게 접대하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남자들은 다 오쉬를 만들 줄 안다고 합니다.
8. 얘네도 만두를 먹습니다.
고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맛이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우즈벡 요리는 전반적으로 중국 요리와 터키 요리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근처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안암에도 사마르칸트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문 닫은 지 오래지요 ㅠㅠ
9. 숙소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이런 모스크가 있습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모스크라고 합니다.
비오는 날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슬람교는 소련 치하에서 탄압을 받았고, 우즈벡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슬롬 카리모프도 기본적으로 종교에 비우호적인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회유책으로써 이런 모스크를 짓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네요.
10. 안에 한 번 들어가 봤습니다.
대부분의 모스크는 비신자들이 예배당 안에 못 들어가게 하지만, 여기는 특별히 막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11. 타슈켄트 시내에 중국 식당이 있는데, 특이한 점으로 식빵과 함께 요리가 나옵니다.
세속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슬람 문화권이라서 돼지고기 요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12. 여기는 타슈켄트의 가로수길이라는데, 현지인들은 브로드웨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저희의 수업을 도와주던 현지 고등학생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모두 브로드웨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한국어를 잘 하고, 한국 유학을 꿈꾸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대부분 그 꿈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중 한명은 우리 교우가 되었습니다 ㅎㅎ
13. 이젠 사마르칸트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수업이 없는 일요일에는 당일치기로 우즈벡의 고도, 사마르칸트에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왕복 기차표입니다.
'아프로시욥'이라고, 우리나라의 새마을호에 해당하는 기차로 최대 시속 18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아프로시욥은 사마르칸트의 옛 이름이라고 합니다.
다른 공산권 국가들도 그렇지만, 이 나라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어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기차역에서도 여권 검사와 보안검색을 합니다.
현지인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국내용 여권과 해외용 여권이 따로 있다네요.
14. 사마르칸트는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제국의 창시자, 티무르의 무덤이 있습니다.
티무르는 죽기 전에 '나의 무덤을 건드리는 자는 그 나라에게 전쟁의 악마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실제로 소련이 1941년에 이 무덤을 발굴하자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건의 선후관계가 바뀌었다는 말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15. 티무르의 무덤으로, 그의 스승과 자손들도 같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16. 사마르칸트의 중심, 레기스탄 광장입니다.
원래는 이곳에 시장이 있었는데, 17세기경에 학교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건물이 세 개 있는데 모두 학교였고 서로 라이벌 관계였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저 미나렛(첨탑)은 2년에 한 번씩 죄수를 떨어뜨려 사형시키는 곳이었다고...
17. 학교 내부입니다.
1층은 강의실, 2층은 기숙사였다고... 네 매우 부럽습니다.
지금은 저 방들 중 일부가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8. 이런 예배당도 있습니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향해 있으며,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종교답게 기하학적인 문양과 서예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19. 점심으로는 또 라그만
20. 그리고 샤슬릭(꼬치)을 먹습니다.
양꼬치뿐만 아니라 닭꼬치, 소꼬치(?)도 있었습니다.
저 큼지막한 양꼬치 하나가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 정도 합니다...
21.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비비아늠 사원입니다.
비비아늠은 티무르의 첫 왕비이자 가장 사랑했던 왕비입니다.
이 비비아늠도 칭기즈 칸의 머나먼 후손이었고, 원래는 티무르의 친구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티무르를 배신하자 티무르는 그를 죽이고,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칭기즈 칸의 후손인 그녀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그녀의 무덤이 있습니다.
겉에서 보면 상당히 아름답지만...
22. 속은 이렇습니다.
이 사원 자체가 티무르와 비비아늠의 말년에 지어졌다 보니 공사 자체가 날림으로 진행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몇 백년 동안 인근 주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여기서 빼다 쓰는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근본이 부실공사인데다 벽돌까지 유실돼 버려서 구 소련, 그리고 현재 우즈벡 정부에서는 적당히 콘크리트를 발라 현상유지만 되게끔 하고 있다고 합니다.
23. 사원 옆에는 이렇게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24. 사마르칸트에서 마지막으로 간 곳은 울르그벡 왕의 천문대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터만 남아 있습니다.
원래는 땅 속에 묻혀 있었는데, 한 러시아 고고학자가 시장에서 굴러다니는 포장지(...)를 보고 그 존재를 알아내 발굴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굴러다니는 아무 종이 주워다가 포장지로 쓰는 건 똑같나 봅니다.
울르그벡 왕은 티무르의 손자로, 과학과 예술을 장려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단명하여 많은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25. 타슈켄트에도 교우회가 있더라고요.
마지막 날에 교우회 선배님들께서 식사를 사 주셨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남겼는데 또 라그만이네요...
정신없이 보드카를 마시다가 여권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짧게나마 우즈벡 이야기를 풀어 보았는데, 2주 동안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의 글에 풀어내다 보니 오히려 약간 길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오래 되어 기억이 잘 안 나는 부분도,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또 어떤 여행기를 올리면 좋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 完 -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6 0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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