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말씀 끊어서 죄송한데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 12월10일 오후 8시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 재미동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의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모자를 쓴 한 고교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끝나고 하라’고 저지당한 지 20초쯤 지나 그는 불이 타오르는 양은 냄비를 들고 연단 쪽으로 향했고, 다른 관객에게 저지당해 냄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행사장에 연기가 가득 차고 관객 200여 명이 대피했다. 이 사고로 2명이 화상을 입었다.
익산경찰서는 12월14일 인화물질이 든 양은 냄비를 터뜨린 혐의로 고교 3년생 오민준군(18·가명)을 구속하고 12월18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오군의 가방에서는 1ℓ들이 황산 병이 발견됐다.
한국에서 증오 범죄와 테러의 서막이 호남에 사는 고등학생으로부터 열린 걸까? 여러모로 낯선 조합이다. <시사IN>은 전북 익산에 있는 오군의 학교 ㅇ공고와, 그가 11월5일부터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ㅁ업체 등을 찾았다. 그가 온라인에 남긴 궤적도 훑었다. 오군은 ㅇ공고 화공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범행 당시에는 폐정유 처리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기숙사 생활에 야근이 잦았고, 연봉은 1500만원 정도였다.
오군은 범행 계획과 과정을 애니메이션 커뮤니티 ‘네오아니메’에 수차례 올렸다. 그는 범행 전날인 12월9일 네오아니메에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 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나인 줄 알아라”는 내용이었다. 이어 “질산칼륨 빻는 중이다” “봉길 센세의 마음으로” “예쁘게 잘 구워진 로켓 캔디” 등 여섯 차례에 걸쳐 폭탄 제조 과정과 사진을 올렸다. 범행 당일 오후 3시3분에는 자신이 직접 YTN에 ‘난폭하게 시위한다’고 제보했다고도 밝혔다. 그 이후에도 “고량주 한 병 마시고 벼르고 있다” 등 4차례 더 글을 올린 뒤, 밤 10시49분에 익명으로 수갑 찬 자신의 손을 찍어 올렸다. 실시간 중계를 한 셈이다.
오군은 네오아니메뿐 아니라 일베에도 예고 글을 올렸다. 범행 전날 오후 ‘다호’라는 닉네임으로 ‘내일 종북 콘서트 간다’라는 글과 행사 예정 장소 사진을 올렸다. 오군은 행사 전날 사전 답사를 갔고, 사건 후 일베에도 수갑 인증 사진을 올렸다.
이 사건은 몇몇 언론에서 ‘일베 고교생 테러’로 보도됐지만, 그는 범행 당시 일베에서 밴(이용 정지)을 당한 상태였다. 그는 당일 오후 네오아니메에 ‘누가 일베에 중계 좀 해주라’고 쓰기도 했다.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일베에 올린 아이디는 친구 것을 빌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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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은 교우 관계에 특별한 문제가 있지는 않아 보였지만, 현실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훨씬 강한 소속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쉽게 주목받는 이용자는 아니었다. 그가 남긴 글은 주제와 상관없이 대부분 ‘무플’(댓글 없음)이었다. 이에 그는 ‘어그로’(의도적으로 도발해 관심을 끔)를 끄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돌아오는 것은 관심이 아니라 강퇴(강제 퇴장)와 차단이었다. 그가 거쳐간 거의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복된 일이다.
오군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올리고 “대화 좀 해줘” “나랑 대화하는 알바 쓰고 싶다”라고 쓰는 등 외로움을 드러내곤 했다.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해먹었다는 내용도 눈에 띄게 많았다. 현실 세계보다 온라인에 소속감이 쏠려 있다 보니 어머니와 갈등도 컸다. 오군은 12월3일 네오아니메에 어머니가 마우스를 숨겨놓고 출근했다며 욕설을 썼다.
그는 원래 “만년 웃대인”이었다. ‘웃긴 대학’이라는 커뮤니티의 게임 게시판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여러 차례 ‘정학(이용 정지)’ ‘IP 차단’을 당했다. 그래서 계정을 6개 만들어 돌려쓰기도 했다. 하지만 4월3일 IP 차단이 마지막이었다. 오군이 “3년간 지내던 곳을 뜨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라며 마지막으로 남긴 작별인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님 누구세여?’였다.
웃대에서 퇴출당한 오군은 ‘일베’로 넘어갔다. 거기서도 오군은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일베도 오군을 “퍽하면 밴 때리는” 곳이었다. 일명 ‘고어짤’(피를 흘리는 잔혹한 그림)이나 ‘료나’(여자 캐릭터가 맞거나 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 취향을 지닌 오군은 자신이 올리는 그림 수위 때문에 자주 밴을 당했다.
“갈 데까지 갔구나 싶어서 간 곳”이 ‘수용소’(일베 애니메이션 게시판에서 파생된 사이트로 오타쿠를 위해 만들어진 곳)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올린 게시물이 문제가 되어 그만두었다. 마지막으로 닿은 곳이 네오아니메였다.
오군은 네이버 블로그에 “갈 곳이 없습니다. 커뮤니티 하나 붙잡고 살려고 해도 적응을 못하는 건지 뭔지”라고 썼다. 새로 가입한 네오아니메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당장 ‘이분 버려진 몸 ㅋㅋㅋㅋ’ ‘여기저기 치여서 여기로 오냐 ㅋㅋㅋㅋ’ ‘파란만장한 새끼네’라는 댓글이 달렸다. 오군은 네오아니메에서 하루 10여 개 정도 글을 쓰다가 ‘도배 분탕’을 이유로 또다시 밴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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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 혐오는 그의 중요한 정치적 동력이었다. 오군은 “민영화고 뭐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팔랑귀처럼 떠들어대는데 그럴수록 좋아하는 건 북괴 종북 세력밖에 없다. 광우병, 사대강 때도 똑같은 레퍼토리”라며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박수 치는 사진을 올렸다.
삼일한’ ‘김치녀’ 같은 용어를 쓰며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글도 여럿 있었다.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에 감정이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5·18은 폭동이라고도 썼다. 그러나 웃대에는 대선 개입,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폭발물은 오군의 원래 관심사였다. 오군은 자신이 주문한 ‘황산’ ‘질산칼륨’ 따위 화학약품 18만원어치를 캡처해 여러 차례 올렸다. 블로그에는 화학약품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 다섯 곳을 소개해놓기도 했다. ‘홈메이드 다이너마이트 프로젝트’가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가서 실패했지만 대신 작은 사제폭탄을 만들 것이라는 글도 올렸다. 지난해 5월2일 오군은 ‘위대한 폭탄마가 되고 싶다’는 글을 썼다. “장래 희망은 핵폭탄 만들기. 직접 만든 수제폭탄을 분홍색 건성유지로 예쁘게 포장해서 직접 이름도 붙여주고.”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중딩’이라 웃어넘기고 조롱했다.
오군은 8월13일 네오아니메에 “인생의 목표가 없다. 누가 만들어주셈”이라고 썼다. 그리고 넉 달 가까이 지난 12월9일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라고 썼다. 텔레비전을 보고 10분 만에 범행을 결심한 사건 전날이었다. 정치 성향이 우익이기는 해도 들쑥날쑥한 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관되게 소속감을 갈구했던 고등학생은, 그렇게 증오 범죄의 주인공이 되었다.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93
그렇다고 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9 18:28: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