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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 2때 얘기다.
모 남고에 재학하고 있었던 나는
교내 오케스트라 활동 또한 병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듯
점심시간 음악실에서 학우들과 노가리를 까고 있던 나는
솔깃한 제안을 받게 된다.
서울대학교 음대 출신 여선생님이
오후 수업을 제끼고 서울대 투어를 가자는 것.
마침 그날 따라 방과후에 학원도 없었을 뿐더러
일과시간이 지나기 전에 조퇴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고등학생의 꿈.
나와 학우 몇몇은 관악행 택시에 오르게 되었다.
정원을 초과해 고등학생 넷
선생 한명을 태운 택시는 도림천을 따라 서울대학교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신 성적이 서울대에 진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수능 한방으로 고려대 오긴했다.)
어느 대학을 가야겠다는 열망이 크지 않았기에
서울대를 쭉 둘러보고
무슨 사조참치에서 운영하는 식당 (식대가 상당히 높았다. 인당 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 에서 선생님이 사주는 저녁도 먹고 (이 때 조국 교수를 실제로 봤다.)
했는데도 남들이 대학투어에서 얻어가는
이 대학을 무조건 가야겠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서울대를 데려갔으니 초장에 지려서 생각도 아니들게 분명하다.
대학 구경을 마치고
정문에서 무작정 서울대 학생을 붙잡고 입시얘기를 잠시 듣기도 했다.
선생님께선 감사하게도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가자며
이번에는 두팀으로 나뉘어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 얘기를 하자면
대학 입학 후 그 이용 빈도가 많아지게 되었는데
아마 과외알바를 하다보니 주머니가 두둑해진게 원인이 아닐까 한다.
본래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
인상이 서글서글하다는 말을 자주들어 길가에서 행인들의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 편이다. 만만한 인상이라는 이야기도 될 것이고.
따라서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편이다.
그때 그때 아저씨의 정치성향이라던지, 인생사라던지를 고려해서
태세전환을 빠르게 취하는 편이다.
ex) 대우 퇴직 출신 > 엔하위키에서 얻은 알량한 지식으로 맞받아쳐줌, 연령대는 29세 갓 취업한 직장인 정도 (고액면임)
대학진학에 성공한 자식을 둔 경우 > 고려대 재학으로 응수하여 과한 자식 자랑을 회피한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는 동기인 J군과 택시를 타게 됬고
대학 투어 직후의 보통 고등학생들 처럼
대학의 서열화, 물수능 불수능
의대vs한의대 등의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백미러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택시기사와 눈이 마주치었는데 순간
'택시기사를 오랫동안 업으로 삼을 눈빛이 아니로다'
라는 생각이 드는것이 아니겠는가.
반테 안경에, 2:8로 가지런하게 빗은 머리,
택시기사라기 보다는 화이트칼라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운전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기억이기에 잘 기억나진 않지만
- 자네들, 그 고등학교 나왔나? 명문 나왔구먼. 그 학교가 A동네에 있지 않았던가??
- B동네로 옮긴지 꽤 됬습니다.
- 그래? 거기 그 Q도 동문이고 아주 명문인데 그래
- 다 옛말이죠. 요즘은 그저 그래요.
- 그래도 역사가 다 어디가겠어. 나는 휘문중학 나왔어. 나름 명문학교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는 영동고 나왔는데, 그 당시 영동고.. 한참 잘나갔는데 내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서 숭실대 법과를 들어갔어.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기사 아저씨의 인생이야기로 이어졌다.
아저씨는 법대를 졸업해서 대게 법대생처럼 고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여러번의 낙방 끝에 고시를 접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할 줄아는게 공부밖에 없어서,
고시공부로 얻은 영어를 가지고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강사 생활로 먹고 살다가
나이가 차자, 더 이상 학원 강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이렇게 택시나 몰고 있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아저씨의 숭실대 법대를 나왔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닌 듯 했다.
보통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상당히 거친 어투로
특정 정당을 비판하는 반면,
아저씨의 경우,
보수, 진보 모두 잘못되었다는 양비론을 펼치며
블루컬러는 천대하는 한국사회
지나치게 적은 최저시급 등을 문제 삼기도 했다.
나름 명문중, 명문고, 그래도 이름은 아는 대학을 나왔는데
실패의 실패를 거듭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져만 갔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풍경이 빗끼고 있었다.
간간히 대꾸로 이어지던 대화는
택시가 학교에 도착하자 끊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선생님이 주신 택시비를 내고
학교 체육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었다.
오줌을 누다 본
비상등에는
나방한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9 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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