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하루 이동거리 1,000km! 대장정의 시작

4일차인 오늘은 무려 아침 5시 45분에 신요코하마역 대합실로 들어왔습니다. 전날(3일차) 요코하마에 사는 친구랑 가볍게 술을 곁들여 식사를 했는데, 원체 술을 잘 마시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지 일어나는 데에 크게 고생했습니다 ㅠㅠ 눈이 안 떠짐... 그래도 정말 다행히 숙소를 신요코하마역에서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되는 호텔로 잡았기에 일어난 후 역에 나오는 것은 비교적 쉽게 해결했습니다.

나고야, 교토, 신오사카 방향 도카이도 신칸센 출발 안내 전광판입니다. 우리나라의 KTX와 SRT는 굵직한 역 첫 열차 기준 새벽 5시~5시 30분경부터 운행을 시작하지만, 도카이도 신칸센의 첫 열차는 보통 아침 6시부터 운행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화면에 있는 히로시마행 히카리 533호를 타러 나온 것이고, 더 빠른 열차가 있었다면 당연히 자는 시간을 줄여서 그걸 타러 나왔을 겁니다 ㅋ 그나저나 6시 정각에 발차하는 히카리 533호 말고는 싹 다 JR패스로 탈 수 없는 노조미인 게 상당히 킹받습니다.

승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아침의 햇살이 찬란하게 비칩니다 후... 오늘 하루 1,000km 대장정의 시작입니다.

오늘 제 목표는 불과 한 달 전인 3월 16일에 개통한 따끈따끈한 호쿠리쿠 신칸센 연장 개통 구간을 답사하는 것입니다!

"엥? 호쿠리쿠 신칸센 타는 게 목표인데

왜 도쿄역이 아니라 반대편인

나고야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

후후후... 평범하게 호쿠리쿠 신칸센 왕복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저는 오늘 신요코하마역에서 도카이도 신칸센 열차를 타고 나고야까지 간 다음, 재래선 열차로 마이바라, 츠루가까지 갈 예정입니다. 그 이후 호쿠리쿠 신칸센을 이용해 천천히 도쿄 방향으로 되돌아올 계획입니다. 도카이, 호쿠리쿠 지역 외선순환 경로랍니다.

"가는 김에 경로에 있는 곳들

싹 다 털어보자고...!"

출발 시각이 임박했습니다. 얼른 히로시마행 히카리에 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 승강장에서 불과 3분 뒤에 출발하는 노조미를 타겠지만... 신요코하마역의 나고야 방향 첫 열차가 히카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음~ 역시 반대편 노조미랑은 다르게 한산합니다. KTX보다 좌석이 한 줄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꼭 비행기 내부 모습 같기도 합니다.

마침 우리 열차 바로 밑으로는 요코하마선 신요코하마역이 있네요. 제가 일본에 오면 저는 주로 신칸센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요코하마역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게 되고, 친구는 요코하마역 근처에 살기에 신요코하마-요코하마를 왕복할 일이 꽤 생기더군요. 저는 JR패스가 있으니 두 역 사이를 JR의 요코하마선 전동열차로 이동하면 추가 운임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코하마선 열차 중 다수가 요코하마까지 안 갑니다 ㅎ;;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요코하마선 열차 중에는 신요코하마역과 요코하마역 사이에 있는 히가시카나가와역에서 종착하는 열차가 많아 요코하마역으로 가기가 꽤 어렵습니다. 결국 신요코하마역에서 요코하마역을 갈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요코하마 시영 지하철 블루라인을 돈 내고 타고 갑니다.

뭐 어쨌든 열차는 출발! 나고야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됩니다. 여담으로 테이블 위에 있는 조지아 커피는 뭐랄까...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물을 좀 탄 거 같은 맛...? 카페인 약빨이 좀 부족한 맛...?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기분 탓인가?

열차는 시즈오카를 지납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후지산이 옅은 노란색으로 물들었네요. 4월 중순이지만 정상부에는 꽤 눈이 쌓여 있습니다.

II. 예상치 못한 발견은 가슴이 뛰게 만든다

도카이도 신칸센에서 내려 재래선(도카이도선) 나고야역으로 넘어왔습니다. 멀리 왔지만 아직도 겨우 오전 7시 반 정도 된 시각입니다. 여기서 저는 보통열차로 환승해서 마이바라라는 동네까지 갈 거랍니다. 정확히는 마이바라 살짝 못 미치는 곳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이동할 겁니다.

JR도카이의 재래선 얼굴마담 313계 전동차네요! 도쿄 및 일본 수도권을 관할하는 JR동일본 지역에 JR도카이 지역으로 넘어왔음이 실감 납니다. 저는 마이바라까지 가는 열차를 타야 하지만 이 차는 기후까지만 가는 차라서 그냥 보냅니다~

뜬금없지만 집에 313계 마스킹 테이프가 있어서

그냥 보여드려 봤음

나고야에서 보통열차로 기후, 세키가하라 같은 유명한 지역을 거쳐서 1시간을 더 달려 마이바라시(市)에 있는 오미나가오카역이란 곳에서 내렸습니다.

오미나가오카역 승강장에서는 일본백명산(日本百名山) 중 하나라는 이부키 산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네요.

역 주변은 특별히 관광지라거나 유흥가라 할 것은 없고 한적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이렇게 한적한 작은 역에서 내린 이유는 이 역에서 도카이도 신칸센 촬영 명소인 카세노 터널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 남천터널 위에서 본 경부고속선

▲ 터널 위에서 촬영한 산요 신칸센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고속열차가 운행하는 고속전용선은 안전상의 이유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지만, 이렇게 터널 주변을 찾아가면 철책 너머로 고속열차를 담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 터널을 찾아가는 것이죠!

약 20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도착한 도카이도 신칸센 카세노 터널 근처, 분위기가 살벌합니다 ㄷㄷ 당연히 저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거나 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할 건 아니고요, 망원렌즈를 철책에 가까이 붙여 지나가는 열차를 찍을 생각입니다.

근데 여기 촬영 조건이 생각보다 많이 가혹했습니다 ㅠㅠ 일본 철덕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라 기대를 하고 오긴 했는데, 철조망 틈을 노려 찍는다는 게 정말 어려웠고, 무엇보다 철도변으로 자란 풀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서 초점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습니다. 도쿄 방향 열차는 찍기가 그나마 나은데 신오사카 방향 열차는 찍기 힘들다는 점도 ㅠㅠ

"여기까지 왔는데... 한두 장이라도 건지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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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간신히 담은 첫 열차입니다. 철조망 틈으로 간신히 담느라 몸과 옷에 녹이 잔뜩 묻었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터널 위에서 내려다 보는 구도가 아니라, 터널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신칸센입니다 ㄷㄷ 결과물이 워낙 역동적이다 보니 가혹한 촬영 조건을 이겨내고 무수한 철덕들이 촬영을 시도하는 모양입니다.

첫 열차가 지나간 다음에 담은 두 번째 열차! 이번에는 선로변 갈색으로 말라 있는 풀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열차 앞을 약간 가렸네요 ㅠㅠ 그래도 이정도면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구도로 고속열차를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치만 문득 드는 생각,

"사진이 역동적으로 나와서 좋긴 한데,

여긴 몇 번을 찍더라도 다 똑같이 생긴

N700계 계열만 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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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역동적인 사진이 나오는 곳인 건 맞지만, 이 구간을 지나다니는 차량은 전부 N700계 계열로 통일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몇 시간을 찍든 다 똑같은 사진만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힘든 촬영 조건에서 간신히 촬영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고요.

결국 기대가 컸던 촬영 포인트였지만, 30분 정도만 짧게 촬영한 후 오미나가오카역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철수 직전 찍은 터널 반대편 열차

결국 나고야를 지나 마이바라까지 와서 큰 소득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서 오미나가오카역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있었던 그 때!

두둥

기대하지 않은 절경을 만났습니다!

도쿄, 요코하마와는 달리 한 템포 늦게 만개한 마이바라의 벚꽃, 그리고 걸리적거리는 방해물 없이 도카이도 신칸센과 이부키 산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길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이런 풍경이 나오더라고요.

"찾았다, 나만의 포인트!"

시즈오카에도 신칸센과 후지산을 같이 담을 수 있는 유명한 사진 촬영지가 있는데, 이곳은 비록 후지산은 아니지만 이부키 산이 그 웅장한 역할을 꽤 잘 대신하고 있어서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컴퓨터 바탕화면 같은 풍경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마이바라까지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헛걸음이 아니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 여기서는 이 정도 찍고, 이제 다시 가던 길을 가보렵니다.

역으로 걸어오면서 사진을 찍었던 장소를 돌아보니 엇 ㅋㅋㅋ 어느덧 다른 학생이 자리를 잡고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더라고요. 꽤 알려진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마이바라역으로 가기 위해서 다시 오미나가오카역으로 돌아왔습니다. JR도카이 구역과 JR서일본 구역의 경계에 인접한 역이라서 그런지 노선도에는 JR서일본의 파란색, JR도카이의 주황색이 모두 보입니다.

역 안에 제비 날아다님 ㄷㄷ

한적한 시골 간이역 느낌이 나는 오미나가오카역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JR도카이와 JR서일본의 경계역인 마이바라역까지 왔습니다. 승강장에는 JR도카이의 얼굴마담 313계 전동차와 JR서일본의 얼굴마담 223계 전동차가 서로 만났습니다. 우측 223계는 무려 히메지까지 가는 신쾌속이네요.

저는 이제 이곳 마이바라역에서 당초 계획대로 호쿠리쿠 지역으로 갈 것인지, 계획과 달리 신칸센을 타고 교토, 오사카로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어차피 JR패스가 있으니 어떻게 가든 상관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