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분식집 트리비아는 사실 외식업쪽 전문 저널에 실릴 글 쓰다가 그쪽에서 펑되는 바람에 그냥 좀 편집해서 고파스에 올린 것이었는데 의외로 재밌다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엔 쌈요리 쪽을 써 봅니다.

1. 상추의 원산지는 이집트 부근으로 이집트인들은 단군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도 상추가 인기 채소였다. (단기 1년보다 2천년 전인 기원전 4500년에 이미 이집트에 상추 농사법을 적어 놓은 벽그림이 있다). 기원전 550년에 페르시아 왕의 식탁에도 지금으로 치면 샐러드 같은 용도로 상추가 올라온 기록이 있다. 또한 상추 중 몇 가지 품종이 그리스/로마에서도 대유행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지금의 양상추이고 다른 하나가 로메인 상추이다. 로메인 상추는 로마인이 하도 좋아해서 로마인이라는 뜻의 로메인이 이름으로 붙었다.

2. 이집트에서 인기 채소였던 상추를 품종개량하는데 그 중에 상추 잎이 서로 말려 포기를 이루는 품종이 유럽으로 넘어가 재 개량된 것이 양상추이다. 상추 잎이 따로 펴지며 올라오는 품종이 고구려로 들어간 것이 지금까지 개량된 것이 한국의 상추로,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군량으로 콩과 조밥, 상추와 된장을 지급하여 쌈을 싸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꽤 많은 품종이 있으나 상추로 밥을 싸 먹는 것은 오직 한국에서만 있던 풍습이다. (상추 외의 것으로 쌈을 싸 먹는 풍습은 터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 시절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에서 포도잎으로 쌀을 싸서 찌는 숙쌈 계열 음식이나 일본, 중국과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대잎이나 연잎으로 쌀을 싸서 찌는 계열 음식이 있으나 생채로 싸먹는 풍습과는 다르다.)

3. 고구려에서 개량된 상추가 워낙 맛있는데다 쌈을 싸 먹을 수 있게 길고 넓적한 모양이 나오는 것은 고구려 상추밖에 없어서 중국 귀족들도 굉장히 이국적인 고급 채소로 여겼고, 고구러 사신들이 오면 비싼 값에 상추씨를 사가서 상추를 '천금채'라고 불렀다. (상추를 한자로 쓰면 와채(窩菜)이다. 그리고 이 '와'는 고구려의 고(高)가 잘못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4. 고구려 멸망 이후 통일신라에도 상추가 전해지는데 이후 기록에서는 원에 끌려간 고려 궁녀들이 길러먹던 것이 원 제국 전체에서 유행하면서 고려 상추쌈이 원나라의 명물 음식이 된다. 원대 시인 양윤부는 '고려의 맛 좋은 상추가 들어오니/ 산 속의 모든 향채를 다 가져온 것 같다' 며 당시 고려 식습관의 대유행에 대해 '난경잡영'이라는 시를 썼을 정도.

5. 조선시대가 되면 상추 가격이 많이 내려 서민들도 상추를 많이 먹게 되었고 상추쌈에 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승정원일기: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 상에 상추쌈이 올라왔는데 이 중 생담배잎(!!)이 실수로 섞여 있어 장렬왕후가 크게 노했음. 이에 관련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으나 숙종은 '거 뭐 실수할수도 있지' 하면서 주의만 주고 넘어가 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성호 이익: 상추는 집집마다 심는 채소인데 이는 쌈을 싸 먹기 위해서이다.

순조 시절 세도정치를 한 김조순은 여름만 되면 불암천에서 민물낚시를 한 후 민물회(당시 민물회는 회를 썰어 야채와 함께 양념된장에 비벼먹는 스타일!)에 상추쌈으로 술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음.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갔을 때 아들이 가을에 김장을 하면서 올해 김치가 맛있어 아버지 생각이 무척 납니다. 하고 편지를 보냈다. 이에 정약용은 아들에게 '내가 오늘 밥 한그릇(당시 한 그릇은 지금의 5배 이상)을 상추 몇 장에 된장쌈으로 비웠다. 맛있는 것을 먹어봐야 똥만 더 나오는 것인데 먹는 이야기 하지 말고 공부해라' 라고 꾸짖었다 -_-;;

그런데 정작 다산은 유배 처음 갔을 때 유배지에 도착하자 부인이 바리바리 챙겨준 반찬이 다 쉬어버리고 젓갈과 된장밖에 남지 않아 계속 상추쌈만 먹고 있다며 투덜거리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양반이 상추쌈을 먹을 때는 상추에 (더럽게) 직접 손을 대지 말고 젓가락을 이용해 작고 예쁘게 싸서 먹으라는 조언을 남겼다. 조선시대 이후 상추가 흔해지면서 양반은 젓가락으로 상추를 밥그릇 위에 올려 젓가락으로 둥글게 만 후 된장을 찍어서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괴상한 예법이 생기게 된다.

조선시대 중기 민담 중에는 한 도주노비가 양반 옷과 갓을 구해 입고는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이라며 동네 부잣집들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 먹고 잠을 청한 뒤 떠나다가 한 양반가에서 상추쌈을 내 줬는데 손으로 상추를 집어 젓갈을 가득 넣고 큰 쌈을 싸먹는 것을 보고 정체가 들켜 두들겨 맞고 주인집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조선시대에 눈치 없는 사람에 대해 '눈치밥에 상추쌈'이라는 속담까지 있었다. 눈치 보며 밥 얻어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싸먹는다는 밉상어린 말이다.

조선 말기 요리책 '시의전서'에는 아주 멋진 쌈요리 조리법이 나온다.
가. 상추잎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다른 물이 담긴 그릇에 담고 참기름을 살짝 쳐서 흔들어주면 잎에 기름이 살짝 배는데 이 때 잎을 꺼내어 정갈하게 개어 담는다.
나. 고추장에 쇠고기를 다져넣고 웅어나 다른 생선을 더 다져넣어라, 여기에 파채와 참기름을 얹어 쪄낸 다음 불에 끓여 만든 양념고추장으로 쌈을 싸먹어라.
다. 쑥갓이나 실파를 항상 곁들여 싸먹어라. 더 맛있다.
(당시 기준으로 쇠고기, 고추장, 웅어는 모두 매우 고급 식재료로 조선 말기 기준 굉장히 고급 요리다.)

6. 미역쌈, 깻잎쌈 등 다른 모든 쌈은 사실 상추쌈을 변형한 음식으로 상추쌈 이전에는 쌈이라는 것이 없었다.

7. 상추쌈을 한반도에서 특히 좋아했던 이유에 대해 이웃 중국에서는 밀전병으로 음식을 싸 먹었는데 한반도는 밀을 기르기 적합하지 않아 밀가루가 매우 비싸고 귀했으므로 그 대신 상추로 싸먹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7 21:4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