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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등록일 : 2026-10-30 20:14:12 (11시간 전) | 글번호 : 447412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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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20편 - 이릉대전 (1) 관우는 대체 왜 올라갔을까?



이릉대전은 글 한 편으로 담기 어려운 주제인듯합니다. 그래서 여러 편으로 나누어 써볼까 합니다. 일단 이릉대전의 배경부터 들여다 봐야겠죠. 모두들 아시다시피 관우의 실형주 사건이 이릉대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럼 대체 관쪽이는 왜 북으로 올라갔을까요~?(오은영 선생님 톤으로)

"킥킥 난 역시 전쟁의 신이야"

관우의 북진이 성도에 있는 유비와 제대로 소통한 채 이루어진 것은 분명히 아닌 듯합니다. 한중쟁탈전 직후에 관우가 북진하는데 이러면 익주에서는 도저히 이 북진을 도와줄 여력이 없습니다. 이제 막 전쟁을 끝냈으니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죠. 제갈량의 융중대 역시 '익주와 형주에서의 동시 북진'을 상정한 것이지 '형주에서의 단독 북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북진하여 번성을 칩니다

당시 형주의 세력 분포도는 대충 나누면 이렇습니다. 제가 그림판에서 선을 그은거라 너무 개발 퀄리티네요...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형주 북쪽에는 조인이 버티고 있는 상태이고, 손권과 유비는 익양대치 이후 형남을 동서로 나누어 서쪽은 유비가, 동쪽은 손권이 가지도록 하였으니 영릉은 유비에게, 계양은 손권에게 속합니다. 관우는 여기서 군을 동원하여 번성을 칩니다. 너무 자세히 가면 이릉대전 컨텐츠가 아니라 형주쟁탈전 컨텐츠가 되어 버리니 패스하겠습니다 ㅎㅎ

그런데 뭔가 이상하긴 하죠. 아무리 손유 동맹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형주 소유권 문제로 오나라와 군사대치까지 했던 터라 정세가 불안했을텐데 관우가 단독으로 북진을 결단했다는게요. 유튜버 손찬이형은 "유비가 관우에게 가절월을 주었는데 관우가 이를 전쟁 개시 가능 신호로 오판하여 북진했다"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죠. 아무리 그래도 관우가 금치산자가 아닌데 자신의 군사적 재능만 믿고 단독 북진을 결심한다? 쉽사리 공감되지 않습니다. 

이때 주목해볼만한 곳이 상용입니다. 한중쟁탈전 시기 유비는 유봉과 맹달을 시켜 상용을 점령하게 하죠. 상용은 관우의 작전 지역과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관우는 '개전 초기부터' 유봉과 맹달에게 지원 요청을 지속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둘은 끝까지 지원을 가지 않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유봉과 맹달이 서로 사이가 매우매우매우 안 좋았단 점입니다. 둘이 이렇듯 사이가 안 좋으니 누구 하나가 군을 끌고 가면 자신의 위치가 두렵고, 둘이 아예 같이 가버리자니 새로 점령한 상용이 위태롭게 되는 셈이죠. 

관우의 실형주 및 전사 이후 유비는 유봉이 관우의 지원을 가지 않았던 점에 격분합니다. 맹달의 위나라 투항으로 상용마저 잃고 돌아온 양자 유봉은 그대로 자결을 명받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익주 본거지에서는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관우가 당연히 알았겠지만, 상용에서는 일정 수준의 지원이 사전에 약속되어 있지 않았을까? 그랬기에 관우도 처음부터 계속해서 상용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유비도 유봉이 관우를 지원하지 않았음을 문책한 것이 아닌가? 관우의 북진이 위나라 전체를 먹어버리려는 전면전의 의도가 아니라 번성, 양양 등 형주 북부 지역을 타겟으로 삼아 형북까지 손에 넣으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에 불과합니다. 다만, 저도 이런 견해를 어디서 보진 못해서 여러분들께 신선한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 한 번 소개해보았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우리 관쪽이는 처참하게 패배했고 형주는 오나라의 손에 넘어갑니다. 이 상황에서 유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이릉대전 내용이 시작되겠네요.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6-10-31 07:21:22:


댓글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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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익명 10시간 전
형주에 가만히 있으면 위가 치고내려와서 장기적으로는 말라죽을 판에서의 선공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관우 입장에서는 '예방전쟁'으로서 타이밍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촉군은 한중에서 위와 결전을 벌이고(그리고 한중을 손에넣어 북벌의 기반을 다지고), 위나라 내부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관우 입장에선 가만히 있으면 죽을 상황에서 선공의 적기가 왔어요. 안가는게 이상합니다. 다만 오의 배신 및 위의 군세 총동원 때문에 사망은 당시 예측할 수 없었죠

상용의 지원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연의에서는 '치안상황이 안좋아 가지 못했다'라는 것으로 둘러대나, 실제로도 서황이 상용쪽에 손을 쓰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즉, 출병하는 순간 상용으로 말머리를 틀어 점령해버릴 수 있는 위기가 있으니 발이 묶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과를 아는 독자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혹자는 "만일 관우가 칠군을 수몰하고 우금을 사로잡은 즉시 형주로 복귀했으면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라고도 하나, 그 시점은 호우로 번성을 포위한 상태였어요.

번성을 점령하면 이를 발판으로 양양을 위시한 형북을 점령할 수 있는, 눈 앞의 커다란 전공을 두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예로부터 양양과 번성을 아울러 양번이라고 했고, 번성을 점령하면 양양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급입니다. 1000년 뒤 몽골도 번성부터 점령해서 양양을 취합니다)

한편, 오나라는 오나라대로 뒷통수를 칠 유인이 있었습니다. '촉이 형북을 점령하면 오는 호응해서 서주를 점령하면 되는 것 아니냐!'하는 푸념에 대해서는 이미 여몽이 왜 그것보다 형주를 취하는게 나은지 구구절절 설명해둔게 있으니 넘어가죠. :


댓글 2 익명 10시간 전
개인적으로는 관우가 못했다기 보다는 양번을 끝까지 사수한 조인이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마로 방어력을 크게 상실한) 성을 버리지 않고, 전멸을 각오한 채 목숨걸고 남았고, 서황이 올때까지 버텨냈어요.

조인이 성을 벌이고 퇴각했다면 관우는 양번을 취하고 형주로 개선하거나, 유비와 호응해 북진해서 완과 허도를 급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가 뒷통수를 쳐도 관우를 협살할 수 없으니 과연 배신을 실현했을지는 의문이겠네요 :


댓글 3 익명 10시간 전
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미 익양대치로 유비가 직접 형주까지 쫓아올만큼의 대립이 있었고 관우도 손권과의 혼인동맹을 거절한 터라 오나라 쪽에 대한 대비가 더 철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분명히 듭니다. 오나라의 뒷통수를 예상하기 쉬웠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있던 상관미 논쟁은 뭐 어차피 명분 싸움일 뿐이니 패스하고,,,

상용은 실제로 나중에 사마의가 맹달을 치러 쏜살같이 달려갈만큼 가까운 곳이라 위나라가 견제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죠! 다만 관우 북진 초반에는 분명 기회가 있긴 했을텐데 이 부분에선 유봉과 맹달의 처신이 참으로 안타깝다 여겨집니다.

관우가 양번을 점령하지 못한데에는 조인이 만총 같은 똑똑이를 데리고 있었고 조조가 말도 안되는 초호화 구원군을 보낸 탓이 크다고 보이긴 합니다. 이상하다...우금 잡고 방덕 베고 조인 포위했는데 서황 내려오고 조엄 딸려오고 서상, 여건이 또 구원군 몰고 오고... :


댓글 4 익명 10시간 전
2/ 만총이 없었으면 조인이 진짜 성 버리고 갔을지도 몰랐을 듯 싶네요
그 상황에서 만총 말을 듣고 진짜로 버텨낸 조인도 정말 대단합니다. 조인의 전략적 능력에 대해서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이런 군 사령관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좋은 평가를 주고 싶어요 :


댓글 5 익명 10시간 전
위오비밀동맹이 체결됨과 동시에 조조가 서주에 주둔하던 군세를 형주로 보내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관우의 운명은 다했다고 봅니다. 실제 역사에서 해당 군세가 도착하기 전에 관우는 사로잡힙니다.

관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냐에 집중하여 보기보다는, 위와 오가 관우 하나 잡으려고 얼마나 많은 군세를 총동원했는지를 더 중심으로 봐야 하지 싶네요. 위오 양국은 서로의 전선에 대한 수비를 포기하고, 형주전선에 동원가능한 최대 주력을 보냈습니다.

아쉬운대로 코에이 삼국지 10의 형주공방전이나, 삼국지 13의 군신포위망을 플레이해보면 관우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는 간접적으로 느낄 순 있지만 게임은 게임일뿐... :


댓글 6 익명 7시간 전
지략은 좀 모자라나 용맹은 최고인 후일 대사마가 되는 조인, 조조 수하에서 패배한 적이 거의 없는 서황, 훗날 정동장군에 태위까지 지내는 만총.. 그냥 초에이스들이 다 모여있는데다가, 조조까지 직접 지원오고 뒤는 여몽과 육손이 뒤통수를 치는데 관우가 뛰어나도 어찌 베겼을까 싶네요.

그때의 상황을 사서로만 알기에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냥 형주 반환의 확약을 하고 동오와 맹약을 맺고 제대로 반환하는 것이 어땠을지.. 익양대치하면서 굳이 대립할 이유가 있었는지. 좀 거시적으로 한중을 얻은 후에 4군을 돌려주고, 이후 형주를 얻고 장안까지 진공한 후에는 형주를 오에 떼 주어 일단 신뢰를 다지는게 어땠는지 싶습니다. 어차피 오는 장강을 따라 존속하기 때문에 촉에서 배를 만들어 침공하면 금방인데..
실제 육손이 이릉대전에서 우려한 것도 그것이었고, 나중에 진나라 왕준이 배를 통해 한번에 오를 멸망시킨 것을 보면, 일단은 북벌 성공이 급선이고 다음인데, 신뢰가 서로 너무 없긴 했던거 같습니다. 유비는 아내까지 손권의 동생으로 얻었는데. :


댓글 7 익명 7시간 전
번성을 먹어야 번성하기 때문이죠
관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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