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멸망전 이후 오랜만에 삼국지입니다. 신중함, 계획적, 치밀함 이런 단어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 제갈량이죠. 근데 제갈량도 젊었을 때는 당돌한, 다소 정밀함은 떨어지는 의견을 내곤 했습니다. 이걸 잘 잡아준 사람이 유비구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다시 고민해볼 법한 내용이라 소개드리려 합니다. (촉한멸망전도 많이 봐주세요 ㅎㅎ)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해 있을 때, 유표가 죽고 유종이 그 세력을 이어받은 뒤 조조가 쳐들어오자 제갈량은 유비에게 이렇게 간언합니다.
"지금 유종 따버리고 형주 접수하죠?"
이에 유비가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소" 라고 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연의에서 참 답답하게 그려지죠. 아니 그거 탁 먹으면 되는데 유비 맨날 인의 부르짖고 저거 하 답답하네...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이 판단은 유비의 생각이 100% 옳았습니다. 제갈량은 오히려 너무 본질을 꿰뚫지 못한 조언이었죠.
당장 형주에서 유표를 따르고 그 아들 유종을 지지하던 호족 세력들이 갑자기 유비를 따를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유비가 암살이나 기타 계략으로 유종 목을 뎅겅해버린다고 해서 게임처럼 형주 세력이 유비에게 자동 접수되는 것이 아니죠. 결국 그 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유표의 채씨 부인 등 형주 유력 호족들은 애초에 이방인인 유비를 상당히 경계했습니다. 게다가 유비가 세력이 강대해서 형주 호족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상황도 전혀 아니었죠. 이 상황에서 유종 목을 따버리면 형주 호족들은 조조에게 붙을까요 유비에게 붙을까요? 백이면 백 조조에게 붙을 것입니다. 유비는 유표 아들 죽인 놈이라는 정치적 불리함과 오명을 뒤집어 쓸테구요. 유종을 친다는 것은 합리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계책이었습니다.
유종이랑 한 판 뜨는 전술 대신 그 뒤에 나온 것이 전설의 '10만 백성 업고 튀어' 작전이죠.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저 백성들 다 구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유비는 여기서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얻습니다. "조조 점마는 서주에서 대학살한거 봤제? 원래 그런 놈이야. 나는 죽어도 백성들 안 버려. 나한테 붙으면 끝까지 책임진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죠. 귀족 세계에서 힘이 약했던 유비가 '민심'을 활용해 판을 뒤집으려는 묘수였습니다. 물론 이것도 유비가 살아남았기에 가능했지만요 ㅋㅋㅋㅋ (조자룡, 장비, 관우, 제갈량 보유국의 힘)
그 후, 연의와는 달리 무릉 태수, 장사 태수, 계양 태수, 영릉 태수 모두 싸움 없이 유비에게 항복합니다. 역시 정치인은 밑바닥 표심을 단단하게 다져놔야 하는군요. 아마 제갈량은 이때 크게 배운 것이 있을 듯합니다.
이와 상당히 유사한 일이 익주 정벌전에서도 벌어지죠. 방통은 "그냥 유장 모가지 뎅겅해버리고 익주 접수하죠?"라고 하는데 유비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참 오래 돌아가서 익주를 점령하죠. 유비의 정치력이 또 한 번 빛난 순간입니다. 거기서 유장 암살했으면 아마 유비는 익주 관리조차 실패했을겁니다.
이후 제갈량은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의 깨달음이 얼마나 영향을 줬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제갈량 정도 천재라면 무언가 습득한 것이 있을듯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6-10-19 03:3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