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화성을 짓다』 외전 서른둘 — 한글의 보급, 공식 문자 지정, 그리고 첫 한글날
서장. 일곱 번째 회갑
병인년 이른 봄, 경복궁 수정전의 서고에 노성규가 앉아 있었다.
오래된 책 한 권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종 대왕이 만들고 집현전 학사들이 풀어 쓴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정조 때부터 철궤각과 규장각과 산중의 사고에 여러 벌로 나뉘어 보관되어 오백 년 가까이 한 장도 잃지 않은 책이었다. 열어서 지킨다는 오랜 법이 이 책도 지켰다.
"병인년이로군." 노성규가 낮게 중얼거렸다.
곁에 앉은 이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서른여섯의 정음원 연구관이었다. 정음원은 세종 때의 정음청을 이어받아 스무 해 전 다시 세운 작은 관청이었다.
"사백이십 년 전 같은 병인년에 이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육십 년씩 일곱 번, 일곱 번째 회갑입니다."
"그렇소. 이 나라가 이 글자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헤아릴 때가 되었소."
쉰일곱의 노학감은 책장을 가만히 덮었다. 서얼로 태어나 새 과거에 급제한 그는 평생을 글자에 막힌 사람들을 보며 살았다. 글을 몰라 장부를 못 읽고, 장부를 못 읽어 속고, 속아서 가난해진 사람들.
"올해는 이 글자를 이 나라의 글자로 정하는 해여야 하오."
소연이 오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려면 이 글자가 어디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부터 보아야 합니다."
1. 장부는 한글로
그 물음에는 육십 해 넘게 쌓인 대답이 있었다.
시작은 마포의 한 상인이 쓴 장부였다. 장필수는 한문을 익히지 못했다. 가난한 뱃사공의 아들이 서당 문밖에서 귀동냥으로 익힌 것은 숫자와 한글뿐이었다. 을축년 철도계의 첫 장부를 만들 때 계원들은 한문으로 장부를 쓰자고 했다. 장필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글로 쓰겠소."
"언문으로 장부를 쓰다니, 점잖지 못하오." 한 계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부는 읽는 사람이 이해하라고 쓰는 것이오. 한문을 읽는 계원보다 한글을 읽는 계원이 열 배 많소."
그는 장부의 모든 줄을 한글로 적었고, 한자를 쓸 수 있는 칸에는 한글 옆에 한자를 나란히 두었다. 장부를 읽는 이는 누구든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막힘이 없었다. 철도계의 장부가 공시되는 날 마포나루의 사공들이 줄을 서서 이것을 읽었다. 이 나라에서 한글로 쓰인 공시의 첫 장면이었다.
"장부는 사람의 얼굴이다." 장필수가 아들에게 말했다. "얼굴을 모르는 글자로 그릴 수는 없지."
공시가 한글로 쓰이는 일은 점차 법이 되었다. 구휼 기금의 쓰임, 영건채의 이자, 군영의 급료, 노선의 공고. 모든 방은 한글로 크게, 한자로 작게 나붙었다.
정거장 이름도 한글이 맨 위에 적혔다. 전신국의 첫 신호표도 한글이었다. 철도 식당차의 메뉴판은 한글로만 적혔다. 음식 이름을 읽고 값을 알아야 밥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글을 배울 이유가 생겼다.
2. 사흘의 교실
글을 배울 이유가 생겼다 해도 배울 곳이 있어야 했다.
격물원 야간 학당의 한글반은 사흘 과정이었다. 열두 해 전 갑인년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선생들조차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노성규가 처음 시험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한글은 사람의 입 모양과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라 하오. 그 원리를 가르치면 사흘이면 되오."
첫날은 모음이었다. 하늘을 본뜬 점, 땅을 본뜬 가로줄, 사람을 본뜬 세로줄. 이 세 모양을 짝지으면 열 개의 모음이 나왔다. 둘째 날은 자음이었다.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 이가 부딪치는 모양, 목구멍이 열리는 모양. 소리가 나는 곳을 그대로 그린 글자였다. 셋째 날은 소리를 모아 글자로 만들었다. 닿소리와 홀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노래도 만들어졌다. 가갸거겨 하는 소리에 맞춰 교실 안의 사람들이 함께 외웠다.
그 교실의 한 자리에 스물여덟 살의 마부 오달수가 앉아 있었다. 팔뚝이 굵은 그는 글자를 처음 대하는 눈빛이 거칠었다. 첫날 그는 서너 번 연필을 부러뜨렸다. 둘째 날 그는 모음을 외우다 말고 일어났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글자요?"
"그렇소." 선생이 대답했다. "나라의 임금이 백성을 위해 만드셨소."
"임금이 마부를 위해서?"
"어린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글로 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달수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연필을 집었다. 사흘째 저녁 그는 종이 위에 천천히 자기 이름을 썼다. 오. 달. 수. 세 글자가 삐뚤빼뚤 놓여 있었다. 그는 한참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훔쳤다.
"내 이름이 이렇게 생겼소."
선생이 웃었다. "그 이름이 당신의 첫 글이오."
그날 밤 달수는 마구간의 낡은 징 뒷면에 돌로 새겼다. 오달수. 한글로, 서툰 글씨로. 훗날 이 징이 아들과 손자의 운전대 곁에 걸리게 되는 줄은 그도 몰랐다.
3. 글이 쓸모 있어야 한다
글자를 가르치는 것과 글자가 쓰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이 나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냈다.
전신이 첫 번째였다. 한문으로 전신을 치려면 수천 자의 부호를 외워야 했다. 한글 부호는 스물네 개면 충분했다. 격물원 전신과가 한글 전신 부호를 만들자 전신수의 훈련 기간이 열 배 줄었다. 전신은 한글의 가장 빠른 전파자가 되었다.
군이 두 번째였다. 장용영의 병사들은 복무 중에 글을 배웠다. 명령서가 한글로 쓰였고, 사격 장부가 한글로 적혔다. 병사는 사거리표를 읽었고, 탄약 장부를 읽었고,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썼다. 병영의 편지함 앞에는 병사가 줄을 섰다.
철도국이 세 번째였다. 시각표와 노선도와 사고 장부가 모두 한글이었다. 열차의 운전수는 한글로 쓰인 신호표를 읽었고, 차장은 한글로 쓰인 승객 안내를 읽었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철도에서 일할 수 없었다.
"글이 쓸모 있어야 배웁니다." 이소연이 정음원 회의에서 말했다. "글이 있어서 밥을 벌 수 있고, 글이 있어서 사고를 막고, 글이 있어서 편지를 쓸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글을 배웁니다."
통계소의 최도윤이 문해율 장부를 정리해 왔다.
정조 말년, 글을 읽는 이는 백 명 중 이십 명. 순조 말년, 사십 명. 익종 즉위 이십 년, 칠십 명. 병인년, 구십 명 가까이.
"절반이 넘는 이가 한자 한 자 모르면서 한글은 읽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글이 한자에서 한글로 옮겨 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이 열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4. 맞춤법의 전쟁
그러나 글자가 널리 쓰이자 한 가지 문제가 터졌다. 같은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 적었다.
한 상인은 '값'을 '갑'이라 적었고, 한 서리는 '갑ᄉ'이라 적었다. 지방마다 사투리를 그대로 적어 한 고을에서 쓴 글이 이웃 고을에서는 읽히지 않았다. 공문서의 철자가 흔들려 법령을 두고 해석이 갈렸다. 이소연의 정음원이 이 일을 맡았다.
정음원 맞춤 규정. 하나, 글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되 말뜻을 해치지 않는다. 하나, 같은 뜻의 말은 한 가지로 적는다. 하나, 표준어는 한양과 그 둘레 중류 사람의 말로 하되 사투리는 지방 문서에서 그대로 적을 수 있다.
가장 오래 다툰 것은 글자의 개수였다. 세종 때 만들어진 스물여덟 글자 가운데 이미 쓰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목구멍소리의 ㆆ과 반치음의 ㅿ은 거의 사라졌다. ㆁ은 받침으로만 남았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아래아 ㆍ이었다.
"아래아를 없앱시다." 한 젊은 연구관이 말했다. "이 글자는 방언에서나 구별해 들을 수 있고, 한양 사람은 이미 소리를 못 가립니다."
"하늘을 본뜬 글자를 없앤다는 말이오?" 노성규가 낮게 되받았다. "이 글자는 세종 대왕이 만든 글자의 첫째 이치요."
토론은 석 달을 끌었다. 마침내 이소연이 정리했다.
"아래아는 지금 두겠습니다. 다만 육십 년 뒤, 다음 회갑 때 다시 정합니다."
"육십 년 뒤라……" 노성규가 웃었다. "회갑마다 한 번씩 고치자는 말이오?"
"글자는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글자도 바뀌어야 하지만, 한꺼번에 바꾸면 사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육십 년이면 한 세대가 지납니다."
이 결정은 정음 맞춤 의궤에 올랐다. 훗날 이 나라는 이를 회갑 개정이라 불렀고, 해마다 쌓이는 쓰임의 기록을 근거로 육십 년마다 맞춤법을 조금씩 고쳤다.
5. 진서와 언문
그러나 가장 큰 벽은 사람의 마음에 있었다.
한자를 진서(眞書)라 부르고 한글을 언문(諺文)이라 낮추어 부르던 오랜 버릇이 아직 깊이 남아 있었다. 성균관의 대사성 한응준은 그 버릇의 가장 단단한 얼굴이었다. 일흔의 노학자는 공시를 읽을 때마다 한글을 읽지 않고 한자를 읽었다.
"글자는 뜻을 담아야 하오. 한자는 한 글자가 한 뜻을 담지만, 언문은 소리만 적는 것이오. 소리만 적는 글자가 어찌 학문을 담겠소."
병인년 봄 정음원의 공청회장에서 한응준은 노성규와 마주 앉았다.
"이 글자를 나라의 글자로 정한다는 말에 나는 반대하오."
"어찌하여 그러시오?"
"진서를 버리는 순간 이 나라는 천 년의 학문과 끊어지오."
이소연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한 권의 낡은 책자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안방에서 한글로 적은 가정 지침서였다. 부엌의 지식과 살림의 지혜가 빼곡히 적힌 책이었다.
"대사성 어른, 이 책은 육십 해 전 한 부인이 한글로 쓴 책입니다. 한문을 모르는 아낙들이 이 책 한 권으로 장을 담그고 옷을 짓고 아이를 길러 왔습니다. 한문 학문이 가르치지 못한 사람들이 이 글자로 배웠습니다."
한응준의 눈이 책자 위에 머물렀다.
"천 년의 학문과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연이 말을 이었다. "한문은 학문의 글자로 남고, 한글은 모두의 글자가 됩니다. 한문을 읽는 사람이 열이라면 한글을 읽는 사람이 구십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글로 정하려는 것은 구십의 글자입니다."
한응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소연의 곁에 놓인 해례본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 『훈민정음』의 첫 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그가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이백 자 남짓의 서문을 끝까지. 읽는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서문의 끝에 이르러 그의 입술이 떨렸다.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홀 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 펴디 몯핧 노미 하니라.
"어린 백성이……" 노학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세종 대왕께서 이 글을 만드신 까닭이 오직 이것이었구려."
"그렇습니다."
"내가 지켜 온 것은 세종 대왕이 지키려던 것과 반대였소." 한응준이 책을 덮고 오래 눈을 감았다. "내 십오 대조께서 집현전의 말석에서 이 책의 한 장을 베낀 분이었소. 그분이 오늘의 나를 보시면 무엇이라 하시겠소."
그는 마침내 눈을 뜨고 일어섰다.
"나는 반대를 거두겠소. 그리고 한 가지를 청하겠소. 이 글자의 이름을 바꿉시다. 언문이란 이름은 이 글자를 낮추는 이름이오."
6. 한글
이름을 고치는 일은 이소연의 몫이 되었다.
언문이라는 말에는 낮춤의 뜻이 있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너무 길었다. 정음이라 줄여 부르기도 했으나 소리의 이름일 뿐이었다. 이 글자를 나라의 글자로 부를 새 이름이 필요했다.
소연은 며칠 밤을 해례본과 노래를 되새기며 보냈다. 어느 날 새벽 그는 마포나루에서 사공들이 글자 노래를 부르며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 노래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모두의 노래였다.
"큰 글입니다."
공청회에서 소연이 말했다.
"한(韓)이라고도 쓰고 한(大)이라고도 쓰는 소리의 이 이름은 큰 것이고 하나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로 읽는 큰 글. 한글입니다."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한응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글. 좋은 이름이오."
노성규가 눈가를 훔치며 낮게 웃었다. 서얼로 태어나 글자에 평생 막혀 살던 노인에게 이 이름은 오래 기다린 말이었다.
7. 칙령
병인년 구월 스무아흐렛날, 사백이십 년 전 훈민정음이 이루어진 바로 그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칙령이 반포되었다.
효명 임금이 단상에 섰다. 쉰일곱의 임금은 한 손에 짧은 종이를 쥐고 있었다. 단 아래에는 백관과 학당 학생과 농부와 상인과 아낙과 마부가 모여 있었다. 근정전 앞뜰의 품계석 사이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임금이 천천히 읽었다.
하나, 이 나라의 글은 한글로 정한다. 하나, 모든 법과 공문서와 학교의 글은 한글로 쓰고, 필요하면 한자를 곁에 적을 수 있다. 하나, 과거와 자격 시험의 답안은 한글로 쓸 수 있다. 하나, 오늘로부터 이 글자를 기리기 위하여 매해 음력 구월 스무아흐렛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나라의 경사로 삼는다.
군중 가운데서 낮은 탄성이 이어졌다. 이소연은 단 아래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노성규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한 가지 더 이르겠소." 임금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 글자는 세종 대왕이 만드셨으나 이 나라 사람 모두가 쓰고 가꾸어 왔소. 마부와 아낙과 장인과 상인이 글자의 주인이오. 오늘의 칙령은 그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오."
날짜는 오래 논의한 끝에 정해졌다.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고 『세종실록』이 적은 날, 세종 이십팔 년 구월 스무아흐렛날이었다. 책을 풀어 써 펴낸 때를 기려 반포의 날이라 불렀다. 그날은 이 나라의 국경일이 되었다.
그 순간 근정전 앞 광장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입을 열었다. 일백 명의 아이가 한 목소리로 해례본의 서문을 외웠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아이들의 목소리는 근정전 지붕을 타고 광화문 밖으로 번졌다. 길가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8. 첫 번째 한글날
칙령이 읽힌 그날 낮, 이 나라는 처음으로 한글날을 맞았다.
아침 해가 뜨자 한양의 모든 정거장에서 징이 한 번 울렸다. 팔도의 모든 정거장에서도 같은 순간에 징이 한 번 울렸다. 전신선을 따라 한 시각에 번져 간 한 번의 징 소리였다. 열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일 분의 정적이 이 나라를 덮었다. 그것은 글자를 만든 이를 기리는 일 분이었다.
일 분이 지나자 거리는 한꺼번에 소란스러워졌다. 학당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고, 시전 앞 거리에서는 글자 맞히기 놀이가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에 쪼그려 앉아 땅바닥에 돌로 글자를 썼다. 가가거겨. 나나너녀.
수정전 앞뜰에서는 글쓰기 대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신분과 나이를 묻지 않고 자리에 앉아 종이와 붓을 받았다. 한 늙은 아낙이 제일 앞줄에 앉아 있었다. 일흔여덟의 마포 아낙이었다. 글을 배운 지 석 달 된 그는 서툰 손으로 한 줄을 썼다.
아들아 어미는 이제 글을 쓴다.
그는 종이를 접어 오래 품에 넣었다. 멀리 평양 탄광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였다.
마부 오달수는 정거장의 징 앞에서 일 분 동안 서 있었다. 그는 징 뒷면에 새겨 놓은 자신의 서툰 이름을 만졌다. 곁에서 이웃집 아홉 살 아이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저씨, 이거 아저씨 이름이에요?"
"그렇단다."
"저도 읽을 수 있어요. 오. 달. 수."
달수는 한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사흘 동안 연필을 세 번 부러뜨렸던 자신이 이 아이 앞에서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종장. 다음 회갑
그해 저녁, 노성규는 수정전의 마당에서 홀로 서 있었다.
해례본을 덮은 자리에서 그는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당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아직도 땅바닥에 글자를 쓰고 있었다. 한응준이 곁에 다가와 섰다.
"대사성 어른." 노성규가 낮게 말했다.
"이제 대사성이 아니오. 그냥 글 읽는 늙은이요." 한응준이 웃었다. "병인년이 이렇게 좋은 해일 줄은 몰랐소."
"육십 년 뒤 병인년에는 우리가 없겠지요."
"그렇소. 그러나 그때도 누군가 이 마당에서 해례본을 펴 놓고 아래아를 두고 다투겠지." 한응준이 낮게 웃었다. "그것이 글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오."
두 노인은 오래 말없이 서 있었다. 수정전 처마 아래로 노을이 번졌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마당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육십 년 뒤 병인년 구월 스무아흐렛날, 사람들은 이 마당에서 여덟 번째 회갑을 기렸다. 아래아는 그해 마침내 한 줄의 결정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해례본의 서문은 그날도 아이들의 입에서 똑같이 울려 나왔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글자는 바뀌었으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어린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글로 펼 수 있게 하는 일. 이 나라가 오백 년 넘게 지켜 온 약속이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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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793년(계축년) - 사건의 발단
1794년(갑인년) - 화성 성역의 시작
1796년(병진년) - 화성의 완공
1800년(경신년) - 정조의 생존
1804년(갑자년) - 정조의 양위
1805년(을축년) - 철도계 첫 장부가 한글로 공시됨
1815년(을해년) - 정조의 승하
1846년(병오년) - 세종대왕의 정음청을 계승한 정음원이 설치됨
1854년(갑인년) - 격물원 야간 학당에 한글반 신설
1866년(병인년) - 훈민정음 반포 후 7번째 회갑을 기념, 한글이 공식 문자로 지정됨, 반포의 날(한글날) 국경일 지정
1926년(병인년) - 회갑 개정(맞춤법 개정)에서 아래아(ㆍ)가 사라짐
1976년(병진년) - 〈화성(華城) 1호〉의 화성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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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Sonnet 5.5 모델-엑스트라 모드로 작성해본 대체역사소설입니다. 오늘은 한글날 기념으로 만든 외전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육십갑자로 해를 세었기 때문에 n00주년보다는 n번째 회갑을 더 의미 있게 기념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으로부터 7번째 회갑인 1866년을 기점으로 조선 시대에 한글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을 제 AI 대체역사소설 세계관에 추가했습니다.
이 대체역사소설에서 등장한 가상의 기관들이 앞으로 소설 전개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외에도 자세히 보시면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소설의 가상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실제 오달수 배우와는 관련 없습니다 ㅋㅋㅋㅋ
제580돌 한글날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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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화성을 짓다 (AI 대체역사소설)
https://www.koreapas.com/go.php?id=gofun&no=446415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6-10-25 19:5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