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제의 철권 통치가 멈추다
1990년대 NBA는 역대 최고의 선수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그가 활약했던 시카고 불스는 2번의 파이널 3연패, 총 6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역사상 최강의 팀 논쟁에서 가장 우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 머물러 있던 NBA의 인기는 조던의 영향으로 세계적인 수준까지 성장합니다. 조던은 농구를 넘어 90년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1993년 조던의 은퇴라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첫 번째 3연패를 막 이뤄냈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그였기에 많은 NBA 관계자와 팬이 느끼는 충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하지만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 올해의 수비수, 득점왕, 신인왕 등 각종 개인 상을 휩쓸며 떨어져 있던 조던의 의욕은 노상강도를 만난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학창 시절 농구와 병행하던 야구를 하기 위해 메이저리그로 떠납니다.
많은 이의 아쉬움은 이내 비워진 왕좌에 대한 관심으로 바뀝니다. 91년 이래로 줄곧 조던과 불스의 차지였던 NBA 파이널 우승을 향해 수많은 선수들이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뉴욕 닉스, 피닉스 선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유타 재즈 등 번번이 불스에 무릎 꿇었던 구단들은 천재일우일지도 모를 기회를 붙잡고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와중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구단에 불만을 나타내며 화제가 된 선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휴스턴 로키츠의 전설인 ‘The Dream’ 하킴 올라주원입니다.


2. 아프리카의 원석에서 최고의 센터까지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태어난 올라주원은 15살까지 농구를 접해본 적도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오히려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큰 키를 활용해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농구선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을 맡고 있던 가이 루이스의 안목이 빛을 발한 결과였습니다. 처음엔 기본기를 익히지 못해 고전하던 올라주원은 당시 로키츠에서 활약하며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던 모제스 말론의 지도로 성장합니다.
이내 대학 무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그는 훗날 전설적인 슈팅가드로 활약하게 되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함께 휴스턴 대학교를 NCAA 파이널까지 이끕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하던 두 선수는 ‘PHI SLAMA JAMA’라고 불리며 전미에 명성을 떨칩니다. 1년 먼저 NBA에 진출한 드렉슬러의 뒤를 이어 NBA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올라주원은 1984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당당하게 데뷔합니다. 그에게 밀려 3순위로 데뷔한 선수가 바로 조던이었습니다.
올라주원은 데뷔 전의 기대치를 훌륭하게 만족시켰습니다. 축구 선수 시절 갈고 닦은 스텝, 풋워크, 시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경지에 이를 정도였으며 뒤늦게 농구에 입문한 것은 오히려 틀에 박히지 않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공격에선 전매특허인 드림 셰이크 기술로 상대를 농락하고 수비에선 압도적이면서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당대 최고의 센터 자리에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3.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올라주원이 데뷔한 당시 로키츠에는 랄프 샘슨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224cm라는 엄청난 신장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운동능력을 자랑하던 샘슨과 호흡을 맞추며 골밑을 지배하던 올라주원은 2년차 시즌이던 1985/86시즌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각각 역대 최고의 센터와 포인트 가드로 꼽히는 카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이 버티던 LA 레이커스를 꺾은 결과는 고무적이었습니다. 비록 매직의 라이벌이자 역대 최고의 스몰 포워드로도 거론되는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로키츠와 올라주원의 미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샘슨이 잦은 부상, 구단과 불화 등의 이유로 트레이드되면서 올라주원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상대 수비를 분산시켜 주던 샘슨의 이탈로 올라주원의 부담이 커진 것입니다. 또한, 늦은 농구 입문으로 팀워크 개념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던 올라주원은 한층 더 고독한 플레이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NBA 역사상 단 4명만이 성공한 쿼드러플 더블을 기록하는 등 올라주원의 활약은 빛이 났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등 팀의 성적 향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올라주원이 고독한 에이스로 고전하는 사이 카림과 매직의 레이커스, 버드와 케빈 맥헤일의 셀틱스, 아이제아 토마스와 조 듀마스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왕좌를 나눠 가집니다. 계속되는 좌절에 올라주원의 불만은 커집니다. 결정적으로 드래프트 동기이자 비슷한 신세였던 조던이 스카티 피펜과 함께하며 NBA를 평정하자 올라주원은 폭발합니다. 거침없이 구단에 대한 비판을 가하던 올라주원과 프런트 사이의 갈등은 심해졌고 트레이드 루머까지 나오기 시작합니다.


4. 명장, 각성, 그리고 우승
흔들리던 올라주원과 로키츠를 다잡은 것은 1991/92시즌 감독으로 부임한 루디 톰자노비치였습니다. 선수 시절 올라주원을 가르쳤던 말론과 함께 활약하며 로키츠를 파이널에 진출 시키기도 했던 그는 감독으로 부임한 후 올라주원에게 동료들에 대한 신뢰와 양보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인격자로 유명했던 루디 감독의 지도로 각오를 다진 올라주원은 한결 이타적인 플레이로 한층 더 발전하게 됩니다.
루디 감독은 변화한 올라주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팀을 재편합니다. 터프한 파워 포워드인 오티스 도프로 하여금 올라주원의 수비 부담을 줄여주었고 슈팅에 강점을 가진 로버트 오리, 케니 스미스, 버논 맥스웰, 샘 카셀 등을 기용하며 올라주원의 공격 부담 역시 줄여준 것입니다. 독불장군에서 진정한 리더로 거듭난 올라주원은 1993/94시즌 첫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고 로키츠는 58승 24패로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을 올리게 됩니다.
최고조의 기세로 돌입한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주원은 압도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대학 시절 함께 했던 드렉슬러가 이끄는 트레일블레이저스, 직전 시즌 MVP였던 찰스 바클리가 버틴 선즈, 최고의 듀오인 존 스탁턴과 칼 말론의 재즈를 모두 격파하고 준우승 이후 8년만에 파이널에 진출한 것입니다. 상대는 대학 시절 올라주원을 꺾고 우승했으며 당대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유명했던 패트릭 유잉의 닉스였습니다. 7차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승부 끝에 로키츠는 우승합니다. 올라주원은 대학 시절의 복수와 함께 조던이 남기고 간 왕좌의 주인이 됩니다.


5. 다시는 챔피언의 열정을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기쁨, 환호, 그리고 영광과 함께 마무리한 올라주원과 로키츠는 벅찬 마음과 함께 1994/95 시즌을 맞이합니다. 초반엔 전 시즌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듯 순항했지만 플레이오프 동안 쌓인 피로로 인한 부상이 줄지어 발생하며 위기에 빠집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맥스웰이 야유하는 팬과 주먹다짐을 벌이는 사고까지 발생합니다. 이에 루디 감독과 프런트는 드렉슬러를 트레이드로 영입한다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대학 시절 찰떡 궁합을 자랑했던 올라주원과 드렉슬러의 호흡에 많은 이가 주목했지만 로키츠의 경기력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합니다. 서부 3위이자 전체 6위에 그친 로키츠의 우승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나 두 스타의 진면모는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납니다. 재즈와 선즈를 연거푸 침몰시킨 후 그해 시즌 MVP였던 데이비드 로빈슨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마저 가볍게 꺾은 것입니다. 올라주원은 유잉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빈슨마저 압도했으며 드렉슬러는 스탁턴과 말론을 상대로 40득점에 성공할 정도였습니다.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는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괴물 같은 파괴력의 샤킬 오닐과 재기발랄한 페니 하더웨이 등 젏은 선수들의 혈기를 앞세워 복귀를 선언한 조던의 불스까지 격파한 매직은 위협적인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올라주원이 오닐을, 드렉슬러가 하더웨이를 노련하게 농락하며 로키츠는 2연패를 달성합니다.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 팀의 우승이었으며 단 다섯 구단만이 성공한 연속 우승이었습니다. 유잉, 로빈슨, 오닐 등 쟁쟁한 상대들을 모두 꺾은 올라주원이 전설에 등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매직에 패배한 후 절치부심해 기량을 회복한 조던과 불스는 72승 10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과 2번째 3연패를 기록하며 다시 절대자의 위치에 오릅니다. 로키츠 역시 바클리를 영입하는 등 우승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선수들의 노쇠화를 이기지 못했고 올라주원 역시 계약 문제로 아쉽게 팀을 떠난 후 은퇴합니다. 이후 우승과는 거리가 먼 세월을 보내던 로키츠는 현재 지략가 마이크 댄토니 감독의 전술, NBA 최고의 슈퍼스타들인 제임스 하든과 러셀 웨스트브룩의 활약을 앞세워 다시 한번 우승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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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중단되었던 NBA가 재개를 일주일 남짓 남겨 놓고 있습니다. 미국 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들이 자주 들려 우려가 되지만 선수들의 플레이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학우 여러분들도 모쪼록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2 23: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