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이 없어 3화

하은은 가히 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 주변의 존재들은 항상 그녀를 중심으로 살아갔고, 그중에 일부는 그녀를 위해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의 과거 행적들만 봐도 진실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이 따라 참여했다. 그녀가 돌연 불참 선언을 하면 행사에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개강총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1~2학년이 주로 참여하는 행사이지만, 이번 개강총회는 졸업 준비를 하는 선배조차 참여하겠다고 할 정도로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그녀 자신 또한 이러한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히 ‘그 남자’도 참여하리라 생각했다.
“자, 우선 우리 학교에 입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 행사는 학과장님이 사신다고 하니 모두 부담 없이 먹고 마시도록!”
현 학생회장인 황치현 선배가 우렁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모두 크게 호응하며, 건배하고 있었다.
본질적으로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데 재능이 있는지 학생회장은 확실히 분위기를 이어갈 줄 알았다. 듣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을 가벼운 농담을 하며, 선배와 후배 사이에 아직 남아있는 미묘한 벽을 허물어줬다.
“자, 그다음 우리 20학번 뻔대! 이하은도 나와서 한마디 할까?”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옆 사람이랑 사사로운 대화를 하던 이하은은 갑작스러운 학생회장의 제안에 놀란 듯했다. 그녀는 개강 파티 직전, 개강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뻔대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지만 당장 오늘 모두가 모인 자리에 나가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살짝 쑥스러운 듯, 그녀는 모두 앞에 나가게 되었다.
‘그래, 이 느낌이지….’
모두가 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 또한 모두를 좋아한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가진 축복.
‘근데, 오늘 아침에 느꼈던 그 느낌은 뭐지….’
그녀는 같은 과인 모든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녀가 느꼈던 기묘한 느낌을 주었던 남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고 묘하게 불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모두를 사랑한 그녀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건배사를 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필히 오늘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모두가 자신한테 잘해주었으며, 기분 나쁜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 남자, 잠깐 눈이 마주친 그 남자 때문에 그녀는 약간의 찝찝함은 버릴 수 없었다.




‘뭘까?’
10평조차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단칸방. 그 방에 있는 것은 침대와 작은 책상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하은’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어깨 위까지 올라오는 머리, 고양이 같던 눈, 오똑하던 코. 지금까지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 본 적이 없기에, 그녀에 대한 묘사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 지난 20년간 가져본 적 없는 감정. 그 새로운 감정에 그는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인 감정이기에 잘 몰랐지만, 그는 이 감정이 적어도 호감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둔하지는 않았다.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지금까지 혼자였다. 혼자라서 외로웠지만 동시에 혼자라서 편했다. 다른 사람과 있어 봐야 불쾌한 감정밖에 느끼지 못했다. 조금은 외로울지라도 혼자가 편했다. 이렇게 침대에 누워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한테는 생소했다. 평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는 행위 자체가, 그한테는 불쾌했으므로.
이런 이유로 그는 오늘 열린 행사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그녀는 뭐지. 그녀가 누구 이길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그는 뭐 하는 사람이지, 누구인데,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지?’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아주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녀를…’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두 남녀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서로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리고 두 남녀가 내린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한번, 만나봐야겠어’
그가 누구를 만나는 다는 것은, 그한테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먼저 누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도 모든 존재가 자신의 주변에 다가왔으므로…
태생부터 다른 두 남녀가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남녀가 단둘이 만날 일은 이른 시일 이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에 항상 사람이 가득했기에,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혐오하는 그로서는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만나보길 굳게 빌었지만 두 사람의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때때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런 이유로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때론 자신 마음대로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닐까?
교수가 칠판에 띄운 명단을 보며 한솔과 하은은 생각했다. 개강하고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2인 조별 과제. 모두가 피하는 조별 과제이지만, 두 사람은 이 기회가 천금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의문에 남겨진 어떠한 것을 풀 기회라고….

그녀와 같은 조와 되지 못한 그녀의 추종자들은 하은한테 달라붙어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교수가 미리 임의적인 조 변경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아놨기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그들 대부분은 한솔한테 딱히 시기와 질투를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한솔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과 사람들은 단순히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할 뿐이었다. 실제로 대다수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느끼는 관심은, 그녀와 같은 조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리고 그녀에 대한 호감뿐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하지만 소위 배운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한테 대놓고 혐오를 쏟아낸다고 할 지라도 자기들한테 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일명 ‘*신 보존의 법칙’.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지라도 어디에나 병*신은 있었다. 그런 *병신은 결국 병신* 같은 짓을 하고 마는 것이었다.



여전히 재미없는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끝 부분에 사알짝 욕설이 있는 것 같지만 *표기를 했으니 문제는 없겠
죠. 쓰고 보니 2화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좀 더 세한 심리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세밀해진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게 문제 인 것 같습니다만...
비문이나 오타, 그외 모든 질문글을 환영합니다. 욕설도 환영합니다. 칭찬은 더더욱 환영합니다. ㅎㅎ
참고로 저는 아싸라서 사실 행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모릅니다... ㅠ

[프롤로그&1화] 링크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id=gofun&page=2&sn1=&divpage=44&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1958
[2화] 링크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id=gofun&page=1&sn1=&divpage=44&sn=off&ss=on&sc=on&keyword=더%20이상&tagkeyword=더%20이상&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2023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6 14:2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