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캐나다를 대표하다
춥지만 평화로운 토론토는 캐나다 최대의 도시입니다. 캐나다 경제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이민자가 각자의 문화를 보존한 채 공존하고 있는 토론토엔 한인 사회 역시 크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인 이민자 가족의 일상을 재밌게 다룬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의 배경 역시 토론토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편의점의 실제 촬영지에서 자동차로 8분 정도 가면 이번 글의 주인공 토론토 랩터스의 경기장 스코샤뱅크 아레나가 나옵니다.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못지않게 무서웠던 건 영악한 벨로시랩터입니다. 그 벨로시랩터에서 이름을 따온 토론토는 1995년 창단했습니다.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멤피스로 이전한 이후 캐나다 유일의 NBA 소속 구단이 된 랩터스는 토론토를 넘어 캐나다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입니다. 구단의 표어인 ‘We The North’는 그러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를 연고로 한 농구단이라는 점은 랩터스의 특색이자 약점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건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 사람들을 광분하게 만드는 유일한 스포츠 아이스하키 때문입니다. 토론토 시민들 역시 NHL의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플 리프스에 비하면 랩터스의 인기는 살짝 초라해지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2. 젊은 스타들의 이탈
상기한 농구 열기 저조뿐만 아니라 추운 기후, 높은 세금 등의 이유로 농구선수들은 랩터스 이적을 꺼리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레 전력 보강 역시 쉽지 않았고 초창기 랩터스는 약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운 사정 속에서 선택할 방법은 오로지 신인 드래프트였고 랩터스는 심혈을 기울여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지명합니다. 다행히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불세출의 선수들이 토론토에서 경력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거론될 선수는 빈스 카터입니다. 1998/99시즌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카터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놀라운 난이도의 덩크 슛을 호쾌하게 성공시키는 그에게 ‘Air Canada’, ‘Half Man, Half Amazing’ 등의 찬사가 쏟아집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가 한계인 팀 상황에 차츰 불만을 나타낸 그는 태업까지 불사하면서 이적하게 됩니다.
카터 이후에 팀을 이끌어간 선수는 ‘공룡’ 크리스 보시였습니다. 2003/04시즌 데뷔한 보시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슈팅과 빠른 속도를 보유했습니다. 리그에서 손꼽는 엘리트 빅맨으로 성장한 그를 지원하기 위해 랩터스는 여러 선수를 영입했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보시 역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고 맙니다.


3. 마왕에게 무릎 꿇다
에이스들이 차례로 떠난 랩터스는 2013/14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지휘자를 맞습니다. 덴버 너기츠를 이끌며 올해의 단장에 선정된 마사이 유지리가 부임한 것입니다. 트레이드의 귀재이자 유망주 육성의 달인인 유지리 단장의 지휘 아래 랩터스는 차츰 전력을 끌어올립니다. 덕장 드웨인 케이시 감독, ‘북방의 득점 사냥꾼’ 더마 드로잔, 든든한 수비와 리더십의 소유자 카일 라우리 등이 가세하면서 랩터스는 강호의 자리로 도약합니다.
그러나 당시 랩터스가 소속되어 있던 동부 컨퍼런스는 한 남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앞서 보시가 이적한 이유이기도 했던 르브론 제임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King’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이애미 히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거치며 8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합니다.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의 자리를 넘보는 제임스가 선보이는 괴력에 랩터스는 번번이 좌절하고 맙니다.
2018/19 시즌을 앞두고 유지리 단장은 결단을 내리고 맙니다. 바로 케이시 감독의 경질과 드로잔 트레이드를 실행한 것입니다. 부드러운 인품의 케이시 감독, 이전의 스타들과 달리 구단에 충성스러웠던 드로잔이 쓸쓸하게 팀을 떠나는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무대마다 작아지며 새가슴으로 불리던 두 사람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유지리 단장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4. 신구의 조화
랩터스가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택한 두 사람은 닉 널스 감독과 카와이 레너드였습니다. 먼저 널스 감독은 코치 생활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으며 임기응변이 모자란다는 케이시 감독보다 전술적인 변화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갈등 끝에 이적한 레너드는 2013/14 파이널 MVP를 수상할 정도로 큰 경기에 강했고 공격과 수비 모두 최고 수준인 선수였습니다.
두 사람을 필두로 우승을 향한 원정대가 구성됩니다. 주장 라우리, 큰 키와 뛰어난 운동능력의 세르지 이바카, 올해의 수비수 선정 경험이 있는 마크 가솔, 레너드와 함께 이적해 온 3점 슛의 고수 대니 그린 등의 베테랑이 뭉친 것입니다. 거기에 차기 에이스 자리를 노리는 파스칼 시아캄,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않았음에도 투지로 가득 찬 프레드 밴플리트 등의 유망주들이 가세해 탄탄한 전력이 구성됩니다.
대망의 2018/19 시즌 랩터스는 베테랑의 노련함과 유망주의 패기로 질주합니다. 비록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과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이끄는 밀워키 벅스에 밀려 리그 2위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시선은 플레이오프를 향해 있었습니다. 수년간 그들을 좌절시킨 제임스가 LA 레이커스로 이적하면서 비게 된 동부 컨퍼런스의 왕좌, 나아가 파이널 우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북부의 왕
플레이오프 첫 상대인 올랜도 매직은 1차전을 따내며 일격을 날렸지만 이내 랩터스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랩터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만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레너드의 역사적인 버저비터로 승리합니다. 자신들을 제치고 리그 1위를 차지한 벅스마저 꺾은 랩터스는 그토록 바라던 동부의 지배자 자리에 오릅니다. 그들의 여정을 마지막으로 막아선 이는 최강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습니다.
2014/15시즌부터 4년 연속 파이널 진출과 3번의 우승을 이룬 워리어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의 팀으로 거론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조던과 함께 시카고 불스에서 활약한 스티브 커 감독의 지휘 아래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 드마커스 커즌스 등 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우승 후보 1순위. 랩터스의 악몽 제임스마저 수차례 멈춰 세운 상대를 맞아 랩터스는 심기일전합니다.
다행히 당시 워리어스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공수 모두의 기둥인 듀란트와 탐슨이 빠지면서 휘청거리던 워리어스는 공룡의 먹이로 전락하고 맙니다. 경기장은 물론 길거리까지 가득 메운 토론토 시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플레이오프 해결사 레너드, 슈퍼스타 커리를 압도한 무명 밴플리트의 활약을 앞세운 랩터스는 4승 2패로 승리합니다. 랩터스를 넘어 캐나다 역사상 첫 NBA 파이널 우승에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파이널 MVP를 거머쥔 레너드는 또 다른 슈퍼스타 폴 조지와 합류하기 위해 고향 팀인 LA 클리퍼스로 이적합니다. 그러나 랩터스는 이미 아쉬운 이별과 새로운 만남에 단련된 팀입니다.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한층 더 성장한 시아캄을 새로운 얼굴로 앞세워 다시 우승을 노리는 랩터스는 현재 동부 컨퍼런스 5위를 기록 중입니다. 상대들 역시 작년보다 더 강해진 상태이지만 공룡의 발톱은 여전히 날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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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자는 우승보다 우승 이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어려운 과제를 잘 해내고 있는 토론토 랩터스의 이야기 재밌게 읽으셨나요? 다음 글은 NFL의 볼티모어 레이븐스를 다루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21: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