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트 위에서 추위를 견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까지 총 4종목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농구는 과거 농구대잔치부터 현재까지 겨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최근 예능계에서도 활약하는 ‘농구대통령’ 허재, ‘국보급 센터’ 서장훈 등의 선수들은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해 왔습니다. 고려대 농구부 역시 과거 이충희, 전희철, 현주엽부터 현재 이승현, 이종현, 강상재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바 있습니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한국프로농구 KBL의 출범부터 참여한 역사를 지닌 팀입니다. 실업팀 SBS 농구단으로 시작한 안양은 안양 SBS 스타즈, 안양 KT&G 카이츠, 안양 한국인삼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가집니다. 안양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안양 시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창단 이래로 우승에 근접한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2008/09시즌부터 2010/11시즌까지 안양은 힘든 시절을 보냅니다. 고려대 농구부 출신이며 한국프로농구 최초의 20시즌 및 1000경기 출장에 빛나는 철인 주희정, 득점력과 꾸준함을 겸비한 용병 선수 마퀸 챈들러 등이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7위, 8위, 9위에 그친 것입니다. 안양은 당시 최초로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팀 소속으로 MVP를 수상할 정도의 주축 주희정이 2009년 이적하며 눈물겨운 리빌딩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명장과 젊은 패기
‘제갈상범’이라 불리는 이상범 감독은 김호겸 사무국장과 함께 안양의 리빌딩을 진두지휘했습니다. 1992년 데뷔부터 은퇴 이후 코치로도 안양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이상범 감독은 프로농구 역사상 첫 득점 및 3점 슛의 주인공입니다. 기존에 팀을 이끌던 유도훈 감독이 건강 문제 및 프런트와의 마찰로 사임한 후 감독으로 승격된 이상범 감독은 좋지 않은 성적에도 선수들을 조련하고 다독이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합니다.
2011/12시즌을 앞두고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안양은 1순위 지명권을 얻게 됩니다. 안양의 선택은 중앙대학교 출신의 센터 오세근이었습니다. 당시 오세근은 4년 동안 재학하며 단 6번의 패배만을 기록하며 이미 대학농구를 평정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2006년 농구대잔치 상무 상대로 기록한 21득점 25리바운드, 2010년 대학리그 상명대학교 상대로 기록한 14득점 18리바운드 13어시스트 10블록, 한국농구 최초의 쿼드러플 더블은 그가 단지 대학 최고의 선수에 그치지 않는 거물급 신인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오세근의 입단과 함께 안양엔 또 다른 호재가 겹칩니다. 2007/08시즌 KBL 신인왕인 포인트가드 김태술, 한국농구대상 신인상을 받은 스몰포워드 양희종, 고려대 출신 파워포워드 김일두가 한꺼번에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기존 활약하던 2010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이자 KBL 신인왕 박찬희, 전체 2순위 이정현에 4명의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세하며 안양의 2011/12시즌은 기대와 함께 시작됩니다.


3. 인삼신기
오랜만에 홈구장 안양실내체육관이 매진될 정도로 많은 팬의 관심 속에서 맞이한 시즌. 안양은 좋은 성적으로 보답합니다. 신인임에도 용병 선수에 가까운 지배력을 보여준 오세근, 감각적인 패스의 김태술, 성실한 수비의 양희종, 주전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준 김일두와 이정현, 그리고 박찬희 등의 활약이 어우러진 것입니다. 파죽지세로 나아간 안양의 선수들은 실력과 외모를 모두 갖춰 아이돌 동방신기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안양은 후반 부진하며 주춤합니다. 패배 이후 김태술 선수를 향한 이상범 감독의 지나친 질책, 고의패배 의혹까지 받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상대 역전패 등의 사건으로 좋았던 분위기가 한풀 꺾인 안양이었습니다. 다행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구름 관중으로 열띤 응원을 보낸 팬들의 노력에 힘입어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2위를 기록하며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엔 성공합니다.
2007/08시즌 이후 4년 만에 다시 찾은 봄 농구 무대에서 만난 상대는 정규리그 3위를 기록한 부산 KT 소닉붐이었습니다. ‘호랑이’ 전창진 감독의 지휘 아래 화려한 플레이의 용병 찰스 로드와 정확한 슈팅을 자랑하는 조성민이 활약하던 부산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혈투를 벌이고 올라왔습니다. 생각보다 고전하며 3차전 일격을 당하기도 한 안양이었지만 4차전에 승리하며 3승 1패로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룹니다.


4. 동부산성
우승까지 단 한 발자국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맞닥뜨린 상대는 정규리그 1위를 기록한 원주 동부 프로미였습니다. 모기업의 이름 변경으로 지금은 원주 DB 프로미로 바뀐 원주는 3번의 챔피언 등극에 성공한 강팀이었습니다. 한국프로농구 통산 최고 승률 및 최다 승수에서 모두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원주는 단 한 번도 연고지를 떠나지 않으며 강원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명문입니다.
비록 훗날 승부 조작이라는 프로스포츠 최악의 잘못으로 제명되어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지만, 선수 시절 한국을 대표했던 강동희 감독이 이끄는 원주는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팀이었습니다. 한국프로농구 역사상 최초의 통산 1000블록을 기록한 전설적인 센터 김주성, 다재다능한 플레이의 2010/11시즌 MVP 윤호영, 강력한 힘을 앞세운 용병 로드 벤슨의 ‘트리플 타워’는 상대 선수들에겐 통곡의 벽이었습니다.
특히 안양은 이미 원주에 쓰라린 패배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해 1월 11일 프로농구 역사상 최소 득점인 41점에 그치며 완패했던 것입니다. 3쿼터 3득점 역시 역사상 최소 득점 2위에 달하는 굴욕이었습니다. 그해 상대전적 1승 5패, 관록과 경험의 차이, 플레이오프에서의 기세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안양한테 단일시즌 최다승인 44승 10패, 최초의 8할 승률, 최소 평균 실점 67.9점, 최다 연승 16연승의 동부는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5. 이것이 젊음인가
모든 선수와 전문가, 팬은 원주의 압승을 예상했습니다. 심지어 안양 팬들마저 그저 선전을 기원할 정도로 두 팀의 격차는 커 보였습니다. 1차전 리바운드 개수 42대20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서 원주가 80대75로 승리하며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충분히 잘했다는 위로가 이어졌던 챔피언결정전 무대. 안양의 선수들은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를 무력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양은 2차전 74대71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킵니다. 비록 3차전 79대80 아쉬운 1점차 패배를 당했지만 4차전 27득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한 벤슨의 무시무시한 활약을 극복하며 73대70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립니다. 프로농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주성을 압살한 무서운 신예 오세근, 윤호영과 이광재를 도발하면서 신경전을 벌인 양희종 등의 패기는 관록의 원주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안양은 5차전 벤슨과 강동희 감독이 판정 항의로 퇴장당하면서 무너진 원주에게 80대72로 승리하며 우승을 목전에 둡니다. 시리즈가 끝날 수 있는 6차전 원주는 안양을 밀어붙이며 3쿼터 17점 차까지 앞섭니다. 하지만 안양은 4쿼터 폭발적인 기세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결국 종료 6초 전 터진 양희종의 그림 같은 슛으로 66대64 승리를 거둡니다. 오세근은 최초로 신인왕과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고 안양은 창단 첫 우승을 기적적인 승부로 마무리합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우승 이후 2012/13시즌 고전한 안양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둡니다. 비록 2013/14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의 책임으로 이상범 감독이 경질되는 등 다시 부진에 빠진 안양이었지만 2015/16 김승기 감독의 지휘 아래 플레이오프 복귀에 성공합니다. 결국, 2016/17시즌 만개한 안양은 두 번째 우승이자 첫 통합우승을 거두기까지 합니다. 현재 안양은 3승 5패로 중하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상위권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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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KBL 소속팀 이야기는 처음 쓰게 되었는데 어떤가요? 안타깝게도 여러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팬이 응원을 보내는 한국농구도 흥미로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모쪼록 학우들께서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드디어 언더독 시리즈가 고파스 연재란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항상 추천과 댓글로 격려해주신 분들에게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글은 NFL의 테네시 타이탄스에 대해 쓰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1 13:5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