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퀸 열풍이 불길래 옛날 생각이 나서 끄적거려봅니다.
웃음, 감동은 아니지만 '연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이 게시판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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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는 제가 고3 때(1989년)까지 금지곡이었습니다. 1988년인가 대충 그 무렵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록된 퀸의 명반 <A Night at the Opera>가 국내 최초로 정식 발매되었는데요.(제 기억엔 최초 발매였는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 입학 전부터 빌보드 키드였던 저로선 놓칠 수 없는 앨범이었죠. 구입하긴 했지만 앨범의 앙꼬인 <보헤미안 랩소디>와 또 한 곡이 더 빠진 반쪼가리 판이라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원판은 커녕 백판도 구경못하던 시골이라 이 곡을 듣는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죠.
음악 잡지에선 평론가들이 엄청난 명곡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들을 방도가 없으니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고3 봄부터 친구 소개로 서울 사는 여학생이랑 펜팔을 했는데 그 여학생이 팝음악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고 싶은데 이 동네에선 들어볼 방도가 없다. 너는 서울 사니까 들어봤을 법 한데 들어봤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답장이 왔는데 자기도 판이나 테잎으로는 못들어봤고 AFKN에서 우연히 들어본 게 전부라고 하더군요. '지난 여름 AFKN에서 우연히 Bohemian Rhapsody를 들었던 수줍은 고백을 전하며' 라는 편지 말미에 달렸던 추신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근데 문제는 이걸 들어야 되는데 우리집은 LP판을 재생할 전축이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전축은 좀 있는 집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나름 고급 가전이었거든요. 그래서 LP판은 전축 있는 친구(이 친구 역시 빌보드 키드) 집에 가서 들었는데 그 친구 집으로 가기 전 갑자기 좀 얍삽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 친구가 이전에 제가 갖고 있었던 <A Night at the Opera>를 (비록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버전이었지만) 아주아주 부러워했다는 것.(그 판이 많이 찍질 않았던 건지 우리 동네가 깡시골이어선지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선 그 판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었음) 그리고 아마 그 친구는 아직 <보헤미안 랩소디>가 해금된 사실을 모를 거라는 것. (삐삐도 없던 시절인데 당연하겠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A Night at the Opera랑 니가 가진 핑크 플로이드의 Meddle이랑 바꿀래?"
"진짜?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그러고 얼마 후 새로 산 판을 들고 뻔뻔하게 그 집으로 가서 생애 처음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답니다.
이즈 디스 더 리얼 라잎 이즈 디스 져슷 팬터쥐
콧 인어 랜슬라잇 노 에스케잎 프럼 리앨러티
첫소절부터 요즘 말로 '쩔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 때까지 한 번도 못들어본 타입의 곡이었거든요. 몇날며칠 반복해서 듣고 가사를 다 외웠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좀 미안한데 얼마 전 이 사실을 얘기해줬더니 오래 전 일이라 그런지 기억을 못하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친구는 저랑 바꾼 그 LP판을 지금도 가지고 있고 저는 그 LP가 남아 있지 않네요.
(괜찮으시면 퀸과 프레디 머큐리 살아 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끄적거려 보겠습니다.)
* 사진은 그 친구가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는 저와 바꾼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국내 최초 발매 버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17 21:49: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