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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4
익명
2017-08-31 03:48:38
잘려다가 아직도 댓글이 많이 달리기에, 생각정리 겸 첨언을 하자면요.
어제 운이 좋아서 그 사건을 바로 코앞에서 봤는데, 더블플레이라고 막 환호하는 와중에 심판이 이상한 제스처를 취했죠. 사람들은 '뭐야 뭔데' 하는 반응이고. 급기야 감독이 나오니까 '무슨 상황이냐 당연히 아웃이지' 하는 분위기(이쪽엔 두산 팬이 있어도 잠잠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 롯데 팬 응원이 대부분). 일정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던 소리는 '왜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안 하냐, 조원우 비디오 요청하면 되잖아' 이런 반응이었어요. 이거는 티비랑 현장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일정부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 알거나, 티비시청을 겸한다거나 해서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장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의외로 티비로 보는 사람보다 상황을 잘 몰라요. 야구장 가보시면 아시잖아요. 현장이 경기보기엔 더 불친절한걸. 삼루수가 박근영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그 상황에 눈에 들어온 건 3루 주자였던 김재환뿐이죠.
어쨌든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니까 관중들은 뭔 진 몰라도 기세싸움을 합니다. 롯데 쪽에서는 우~ 하고 두산 쪽에서는 와~ 하면서 박수쳐주고, 롯데에서 아웃아웃 하면 저쪽에선 세입이라고 하고. 롯데에서 감독 힘 실어준다고 조원우를 연호하니까 저쪽에선 조원우 퇴장을 외칩니다. 여기서 좀 관중석 분위기가 되게 묘해졌고. 나중에 보니 중계에서도 분위기가 묘해졌다는 말을 하던데 아무튼. 그렇게 이상한 판정 이후로 점수주고 분위기가 기울었고 8회초가 시작됐죠. 김재환 포지션이 하필 원정팀 응원석에 가장 접한 위치였기 때문에 상황을 모르는 아저씨들이 변방에서부터 김재환을 걸고 넘어졌습니다. 근데 뭐 일부 유언비어 퍼 나르는데서 말하는 것처럼 패드립을 쳤다느니, 뭘 던졌다느니 그런 건 없었어요. 저도 귀 한쪽, 눈 한쪽이라 제가 다 듣고 다 본 건 아니니까 못 본 것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가까이서 보는 데서는 그랬습니다. 부산 사투리로 ‘마 약재화이 약무니까 좋나?’ 하는 식의 철저히 도핑 관련 비하와, 나중에는 ‘약재환! 약재환!’ 연호가 대부분. 여기까지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일부 팬들이 앞 상황의 판정을 가지고 김재환을 비난하는 게 맞냐? 라고 하면 분명히 개연성이 떨어지긴 합니다. 만약 관중들이 전혀 없는 사실로 비난하거나, 무고한 선수를 헐뜯었다면 무조건 관중들의 잘못이죠.
근데요. 역사적인 어떤 사건이 발생함에 있어서, 원인부터 직접적인 계기까지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라예보에서 총성 한발이 1차대전을 발발시킨 것처럼 뭔가 전조현상은 있었지만 전혀 뜬금없어 보이는 일로 사건이 급진전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뭔 뜬금없는 소리냐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이번 사건을 보는 제 관점이 그렇습니다. 일부 팬들은 ‘경기 중에 갑자기 선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어느 시점이 야구판에 굴러 들어온 약쟁이를 비판하기 탁월한 시점이었을까요? 유니폼만 벗으면 약을 하건 말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야구장 밖에서 비판하는 것도 이상하고, 뭐 그렇다고 아예 날 잡아서 멍석 깔아놓고 ‘약쟁이 성토대회’를 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굳이 약쟁이를 비판하고 바로잡고 넘어갈 골든타임을 언급하자면, 도핑테스트에 걸렸던 바로 그 시점이 골든타임이겠죠. 그런데 놓쳐버렸죠. 협회는 솜방망이 징계에, 본인은 봉인해제라 하지 않나, 최소한 약쟁이라는 죄의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본인도, 야구 관계자도, 기자라는 것들도 그런 게 없어요. 분명히 뭔가 잘못됐는데 4번 타자 재목으로 추켜세우고, 약쟁이한테 골든글러브까지 안겨주고, 도대체 동업자 정신이 뭐 길래 해설이라는 인간이 ‘도대체 김재환이 무슨 잘못을 했냐’ 고 두둔하기까지 합니다.
요즘 야구판도 그렇지만, 이런 괴이한 분위기 하루 이틀 아니잖아요. 한쪽에서는 매수사건 폭로가 연일 터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면서 일언반구도 없이 중계하고, 그거 보고 응원하고 박수치고. 약재환 사건은 그러니까, 그런 거죠. 안에서는 모순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뇌관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겉보기에만 멀쩡해 보이는... 뭐 이미 인터넷에서는 김재환 관련 기사마다 약쟁이 비난으로 도배돼왔던 걸 야구 보시는 분들은 잘 아실테구요. 롯데 전에서, 그것도 뜬금없는 상황에 터진 건 우연이고 맥락이 완전 동떨어진 사건인지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말해서 결국 약재환 디스는 바로잡아야 할 시기를 놓친 이상 필연적으로 우연을 가장해서 터질 수밖에 없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롯데가 아니더라도 어느 팀이라도 목도할 상황이었고, 굳이 그 날이 아니었더라도 두산 팬이라면, 더욱이 여지껏 도핑 야구선수에 대해서 두둔하기에만 급급했던 두산 팬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목도해야 했을 불편한 상황이란 거죠. 요즘이 한참 매수다 뭐다 해서 터지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구요. 뭐 결국 제 생각은 결국 터져야 할 것이, 생각보다는 너무 늦게서야 터졌다는 생각인데.. 또 어떤 분들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할 것 같네요.
ps. 덧붙여서 어제(8월 30일) 경기까지 보고 나서는 드는 생각은, 원랜 그냥 단발성 사건으로도 끝날 뻔한 일종의 이벤트였는데.. 몇몇 몰지식한 두산 팬들의 대응으로 인해서 앞으로도 종종 기습적으로 약재환 디스가 터져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김재환 약물전과는 두산의 대표적인 약점 중 하나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어렵지 않죠. 경기 과열될 때 터지기 좋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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