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정류장 ]

“오랜만이에요.”

정말 오랜만이다. 3년이 지났다.

“선배.”


오빠라는 말보다 선배라는 말이 익숙하다.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다. 한 눈에 반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그러나 부족하지 않은 호감.

“그래, 오랜만이네.”

모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선배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영화는 좋아했지만, 정작 영화를 보러 자주 갈 수 없었다. 어머니 혼자 운영하는 작은 식당일을 돕느라 하교 후에는 늘 바빴다.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다.

늦은 주말 밤, 다음날 쓸 재료를 손질하며 둘이 함께 보는 <주말의 명화>가 모녀의 작은 위안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동아리는 영화 동아리를 원했다. 영화를 더 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지만, 다른 동아리보다 제약이 적었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이었다.

“선배는 하나도 안 변했어요.”

겨울의 찬바람에 실려 보내듯 말했다.

“그래? 넌 참 많이 변했는데.”

나는 고개를 돌려 선배를 봤다. 찬바람에 빨개진 귀가 보였다. 사실 선배는 많이 변했다. 내 기억의 속의 모습보다 더 멋있었다.

“제가 많이 변했어요?”

“응. 정말.”

“하하.”

가볍게 웃었다. 궁금했다. 어떻게 변했어요? 하지만 묻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바로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는 길을 건너 모퉁이를 돌면 있는 버스 정류장에 가야 했다. 이쪽 정류장으로 하교하는 학생은 적었다. 상점가로 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는 이쪽 정거장으로 하교했다. 와!

“너도 여기서 버스 타?”

“네.”

그 때도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버스는 배차 시간이 길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당연하다. 다만 말을 하는 쪽은 거의 선배였다. 나는 대답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선배는 버스에 타면 두 정거장 뒤에 내렸다. 나는 여덟 정거장은 더 가야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영화를 봤어.”


선배는 영화를 많이 알았다. 덕분에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많은 영화를 본 것처럼 알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에 열이 올라 있는데, 타이밍 나쁘게도 버스가 도착하는 날은 둘 다 머뭇거렸다.

“전 다음 버스 타도 돼요.”

내 인생에서 가장 적극적인 순간이었다.

“더 이야기 해줘요.”

그 이후로 버스를 보내고 이야기를 듣는 날이 많아졌다.

“오랜만이네요.”


“맞아. 함께 버스 기다리곤 했는데.”


선배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웃었다.


“영화 아직도 많이 봐요?”

내가 물었다.

“아니, 요새는 별로.”

“왜요?”


“그냥 흥미가 없어졌어. 너는?”

나도 대학 생활로 정신없었다. 졸업생과 재학생의 만남 같은 모교 행사가 아니었다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있었겠지.

“저도요.”

나는 웃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겼다. 어색한 분위기에 선배도 나도 버스가 오는지 먼 길만 보았다.

버스 정류장에서의 시간은, 선배가 졸업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뭔가 한걸음 나아갈 것 같은, 선배가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배도 나도 더 이상 말이 없이, 버스를 한 대 보내고 난 뒤에, 선배는 내 얼굴을 빤히 보고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짝사랑이 끝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함이 있었다. 선배에 대한 작은 원망이 있었다.

그리고 졸업한 선배를 볼 수 없다는 슬픔이 잔뜩 있었다. 밤새 울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어떤 느낌에 사로잡혔다. 버스를 타면 안 될 것 같았다. 선배도 버스에 타지 않았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배는 내 시선을 피해 말했다.

“후회했었어.”

버스가 떠나고, 선배는 나를 보고 말했다.

“사실…….”

한참이 지나서야 선배가 말을 이었다.

“우리 집 가는 버스, 건너편에서 타야해.”

“네?”

내 심장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렸다. 그럼 2년 동안, 함께 버스를 기다린 시간은?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같다. 정신을 차리니 선배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잘 지냈어요?”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선배가 웃었다. 하하하. 나도 왠지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입술 언저리부터 퍼지는 미소.

“이야기가 아주 긴데.”

선배의 대답에, 나도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응?”

“이야기는 긴 편이 좋다구요.”

선배도 나도 웃었다. 선배와 나는 이제 서로를 똑바로 바라봤다.

우리는 삼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함께 그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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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오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22: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