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공연예술 쪽의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평생 한편의 뮤지컬만을 본, 공연예술계에 있어서는 암적인 시민이었다.(올해가 가기 전에 발레나 오페라 중 한 장르를 생애 최초로 시도해보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저런 사유로 한해에도 몇 편의 뮤지컬과 연극, 그리고 클래식 공연 등을 보게 되었지만.

뮤지컬은 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산업에서 영화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20~30대의 여성이 주 타겟으로, 솔직히 나 같은 일반적인 남정네들은 여친이 아니면 볼일이 별로 없는 장르이기 때문에, 가끔 뮤지컬과 그 바닥의 스타를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여성분들을 보면서 의아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뮤지컬 장르의 스타들은 이미 상상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고 뮤지컬의 양은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질에 대해서는...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그러한 스타들 중 우리나라 뮤지컬이 아직 약진하기 전부터 시작하여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서 왕언니 노릇을 하는 분이 바로 김선영이다. 1999년 뮤지컬 페임으로 데뷔하여 내가 한참 군대에서 썩고 있었던 2006년에 미스사이공의 엘렌, 지킬앤하이드의 루시, 에비타의 에바 페론 등의 주조연을 모두 휩쓸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마침내 국내 양대 뮤지컬 어워드에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한 쾌거를 이룬다. 김선영은 요새도 뮤지컬 ‘영웅’의 설희역으로 맹활약하고 있고, 내년에 다시 미스사이공으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다.

2009년 공교롭게도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은 김선영이 자신만의 콘서트를 마련했단다. 솔직히 김선영이 무대에 올라간 뮤지컬을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그의 역량이 높이 평가 받는 것이 이른바 ‘원로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크로스 오버가 대세라지만 삼십줄을 훨씬 넘긴 김선영이 자신의 이름을 하나 걸고 콘서트를 열다니...하는 생각까지 사실은 공연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 김선영님. 그녀의 노래는 명불허전, 바로 그것이었다. 저음에서의 비음이 사람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고음에서 터져나오는 시원하고도 웅장한 목소리는 왜 김선영을 ‘원로에 대한 예우’가 아닌 ‘디바에 대한 예우’를 갖추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인터미션 없이 10여곡 이상을 장장 90분을 쉬지 않고 노래하는 김선영을 여러 무용가들과 김보경 등의 뮤지컬 배우들이 함께 받쳐주었다. (어제는 류정한 출연이었다는데 못봤고)홍광호와의 듀엣 역시 환상적이었다. 조승우가 그랬다던가. 자기 노래는 홍광호에 비하면 쓰X기라고. 안 들어보신 분들은 기회가 닿는데로 그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시라.

콘서트가 더욱 힘을 발한 것은 심심한 뒷배경을 커버하기 위해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쏘고 많은 찬조출연자들을 통해 더욱 열광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는 600여석 정도의 중형 극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 장치와 연출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콘서트는 오늘로서 끝이 났다. 리뷰를 써도 그것에 감화된 누군가가 이 콘서트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없다는 뜻이다.(SBS에서 찍어가서 2주 뒤쯤 나온댔으니 인터넷을 검색해 기다려도 되겠다) 그러나 뮤지컬 배우가 가진 극적 역량과 음악적 역량이 뮤지컬에 비해 지극히 개인적인 콘서트라는 형식으로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향후 이런 콘서트들을 통해 한 명의 배우가 자신의 팬들에게 좀 더 가까이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 혹은 정말 노래 좀 한다는 배우의 콘서트가 열린다면 한번쯤 가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추천하는 바이다. 다만, 노래만 가지고 끝을 보려는 공연보다는 공연의 기획이나 구성을 잘 한 번 살펴볼 것. 좋은 기획과 구성없이 신나고 즐거운 공연은 정말 만의 하나다.

p.s 1 최용수 총연출의 무대 기획과 창작곡, 그리고 음악 감독은 매우 훌륭했음.
p.s 2 분명히 급조한 안무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리듬을 탄 고운 선을 뽑아낸 김보경의 춤솜씨도 인상 깊었음.
(반했다고는 절대 말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