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ugh Said -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좀 말해!

'이너프세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Enough Sad'인 줄 알고 '충분히 슬픈 건 대체 뭘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는데, 알고보니 제목을 잘못 알고 있었다. 'Enough Said'는 40대 이혼녀 에바가 이혼남 앨버트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전처에게 우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앨버트가 에바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집으로 에바를 초대한 앨버트는 그녀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어준다. 충분히 로맨틱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 장면에서 그녀는 전처의 말을 떠올린다.

앨버트가 처음 요리해줬을 때 감동받았지만, 그가 할 줄 아는 요리는 그거 뿐이었어.'

이 장면이 주는 묘미는 연인 사이에 형성되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행위들이 제3자에 의해 평가되면서 그 색이 바래고, 빛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하찮고 의미없을 수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 누군가는 여기저기서 그것이 얼마나 별게 아닌지 떠들어댈 것이고, 그럼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나는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커질 수록 우리는 눈앞의 특별한 존재를 망각하고, 1인칭이 아닌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고 애쓴다. 주관적인 영역이 객관적인 영역으로 물드는 순간 나와 그/그녀의 관계는 온갖 숫자들과 사람들의 평판만으로 재단될 것이다. 직업과 통장잔고로 그 사람의 성실성을 평가하고, 키나 몸무게, 얼굴 생김새로 그 사람의 성격을 가늠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에바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Enough Said!. 먼 소린지 알겠으니까 그만 좀 말해. 나는 앨버트와의 관계가 더 이상 제3자에 의해 휘둘리는 걸 원치 않아. 나는 온건히 나 스스로 그 사람을 직시하겠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의 취미, 직업, 삶 역시도 유사한 두려움에 의해 특별함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외부의 시선이나 평판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주도권만은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30 14: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