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배고픔을 채워야 하는지 마는지 말이다. 물론 난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 아니다. 살을 빼기 위해 굶는 것을 멍청한 행동이다. 오히려 운동을 해야지. 단지 내 앞에 있는 고기 덩어리가 문제였다. 그럼 내가 채식주의자냐구? 아니다. 난 오히려 고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 육즙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니까.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고기는 나에게 거부감을 유발하고 있었다. 그건 인간의 고기였으니까.

  
   내가 배고픔에 미쳐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을 정확하기 위해서는 이틀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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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청한 자식.”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이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나는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술이나 마약 따위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단다. 하지만 난 법보다 나의 판단력을 믿었다.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저 법이 머저리 같기 때문이다. 군인 출신이자 조국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진 아버지였기에, 숙취로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내게 욕부터 쏟아내는 것이다.

  
   “새미! 내가 너 나이 때는 말이다!”

  
   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숙취보다 더한 아버지의 잔소리. 게다가 새뮤엘이란 이름 때문에 웃기지도 않는 ‘새미’라는 애칭까지 생겼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네가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지 할머니가 아시면 무덤에서도 눈을 못 감으실 거다!’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집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뒤에서 아버지의 노성이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몇 년을 더 버티면 웃기지도 않는 집구석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으웩.”

  
   최대한 집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숙취가 문제였다. 나는 세 블록도 못 가서 한바탕 속을 비워내야 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잔디 위에 잔뜩 토사물을 쏟아내고 나자 기분은 한층 더 나빠졌다. 제기랄! 어제 너무 과음했나보다.

  
   오늘은 휴일이었다. 자연스레 어제는 술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몬스터 S2R 1000'을 몰고 왔다. 배기량 1000cc 짜리 잘 빠진 오토바이 뒷자석에는 내가 짝사랑하던 루비도 앉아 있었다. 그러니 어찌 안 마실 수 있겠는가! 홧술로 이미 주량을 훨씬 넘게 마시고 나서야, 루비는 그저 S2R 1000에 타보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오토바이 자체는 별거 아니었지만, 우리 나이에 자신의 오토바이는 대단한 것이었으니 루비도 끌렸겠지. 어쨌든 요새 들어 날씨는 더 추워졌고, 몸을 데우기 위해 너도나도 술을 권했다. 이것도 내 숙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숙취 없애는데 뭐가 좋더라! 제길!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챙기고 나온 것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구겨진 에브라함 링컨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잔돈 몇 푼. 5달러 75센트로는 더 술을 부어넣을 수도 없었다. 링컨을 보니 날씬한 고릴라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이 말을 들으면 환장하겠지. 우선은 갈증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가까운 편의점이 차로 10분 거리라 다행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집과 집 사이는 멀었고, 온통 옥수수와 콩, 알파파 밭뿐이었다. 편의점까지 가는 동안에도 길 양 옆으로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었다. 난 이 풍경이 제일 맘에 안 들었다. 어디를 가나 같은 풍경만 반복되는 모습이 마치 내 한심한 미래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살면 평생 옥수수 낱알만 세야하니까. 숙취로 비틀거리면서도 나는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독립하면 우선 도시로 가야지. 그리고 번화한 술집의 바텐더로 취직하는 거야. 나 정도의 얼굴과 말솜씨면 매일 밤 괜찮은 여자를 낚을 수도 있을 거야. 오, 멋진데.



   문득 루비가 내 상상 속에 나타났다. 나는 대도시의 바텐더였고, 어깨에는 화려한 불꽃 문양 문신이 있었다. 그녀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네고, 눈짓을 한다. 그러자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멋진 미래는 오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늘 말했던 멍청한 짓으로 길에서 굴러 떨어졌다. 숙취 때문에 균형도 잡지 못한 나는 길옆의 비탈면을 한참 구른 뒤에 옥수수 밭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운 나쁘게도 그 부근의 땅은 돌이 많았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이것이 내가 죽게 된 경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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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죽게 되면 빛으로 뒤덮인 완전히 새하얀 공간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곧 날개달린 아기 천사들의 하프연주와 함께 수염을 기른 노인이 날 나타날 것이 생각했다. 꿀과 젖이 흐르는 기묘한 강 따위는 버려두고라도 더 이상 걱정거리가 없는 곳에 가게 될 줄 알았다. 천국 말이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없는 가장 완벽한 그 곳.

  
   하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때, 완전한 어둠이 나를 반겼다. 처음에는 내가 천국에서 눈 뜨는 법을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이윽고 여기는 천국이 아니고, 단순히 완전한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의 상황을 잘 몰랐다. 손을 살짝 앞으로 향해보자 뭔가 단단한 것이 닿았다. 사실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손은 매우 차가워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 해보았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작스레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소리를 질러보려 했지만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이 사막의 모래를 삼킨 것처럼 건조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동안 패닉상태에서 발버둥 쳤다.

  
   어느 정도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뒤에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길에서 굴렀으니 응당 병원이나 집이어야 하는데, 어둡고 좁은 공간이라면 한 곳 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관 속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분명히 죽지 않았나.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죽었다가 다시 눈을 뜨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지. 좀비나 드라큘라 따위는 싸구려 호러 무비에나 나오는 족속들이었다. 좀비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하고 생살을 먹으려고 환장하는 무뇌아 아닌가. 한참을 킥킥 거리고 혼자 숨죽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좁은 공간에서 울려 기괴하게 들렸다. 하지만 속 시원히 웃을 수는 없었다. 마치 뭐가 폐에 뭐가 걸린 듯 답답했다.

  
   어쨌든 내가 좀비라면 내 몸은 이미 죽은 상태라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 팔뚝을 꼬집었다. 그 순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놀랬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꼬집는 손도 그렇고, 꼬집힘을 당하는 팔뚝에서도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마구 구겨버린 종이처럼 엉망이 되었다. 설마!

  
   누구라도 좋으니 당장 나를 이 악몽에서 깨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미, 일어나렴.’ 같은 아버지의 징그러운 목소리도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둠은 여전했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공간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꿈이라면! 이 관을 열고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꿈에서 깨겠지!

  
   나는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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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완전한 절망에 빠진 것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무덤을 빠져나온 직후였다. 싸구려 관은 나의 끊임없는 타격에 쩌억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곧 관 위로 덮였던 흙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무게로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힘겹게 흙을 뚫고 올라올 수 있었다. 싸구려 관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니. 게다가 관을 완전히 매장하기 전에 잠시 흙만 덮어두는 매장 관습이 무덤 밖으로 나오게 해준 것이다. 나는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좌절했다. 무덤에서는 나왔지만 이건 악몽이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정말 좀비가 된 것일까.

  
   여전히 손발에는 감각이 거의 없었다. 몸도 차가웠고 움직임도 굉장히 둔했다. 정말 좀비가 된 것인가? 하지만 좀비를 다룬 싸구려 영화는 있었어도 진짜 좀비가 나오는 다큐멘타리 따윈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진짜 좀비인지 확인 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름달이 뜬 무덤은 굉장히 을씨년스러웠다. 비석들과 파헤쳐진 무덤은 현실적이지 않고,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뭘 해야 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집부터 가야할 것 같아. 하지만 뭐라고 하지. 아버지 저 죽었다가 좀비가 돼서 돌아왔어요.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가 기절하거나 놀라서 총을 쏠지도 모른다. 전직 군인 주제에 겁은 많으시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묘지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일어서는 순간,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거기 누구야!”

  
   순간 강렬한 빛이 내 쪽을 향했다. 손전등 불빛을 꼬나준 노인 하나가 절뚝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지팡이와 다리를 번갈아 뛰는 모습이 매우 위태위태해보였다.

  
   “이 밤중에 묘지에서 뭐 하는 짓이야!”

  
   나는 뭐라 대답하려 했으나 목이 잠겨 아무런 말소리를 내지 못 했다. 좀비가 돼서 벌써 폐가 썩었나?

  
   “뭐하고 있는 거냐고! 이 썩을 녀석!”

  
   이미 썩었어요. 나는 그 노인이 나에게 위협이 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몸이 납처럼 무거워서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인은 나와의 거리가 10m도 채 되지 않은 위치까지 왔다. 그는 속도를 줄이며 나를 관찰했다.

  
   “오, 세상에. 당신 무덤을 파낸 거야?”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온몸은 흙투성이였다. 게다가 오늘은 내 장례식이 있었다. 이따금 부랑자들이 관을 열어 옷이며 물건들을 꺼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도 있는 모양이다.

  
   “신이여. 무슨 천벌 받을 짓을!!”

  
   나는 설명하려 했지만 역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한층 더 휘청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끔찍한 푸욱 소리도 들렸다. 노인은 내 쪽으로 곧장 오고 있었고, 얄궂게도 그와 나 사이에는 내 무덤이 있었다. 게다가 무덤구덩이는 박살난 관의 나무 조각들이 있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피 냄새가 훅 하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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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나는 얼굴과 가슴 부근에 나무 조각이 박힌 깡마른 노인을 앞에 두게 된 것이다. 묘지 근처의 불빛이 나오는 통나무집이 있었는데, 이 노인의 집인 듯 했다. 나는 노인의 시체를 끌어다가 통나무 안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긁힌 상처로만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상처의 위중함을 알았다. 통나무집 안은 작은 난로를 두고 있어 훈훈했다. 또 그만큼 피 냄새가 잘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가지 충격을 느꼈다. 역겹게 느껴지던 피 냄새가 익숙해지자 피로와 허기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람의 시체를 두고 허기를 느끼다니? 내가 좀비니까 사람의 생살이나 금방 죽은 시체를 먹고 싶은 것인가.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이제야 좀비영화의 좀비들이 왜 무뇌아인지 알 것 같았다. 도대체 좀비는 이성적으로 살 수가 없는 존재였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게다가 내 몸은 점점 썩어갈 것이고, 사람의 생살만 보면 물어뜯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루비도 다신 볼 수 없다. 그녀를 바라보는 대신 목덜미를 물어버리고 싶을 테니까!

  
   피로와 허기, 충격으로 한참을 울던 나는 결심했다.

  
   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영화에서 좀비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불에 태우거나 머리를 날리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스스로 머리를 박살낼 용기는 없었다. 나는 통나무집을 뒤졌다. 그리고 기름통을 발견했다. 난로 장작에 불을 붙이기 위한 기름인 듯 했다. 떨리는 손으로 내 몸에 기름은 끼얹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에 구역질이 나면서도 어떤 사명감이 나를 몰아넣었다. 곧 내 몸은 흥건히 기름에 뒤덮였다.

  
   노인은 주머니에서 꺼낸 라이터를 손에 쥐고서, 나는 내 지난날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토록 밉던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지만 난 살아나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부싯돌을 당겼다.

  
   곧 손을 따라 온몸으로 불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타는 고통을 느꼈다. 나는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으아악> 아버지의 얼굴과 내 지난날이 빠르게 머릿속에 떠오르고 사라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타는 고통과 함께!

  



   ……

  



   잠깐! 고통이라니! 좀비는 고통을 느끼지 못 하잖아!

   게다가 지금 소리를 질렀어! 폐가 썩지 않았나?

  



   불타는 고통보다 더 큰 충격이 머리를 때렸다. 불을 끄기 위해 바닥을 뒹굴면서 나는 나를 힘껏 비난했다. 바닥에 닿는 모든 부위가 칼에 찔린 듯이 아팠다.

  



   멍청한 녀석!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아무런 감각도 못 느끼는 것이 당연하잖아!

   같은 자세로 하루종일 있었으니 몸이 뻣뻣해진 것도 당연하지!

   이틀 가까이 굶었으니 배고 고픈 것도 당연해! 단순한 착각이었다구!

  
   멍청한 녀석! 멍청한 녀석!

   좀비라니! 새뮤엘, 이 멍청한 자식!!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09:2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