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마다 완전한 믿음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불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완전한 불신을 갖는다면 이런 외딴 마을에 무인 상점이나 다름없는 작은 구멍가게가 유지될 리가 없다. 마을사람들이 구멍가게의 이점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계산을 착실히 하여 뒤탈을 줄였단 설명이 외부인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달랐다.

   <김 씨는 또 어디 가셨소?>

   구멍가게 주인인 김 씨는 생업의 현장보다 다른 곳에 더 많이 가 있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필요한 물품을 공책에 적당히 써놓고 가는 것이다. 원래는 무인 계산을 하려고 했지만, 그 편보다 필요한 물품을 써놓으면 나중에 배달해주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는 부녀회장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가장 넓은 국도에서 직선으로 수 십분만 달리면 이 시골에 도달한다. 하지만 지도상의 척도가 가끔 그러하듯 현장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 했다. 덕분에 지도만 보고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산길의 험함과 구불거리는 특성에 수 시간을 소비하곤 했다. 덕분에 산 아래 외진 마을은 더더욱 외부와 차단되었다.

   그런 김 씨는 마을 사람치고는 매우 젊었다. 마을에 간혹 어린 아이가 있긴 했지만, 아이가 자라 학교 갈 무렵이 되면 부모는 분교가 있는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분교조차 들어오지 못 한 외진 지역이었다. 이런 지역에 김 씨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한 청년이란 점이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청년이란 것이다. 이미 장성한 자식이 셋이나 도시에 살고 있었다. 김 씨가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조상이 남겨놓은 땅이 있었다는 설명이 있지만, 그 조상이 위로 몇 세대인지 그 말이 사실인지 불확실 했다. 그러나 김 씨의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반듯한 모습과 바른 행동은 마을 사람들의 텃세와 의심도 쉽사리 녹였다.

   <효자지. 그렇고 말고.>

   가장 큰 것은 효심이었다. 늙은 노모(老母)가 아들의 칭찬을 직접적으로 한 적은 드물지만, 매일 노모 곁에서 수발을 드는 김 씨의 모습은 마을 어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들려오는 뉴스라곤 부모 살해 같은 흉흉한 세상이니 더욱 정감 갈 터였다. 그렇기에 노모가 하던 구멍가게가 무인 가게나 다름없이 바뀌어도 모두 기분 좋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김 씨의 노모도 가게를 곧잘 비우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이 되면 가게를 일찍 파했다. 마을 구멍가게는 으레 그러하듯 마을의 쉼터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시골은 작은 정보에도 모두 민감했다. 시골에서 느끼는 잔재미는 주로 소문이었고, 그 소문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에서 가장 활발해지는 법이다. 덕분에 마을 회관을 제외하곤 구멍가게를 따를 정보처가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발을 쉬게 할 겸 구멍가게 앞 평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김 씨의 노모는 안주거리와 술 한 사발을 내놓으며 또 다른 잔재미를 보곤 했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주인은 자리를 비웠다. 딱히 누군가에게 말하고 자리를 비운 것은 아니지만, 모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김 씨의 노모는 마을을 휘감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마을 뒷산을 올랐다. 매일 쉬지 않고 산을 오르내렸다. 산 높은 곳에 버섯을 재배하거나,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경우도 있지만 김 씨네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취미 삼아 하는 텃밭은 마을 앞마당도 충분했다. 김 씨네 앞마당은 매우 넓었고 흙도 고르기 좋았다. 배추 농사를 하는 장 씨의 주장에 따르면 산에 나는 부식거리를 캐러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씨의 노모가 뭔가를 가지고 오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 했다. 게다가 뭔가를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장비도 필요한 법인데, 김 씨의 노모는 항상 빈손으로 산을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행에 대해 궁금함을 감추지 않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 했다.

   본인이 입을 다물면 가족이나 제일 친한 사람에게 귀가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족이라곤 묵묵히 어머니를 봉양하는 김 씨와 그 아내뿐이었고, 쉽사리 입을 열지도 않았다. 차선책은 지물포 최 씨 부인이었다. 그녀는 비록 입은 열었지만, 쓸 만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 입이란 점에서 마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내가 김 씨네를 안지 30년도 더 넘었다지만, 나도 이유를 모르겄네.>

   마을 사람들은 김 씨네가 마을로 들어오긴 전의 일과 산행이 연관 있을 거라 추측하곤 했다. 하지만 최 씨 부인도 그에 대해서 알진 못 했다.

   <친한 것도 마을 들어온 순간부터지……. 그 전 일은 암것도 모르지. 물어볼 생각도 못 했거니와 세월이 이렇게 지나서 물어보기도 여간 낯 부끄러잡고.>

   마을 여자들의 은근한 압박에 그 낯부끄러움을 극복한 후에도 정확한 대답은 없었다.

   <내가 그 말만 꺼내면, 은근히 말을 돌리니 묻기도 어렵고. 거 참.>

   결국 최 씨의 소심함에 모두들 한 마디 하고 입을 딱 다물 수밖에 없었다. 기이한 산행은 항상 반복되었다. 물론 산행이 멈춘 적이 있긴 했다.

   산행이 멈춘 동기는 비밀스럽지 않았다. 김 씨의 노모가 다쳤기 때문이다. 산자락에서 넘어진 김 씨의 노모를 마을 사람이 발견했고, 일이 커진 것을 느꼈다. 최 씨 부인이 도시의 김 씨에게 연락을 했고, 김 씨는 재빨리 노모를 모시고 읍내의 병원으로 향했다. 왼발이 부러진 듯 했고, 많은 기간 휴식해야 했다. 왼쪽에 누에고치처럼 생긴 붕대를 감고서도 김 씨의 노모는 산행을 고집했다. 마을 사람들은 노모를 말렸지만 이유만은 말하지 않은 채, 산행을 고집했다. 결국 김 씨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리고 노모를 업고 산행을 지속했다.

   <무슨 사연이 있을거여.>

   모두들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김 씨를 마주칠 때마다 타일렀다.

   <자네도 그렇고, 자네 어머니도 나이가 좀 많은가? 이유가 어찌됐던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어떤가? 예전 일도 그렇고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이. 우리 나이 쯤 되면 여름 밤공기에도 골병드는데, 자네 어머니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거드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만하면 되었네. 이제 자네도 그만하게. 자네 어머니는 우리가 설득 하겠다 이 말이네.>

   김 씨는 살짝 미소 지을 뿐, 산행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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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산행은 두 번째 저지를 당했다. 부상도 막지 못한 산행이 멈춘 것은 계절 덕분이었다. 여름이 자신의 열기를 견디다 못해 지쳐버렸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김 씨의 노모는 산행을 주장했지만, 성치 않은 노모를 모시고 산행을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궂었다. 김 씨네가 매일 오르던 길은 장맛비에 작은 계곡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매일 같은 모습이 되풀이 되었다.

   <어머니 오늘은 무리예요.>

   <가야 한다. 알잖니, 안 그럼 내가 어찌 편히 눕는다니.>

   <날씨가 이렇게 궂어서는 열 걸음도 못 걸어요.>

   노모는 손사래를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날이 개면, 꼭 모시고 갈게요. 아셨죠?>

   <안 된다. 안 돼.>

   <어머니, 약속할게요. 네?>

   김 씨가 한참을 달래야 노모는 산행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창가에 앉아 하늘만 바라봤다. 날이 개길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 씨는 그 정도에서 타협하고 물러났다.

   <당신도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김 씨의 부인이었다.

   <알잖아…….>

   김 씨의 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모르는 산행의 동기를, 김 씨의 부인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산행을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산행을 고집하는 시어머니와 동조하는 남편은 보기 좋지 않았다. 서로가 삶은 괴롭게 만드는 것 같았다.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고통은 산행의 고통보다 큰 것임을 알기에, 현명한 아내로서 그녀는 다시 침묵했다. 김 씨는 그런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아내는 볼일이 있다고 하며 나갔다. 사실 볼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김 씨의 모습이 보기 안쓰럽고 싫어 아내는 핑계를 댄 것 일거라, 김 씨는 그렇게 추측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마당이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장맛비는 거셌고, 담배연기는 금방 사그라졌다.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는 장맛비를 견디지 못하고 이파리를 잔뜩 뿌려놓았다. 여느 때보다 빗줄기가 거셌다. 김 씨는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보며 담배만 태웠다. 바람이 시렸다.

   <날이 차구나.>

   여름이지만 비는 거셌고, 노쇠한 몸에 바람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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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눈을 뜬 것은 김 씨 뿐이 아니었다. 황급히 일어난 김 씨는 더듬거리며 불을 켰고, 마찬가지로 놀란 눈의 아내를 보았다. 내외가 있는 방은 창문이 아주 작았고, 따라서 빗소리는 아주 옅게 방안에 퍼져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들린 소리는 방을 진동시킬 정도였다. 김 씨는 방안의 무언가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쪼개지는 소리였다. 콰지직.

   덜 깬 잠이 황급히 달아났다. 김 씨는 방문을 열어 툇마루에 섰다. 그리고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마당의 큰 나무가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장맛비는 여전히 거셌고, 덕분에 불길은 잡혀가는 중이었다. 번개가 마당의 나무를 쪼개놓은 모양이었다. 우람하던 나무는 두 거대한 손에 양쪽으로 찢겨진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온통 까만 숯 칠을 한 모습이었다. 쪼개진 나무와 잔뜩 흐트러진 나뭇잎이 괴악한 조각상 같았다.

   처음 본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차분해졌다. 사그라지는 불길을 보며, 김 씨는 사태가 이걸로 끝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 사실이 있었다. 피뢰침이 있는 집에 번개 맞는 나무는 있을 수 없다. 그 사실에 다시 잠이 달아났다. 귀농을 결심하면서 집을 손보긴 했지만, 피뢰침은 신경 쓰지 못 했다. 도시에서 피뢰침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문제 중 하나였으니. 집에 벼락이 치지 않을까 걱정 때문에 김 씨는 쉬이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였어요?>

   김 씨의 아내는 툇마루로 나오다 번개 맞은 나무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원 세상에.>

   김 씨는 아내와 함께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아내를 들여보냈다. 잠을 설치는 사람은 자기만으로 충분하단 생각에 고민거리를 나누진 않았다. 그리고 그 걱정이 단순히 피뢰침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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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씨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임이 밝혀졌다. 김 씨의 노모는 불탄 나무에 더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산을 집어든 채로 나선 것이다. 장맛비가 약해졌다곤 해도 노인이 불편한 몸으로 나서긴 힘든 날씨였다. 급작스러운 행동에 미처 대응할 수도 없었다. 성치 않은 몸에 균형까지 잡기 힘들어 노모는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김 씨 부인은 소리를 지르며 부축하러 뛰어나갔고, 김 씨는 착잡한 기분으로 어머니에게 다가섰다.

   <가야 한다. 아가, 가야 해.>

   <어머니 왜 이러세요. 괜찮다니까요. 이러시다 정말 큰일 나요.>

   <가야 한다니!>

   김 씨는 우산을 들고 어머니께 갔지만, 이미 비에 푹 젖은 모습이었다.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 모습을 더욱 추레하게 만들었다. 노모는 미끄러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목 놓아 소리쳤다. 보기 안쓰러웠다.

   <어머니!!>

   김 씨는 참았던 감정을 쏟아내듯 소리쳤다. 그 동안 묵묵히 산행을 도왔지만 가슴 속의 응어리는 풀어지지 않았다. 장마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노모의 태도는 그런 응어리를 돌덩이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노모는 애처로운 눈으로 늙은 아들을 바라봤다.

   <얘야. 가야한다. 가야 해.>

   애처로운 모습에 고개를 돌리려던 김 씨는 불탄 나무를 정면으로 보게 되었다. 장맛비는 약해졌지만 멈추진 않았다. 아랫입술을 깨물던 김 씨는 우산을 아내에게 쥐어주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비와 수건 등을 챙겨든 채 나왔다.

   <여보, 당신…….>

   <금방 다녀올게. 걱정 마.>

   김 씨의 눈빛은 단호했고, 아내는 거부감을 드러내려던 입을 결국 다물었다. 김 씨는 노모의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두꺼운 옷과 우비를 입혔다. 노모는 어린 아이처럼 그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모의 두 눈은 정신없이 뒷산을 바라보았다.

   여건은 산행이 아니라 일반적인 산보도 힘들었다. 노모는 왼 다리를 바닥에 내딛지도 못 했고, 김 씨는 노모의 늙은 몸을 똑바로 하는 것과 우산을 바로 잡는 일,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길을 찾는 것 까지 동시에 해야 했다. 평소에도 오래 걸리는 산행은 더 오래 걸렸다. 빗물로 인해 생긴 진흙은 발을 미끄러지게 했다.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다. 갑자기 드러난 나무뿌리가 발을 잡아채는 일도 있었다. 단념할 법도 하건만, 노모는 뭐에 홀린 듯이 산행을 감행했고, 김 씨도 말없이 노모를 부축했다.

   노모에게는 강렬한 동기가 있었다. 그리고 김 씨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 동기를 납득하려 했다. 비구름과 나무 덕분에 시야는 한정 되었고, 낮이지만 밤길을 걷는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손전등도 시야를 완전히 밝히지 못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끔찍한 등산은 아주 작은 공터에 도착해서야 끝났다.

   기묘한 공간이었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 사이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은 공터가 있었다. 하지만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 공터 한 가운데 나이 어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줄기도 가지도 다른 나무에 비해 턱없이 어린 나무였지만, 관리를 받은 것처럼 잘 자라고 있었다. 나무줄기도 잎도 멀쩡했다. 노모는 그 나무를 보자마자 맥이 풀렸는지 김 씨에게 몸을 기댔다.

   <아이고……. 아가….>

   노모는 비적거리며 나무에 다가갔다. 그리고 나무 앞에 잔은 반석에 앉았다. 그리고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뜻 모를 웅얼거림이 들렸다. 김 씨는 착잡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산행의 이유였던 나무는 멀쩡했다. 내심 나무가 사라지길 바란 것 아닌가. 김 씨는 그런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납득했다.

   노모는 마치 아이를 다루듯이 나무를 쓰다듬었다.

   <아가……. 우리 아가….>

   김 씨는 그 모습에 욕지기와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날 때부터 병약했던 형 덕분에 김 씨의 유년기는 어미의 사랑이 부족한 채였다. 모든 관심은 형에게 향했고, 그건 당연한 삶이었다. 형은 외로운 동생의 마음을 이해했다. 형 자신도 외로움을 많이 탔기에. 덕분에 형제애는 돈독했다.

   병든 가족, 화목한 형제와 상관없이, 도시의 큰 병원은 형의 병을 치유하지 못 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이미 말라버린 송장처럼 된 형은 부탁을 했다.

   <저 죽거든요, 저 묻힌 자리 위에 나무 한 그루만 심어주세요. 그리고 생각 날 때마다 가끔씩 찾아와주세요.>

   외로움이 뭔지 아는 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어떤 의미가 될지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는 마음의 상처를 견디지 못 했다. 목장(木葬)을 한 뒤로 김 씨의 어머니는 주말마다 시골로 내려갔다. 주말이었던 여정은 매일로 바뀌었고, 결국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됐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김 씨는 늙은 노모의 곁에 섰다.

   ‘형님, 생각날 때마다, 외로운 자신을 찾아와 달라구요?’

   김 씨는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삼켰다. 늙은 동생의 얼굴과 대비되는, 유년기 앳된 시절의 형의 얼굴이 물안개처럼 퍼지다 사그라졌다. 갑자기 거세진 빗소리가 노모의 울음소리를 묻었다. 꼼짝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새로 자란 늙은 나무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