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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지의 학생들은 전부 기숙사에 살고 있다. 1학년과 2 학년, 3학년과 4 학년이 둘씩 서로 짝을 이루어 방을 같이 사용하게 된다. 다이지의 2학년에게는 좀 특별한 의무가 있는데 바로 신입생으로 들어오는 자기 기숙사 후배에게 음어를 가르치고 다이지 내의 길을 외울 수 있게끔 같이 본관 안을 다니면서 1년 동안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도를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서 선배들에게 2학년생들의 평판도 정해지며 얼마나 훌륭한 학생인지도 평가된다. 가령 1학년 학생이 다이지 내의 연금술 대회나 기평회(다이지에서 한달에 한번 있는 행사로 지정된 학설이나 이슈에 대해서 서로 비평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등에서 우수한 실적을 거둘 경우 학생 본인 보다는 그를 지도한 기숙사 선배가 더 유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1학년 학생과 그의 기숙사 선배는 매우 돈독한 관계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 선배! 오늘도 늦으셨네? ”
휘미가 방 안에 들어서자 그의 기숙사후배인 보색이 2층침대에서 훌쩍 뛰어내려 그를 맞이했다. 휘미는 그에게 묵월기 신문을 던져주고는 옷부터 갈아입었다. 보색은 신문을 대충 훑어보더니 관심을 끄는게 없는지 신문을 내팽겨치고는 휘미의 의자에 매달려서 말했다.
“ 오늘도 체루디 있었어요?. ”
휘미는 풋 하고 웃고는 방구석에 있는 낡은 거울을 얼굴에 갖다 대고는 말했다.
“ 아직도 술집에서 공부하고 있어. ”
보색은 낄낄대더니 물었다.
“ 걔는 맨날 무슨 술집에서 공부를 한대요? 그림자는 다 수인 한데요?(음어는 다 알았데요?) ”
휘미는 정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응? 뭐냐 그게? ”
그러자 보색이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말했다.
“ 다이지 학생 규준 제3호 보안 해제하고요. ”
휘미는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
“ 음어? 너도 다 모르잖아. ”
보색은 안색까지 변하더니 펄쩍 뛰었다.
“ 당연히 수인(‘알았다’의 음어) 했죠! 저번에 선배한테 시험 봤을 때 다 통과했잖아요. ”
휘미는 기억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다가 갑자기 말했다.
“ 흰색 색깔이 어떻게 되는데?(내일 날짜가 어떻게 되는데?) ”
“ 예? ”
보색은 당황한 기색이더니 박수를 한번 치고 자신 있게 말했다.
“ 아, 내일 날짜? 묵월기의 첫째날인 26일. ”

다이지에서는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퍼트릴 수 있는 연금술 지식을 다른 나라 첩자나 불필요한자가 엿듣지 못하게 하여 비법에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금술 단어를 모두 음어로 바꾸어 말하도록 가르친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이지 학생들 스스로 음어를 더 개발해서 이제는 대부분의 일상생활 언어도 음어로 표현 할 만큼 음어의 수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오늘을 ‘청색’ 내일 을 ‘흰색’ 으로 표현하고 어제를 ‘검은색’ 으로 사용하는 음어 같은 경우는 전혀 연금술하고는 상관이 없다. 학교 측에서는 고학년들이 신입생들에게 연금술 관련 외의 일상 음어를 강제로 외우도록 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2학년들은 그들의 선배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음어교육을 꾸준히 행하고 있다.
휘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짜를 세더니 말했다.
“ 청단월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
보색이 놀라며 물었다.
“ 이번 31일이 청단월이에요? ”
“ 그렇다더라. 그요네 산에 신기한 눈엽들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
“ 이번에 그럼 그요네 산에 또 올라가겠네요? 풀 채집하러? ”
보색은 탄성을 지르고는 방안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휘미가 그를 말리기 위해 발을 걸려고 다리를 뻗었지만 날랜 녀석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보색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도 작은 편이었지만 팔다리가 길고 귀가 밝아 마치 책에 그려진 윔의 토착민과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윔인들 또한 사핀이나, 뮤케날, 롯사르 인들과 평균 신장에서 절대 뒤지지 않지만 말이다. 휘미는 보색을 잡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 글쌔 이번에 1학년은 빠질수도 있데. 저번에 감전풀을 건드리는 바람에 뻣뻣하게 굳어서 의학과에 실려 갔던 녀석이 생기는 바람에. ”
휘미의 예상대로 보색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었다.


묵월

『26～30일. 새카맣거나 빛나지 않는달. 매우 어두우며 밤이 가장 춥고 길다. 묵월이 뜬 밤에는 쉽게 졸립지 않으며 밤이 깊어갈 수록 정신적인 능력이 오른다. 평소보다 더 깊은 집중이 가능하며 기억력과 암기력이 대폭 올라가 학자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달이다. 』


다음날 새벽에 휘미는 눈을 떴다.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았지만 어젯밤 알코올의 눅눅한 느낌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휘미는 잠시 누운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불을 팽개치고 일어나 씻으러 밖으로 나갔다. 날은 바래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세면장에는 아무도 나와있지 않았다. 멀리 그요네 산에서 내려온 듯한 안개만이 군데군데 초연처럼 학교를 감싸고 있었다. 휘미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손으로 얼굴과 머리에 물을 몇번 끼얹었다. 그리고는 물 안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찢어진 긴 눈매에 대상의 속을 꿰뚫는 듯한 예리한 눈, 여러 갈래로 삐친듯 아래로 내려올수록 가늘어지는 짙은갈색 머리, 전체적으로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휘미는 말로 상대를 제압시키고 설득시키는데 소질이 있었다. 다이지에 와서도 기평회 때 몇 번 크게 활약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가 항상 그런식으로 날카로운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별로 자극을 받을만한게 없기 때문일까.
실로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 모두 윔 옆의 관문도시 캅보의 은행에서 일을 하셨기에 어렸을 적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빼고는 말이다. 본래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인 윔인 인데다가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서인지 살아가면서 크게 힘든 적도 없었고 크게 재밌던 적도 없었다. 이점은 휘미가 다행으로 생각하는 점이면서도 약간 못마땅한 점이기도 했다. ‘좀더 큰 경험을 하고 큰일을 하고 나면 더 멋지게 될 수 있는데.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것이 있는가’ 다이지에 들어와서도 그의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갈수록 그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캅보나 위머 외에도 세상은 무한히 넓었다. 류히조 교수가 해주는 역사 이야기 속의 여러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도 싶었다. 아직 미지에 둘러싸인 광활한 윔의 동부지역으로 모험도 가고 싶었고, 가나씨 코퍼레이션과 같은 거대 공업회사로 가서 직접 연금술이 물건을 생산하는데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휘미는 머리에 물을 끼얹은 채로 잠시동안 이런 생각을 했고 이내 짧게 한숨을 쉰 뒤 물을 대충 털어버리고는 다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메지는 승강기가 본관 탑 꼭대기에 도착하자마자 헐레벌떡 낭하를 뛰어갔다. 연금술 강의실 앞 기둥에 기대있던 휘미가 달려오는 메지를 향해 소리쳤다.
“ 메지! 늦었잖아. ”
“ 이...! ”
메지는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젓고는 휘미의 옷자락을 낚아채어 그를 연금술 강의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오늘은 실험수업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메지의 얼굴은 퉁퉁 부은데다가 피로에 찌들어 있었고 그의 긴 검은 머리는 정돈이 안 되어 있었다. 가까스로 숨을 고른 메지가 말했다.
“ 나 어제 죽는 줄 알아, 아니 죽었었다. ”
“ 왜? 술? ”
“ 또 체루디 녀석의 마수에 걸려버렸어! ”
휘미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 무슨얘기야? ”
메지는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는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져 버렸다.
“ 모두 기좌하십시오. 연금술과의 도나 멜기 교수께서 들어오십니다. ”
그때 교수가 들어왔고 메지도 튕겨지듯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메지는 힘들다는 듯이 휘미에게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했다.
“ 너희 둘이 나가자마자 체루디 녀석이 고민이 있다면서 큰소리로 술을 자꾸 시키는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막 울고...집어던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힘은 또 얼마나 센지 할퀴고 물고… 말리지도 못하겠더라고. 게다가 나중에는 ”
메지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휘미는 기다리다가 답답해서 물었다.
“ 나중에 어떻게 됐는데? ”
“ 체루디가, 무쇼냐쇼즈한테 가더니 따지듯이 조용히좀 하라고 소리쳤어! 자기키보다 2배는 큰 인간들한테. ”
휘미는 몸이 휘청 하는것을 느꼈다. 생긴걸로 봐서는 축구경기에서 지고온 나스치 건드린 것 보다 더 위험할 게 분명했는데 칼까지 차고 있지 않았던가. 휘미는 혼자서 끔찍한 상상이 자꾸 나는것을 물리치려고 노력했다. 그때 메지가 말했다.
“ 그런데 체루디가 그렇게 말하니까 제일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허리를 숙여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더니 체루디한테 몇번이나 더 정중히 인사하고는 그다음부터 쥐 죽은 듯이 있더라고. ”
“ 뭐? ”
휘미가 너무 크게 말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강의실의 시선이 모두 휘미에게 집중되었다. 멜기 교수까지도 휘미를 향해 물었다.
“ 휘미학생. 그림에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
휘미는 그제서야 교수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았다. 교수는 청단월에 피어날 만한 여러 가지 풀들을 나열해서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휘미는 잠깐 그림을 보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말하기 시작했다.
“ 아. 저기 그려져 있는 새가름풀의 위치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풀들을 좌우로 분류한 기준이 쓰임의 종류가 생명체에게 득이 되는가 해가되는가의 차이로 보입니다만. 하지만 저쪽 위의 새가름풀 같은 경우 인간이 복용을 할 경우 중독이 되버리는 독성풀이지만 소량을 가공할 경우 복용약의 내량(약물의 한계량을 초과하여 사용하였을 경우, 중독(中毒)은 되지만 죽음은 면할 수 있는 최대의 한계량) 을 늘려서 다량을 섭취할 수 있게 함으로서 쉬운 흡수와 빠른 효과를 보게 하므로 회복제에도 쓰입니다. 그래서 새가름 풀을 무조건 해초(害草)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교수는 팔짱을 끼고 잠시 그림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가름풀의 위치를 양쪽 의 중앙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 아주 자세한 것을 잘 짚어냈네요. 사실, 그렇게 깊게까지 여러분이 생각할지 몰랐거든요.”
교수의 칭찬에 휘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앉은 휘미는 한숨을 크게 쉬었고 메지는 입술을 말고선 소리 없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 아무튼, 체루디 그 자식 어제 자기 방에 들어가긴 한 것 같던데 오늘 시험은 제대로 봤을까 몰라. ”
휘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는 조그만 여자애가 당당하게 손을 허리에 얹고 커다란 남자들에게 호통치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웃음이 나와서 견딜수가 없었다. 메지는 휘미가 웃는것을 보더니 투덜거렸다.
“ 다음부터는 그냥 그 녀석 혼자 어딜 가던 아예 상관 하지말까? ”
휘미는 혀를 차며 말했다.
“ 우리를 죽일거야. ”
메지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는 계속 푸념을 터트렸다.
“ 휴. 도대체 그녀석은 왜 우리를 따라다녀서 귀찮게 하는거야! ”
“ 글쌔...기숙사 선배가 있을 텐데 별로 안 친한가? ”
“ 몰라. 만날 엉뚱한 곳에 가있으면서 자기 빼고 우리끼리 뭘 하려고 하면 목청껏 화를 내고 울어버린다니까 ”
휘미와 메지는 연금술 시간이 끝날 때 까지 체루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놔두자는 것이었다.

오후 수업 중에는 지리학 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간은 세계사 시간과 더불어 유일하게 네 명이 같이 듣는 수업이었다. 지리학은 휘미나 나스치가 속한 인문학파나 메지와 체루디가 속한 공학파, 또는 미술과나 의학과 모두에 속하지 않는 자유 수업들중 하나였다. 다이지 학생들은 이런 수업중에 취향에 맞는 것 몇 개를 자유롭게 골라 들을 수 있는데 이 네명이 선택한 것이 바로 지리학 수업이었다. 휘미와 메지가 지리학 강의실에 들어서자 체루디와 나스치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 오빠들 안녕? ”
휘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체루디의 인사를 받았다. 나스치는 이들이 앉아마자 신나서 어제 산 공의 성능에 대해서 자랑을 하기 시작했지만 체루디가 지루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자 이야기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 그건 그렇고. 나스치. 어제 체루디가 일 낸거 알아? ”

나스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체루디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양쪽 볼을 부풀린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덩달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분명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메지가 한숨을 섞어가며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해주자 나스치는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한참뒤에 나스치가 약간 진지한 투로 말했다.
“ 근데, 그 무쇼나...녀석들 생각보다 점잖은데? ”
“ 그래. 나스치 오빠같았으면 분명 얼굴이 벌개져서 술잔부터 마구 휘둘렀겠지. 아니 집어던졌을지도. ”
“너도 던졌었어. ”
(나한테)를 생략한 메지의 말이었다. 휘미가 턱을 괴며 말했다.
“ 근데 아마 가식일 거야. 주변 소문도 있고 하니까. 안그래 나스치?”
나스치는 이미 흥분해서 제대로 듣지도 않고서는 무쇼냐쇼즈에 대한 험담인것 같으면 무조건 백번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 모두 기좌하십시오. 지리학과 부를빙 교수께서 들어오십니다. ”
중년의 인상 좋게 생긴 남자 교수가 들어오더니 두꺼운 책 두 권을 전나무로 된 교전위에 놓았다. 잠시뒤 그의 뒤로 세계도와 지리모형도를 어깨에 둘러맨 조교들이 들어 와서 교수 자리 옆 벽에 설치했다.
“ 나스치 오빠 또 잘 거야? ”
체루디가 나스치의 팔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나스치는 교수가 들어오면서 부터 이미 길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스치는 지리학에 아무런 흥미도 갖지 못했다. 휘미는 세계지도를 보기만 해도 막연한 동경 때문에 설레였고 지방에서 살아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던 메지는 당연히 관심이 있었으며 체루디는 뭐든지 잘 배웠다. 물론 부를빙 교수의 수업이 재미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스치처럼 질색할 정도도 아니었다.

“ 갑자기 생긴 습곡으로 봉우리가 갈라져 계곡으로 되었고 계곡은 서로 떨어져 다른 산맥에 이어지게 되었지. "
" 대표적으로 바로 이 스니게치 가 있다. 이 거대한 지각 변동의 현장은 오늘 강의에 가장 제격인 장소이지. "

‘ 음. 스니게치? 어디서 많이 들어본거 같지 않아? ’
메지가 묻자 기억력이라면 한 달 전 교수님 넥타이 색까지 맞출 정도로 뛰어난 휘미가 당장 신화속 명칭을 기억해 내었다.
“ 천둥과 구름의 신 스티리쏘가 있는곳?. “
교수는 세계지도에 스니게치 라고 큼직하게 쓰여있는 글자 위로 보이는 산맥들에 지시봉을 대었다.

" 이곳에는 수많은 권곡과 U자곡이 나타나고 마치 바늘처럼 호른들이 널리 퍼져 있다. 가끔 크레바스 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래에는 언 들판인 동야(凍野,툰드라)가 퍼져있으며 산맥의 북쪽 끝자락 너머로는 드럼린(drumlin) 과 에스커(esker) 들이 쭉 펼쳐진 사막, 눈보라 사막이 산맥에 이어 곧바로 나타난다. "

강의실은 펜이 움직이는 소리로 가득찼다. 여러 모르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교수는 잠시 여유를 두기위해 천천히 돌아다니다가 다시 교전 앞으로 왔다. 그리고 그는 세계지도 옆의 여러 모형도중에 하나를 집어들었다.
" 이게 빙하의 침전물로 형성된 타원형 언덕인 드럼린이다. 이 모형은 단기간에 형성된 종류의 드럼린을 나타내고 있다. 드럼린은 지면이 평탄하지 않고 종종 굳지 않은 땅들이 가스를 뚫고 나오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장관을 나타낸다는데 나도 실제로는 안봐서 모르겠다. 눈보라 사막은 여행하기 별로 좋은곳이 아니니까. 졸고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곳을 구경시켜줄 생각도 있다. "

교수의 딱딱한 유머에 여학생 몇 명만이 웃음을 흘렸다. 휘미는 여기까지만 듣고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졌다. 그는 상상속에서 날고 있었고 밑으로는 거대한 스니게치 산맥이 눈보라에 휩싸여 뿌옇게 되어있었다. 내려가 보려고 했으나 마지막 등마루 너머로 눈보라 사막이 보여서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백지보다도 더 새하얗게 펼쳐진 눈보라 사막은 웅장하면서도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투명한 눈빛에 반사된 태양빛은 황금빛으로 물들며 반짝거렸고 휘미는 끝도없는 그곳을 가로지르다가 현기증이 나서 잠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쥬디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랬다. 체루디 모르게 세 남학생이 굳이 지리학을 듣기위해 안간힘을 썼던 이유는 쥬디하 때문이었다. 물론 강의 시간대가 적당하고 교수님이 마음에 든다는 등의 핑계가 있었지만.
휘미는 멍하니 쥬디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옆의 학생과 이야기 할 때마다 조각같은 옆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녀가 머리를 쓸어 올리자 휘미는 향기가 자신이 있는 곳까지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너무 완벽했다.
“ 뭐해? 메지오빠 따라해? ”
휘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코앞에 비스듬한 각도로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체루디는 휘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양손바닥으로 휘미의 볼을 눌러버리려고 했다.
“ 하하하! 수업 끝났어! 얼른가자. ”
그때 나스치가 휘미의 의자를 뒤에서 빼버리는 바람에 그는 휘청거리며 일어났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본관 바깥으로 나온 일행은 식사를 하기위해 별관 건물로 향했다.
“ 뭐지? 벌써 하루가 다 가버렸나? ”
메지는 한쪽눈을 찡그려 어둑어둑 해진 하늘을 보고는 다시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 아 오늘부터 묵월기였구나. ”
“ 잠은 다잤네! ”
하늘에는 아직 낮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검은색의 달이 빛나고 있었다. 묵월기는 청월기 다음에 오는 달의 주기로 한 달 중에 밤이 가장 긴 때다.

“ 아나들 녀석이 대단하긴 해. ”
식당에서 밥이 나올 때까지 휑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던 나스치가 꺼낸 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 다이지에서 멍청한 놈들을 매수하고, 돈으로 대표 자리도 사고, 여자애들한테는 닥치는대로 선물이나 비싼 음식을 사주고. ”
체루디는 나스치의 마지막 말에 눈이 살짝 돌아갔지만 휘미와 메지가 소화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생선뼈를 씹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휘미는 굳은 채로 입을 열었다.
“ 그래. 결국 다 돈이잖아. ”
“ 아버지가 집행정 서기관이라며. 어? 그런데 그거랑 아나들이 돈이 많은 거랑은 상관이 있나? ”
메지의 질문에 체루디가 대답했다.
“ 서기관정도가 되면 봉급 이외에도 여러 가지 뇌물을 받아먹기도 할거야. ”
그러자 휘미가 덧붙였다.
“ 그리고 몰래 뒷거래를 통해 다른 곳에 물건을 팔아먹고 있을 수도 있고 환각제 재배같은 불법사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데, 지위가 높으면 통제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돈이 생기기 시작하지. 반대로 돈만 많이 가지고 있어도 통제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지위도 높아지는거야. 지위로 돈을 사고, 돈으로 지위를 사기도 하지. ”
메지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 돈을 많이 벌면 좋긴 하겠다. 더 비싼 시계도 살 수 있겠지? ”
“ 에이, 시계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니깐.. ”
휘미는 고개를 저으며 돈에 대해 더 이야기 하려고 했으나 나스치랑 체루디가 들뜬 목소리로 떠드는 터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 물소가죽으로 된 새 공도 살 수 있겠다!!! ”
“  정말! ‘사카다나 크런쉬’ 와인도 내킬 때마다 먹을 수 있을 거야. ”

윔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대부분이 돈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직접 돈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집행부 에서도 매사를 경험으로 결정할 뿐이지 체계적인 정리는 해 놓지 않았다. 최고의 학문기관이라는 다이지에도 상업이나 경제와 관련된 일은 천시하였기 때문에 독립된 과가 없었다. 그것은 다이지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적어도 휘미의 눈에는 돈이 단순한 교환수단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아직 명확하게 설명을 해서 남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돈이 가진 힘은 분명 대단하다. 가나씨 코퍼레이션 같은 거대자본기업이 대륙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가깝게 아나들의 행위만 봐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휘미는 이렇게 까지 생각이 이르자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참을 수 없어서 돈과 관련된 책이 있다면 뭐든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행이 소란한 중간에 휘미는 자기도 모르게 들떠 말했다.
“ 얘들아 대도서관에 가볼까! ”
신나게 잡담하고 있던 학생들은 휘미의 한마디에 즉시 조용해졌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2:2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