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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이라고는 하나 그 유명한 SKY은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 권내는 더욱 아니다. 지방에서 이름난 대학은 더더욱 아니다. ‘어느 대학 다니세요?’ 라는 질문에 대학 이름을 대기보단 위치와 특성을 설명하는 편이 더 빠른 대학. 명수는 그런 대학의 5학년이었다. 남들이 졸업을 하고 사회를 준비하거나 사회생활을 할 시기, 혹은 끊임없는 고시 실패로 취업이냐 재도전을 고민하게 만드는 27살을 일 년 남긴 문턱. 그는 아직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5학년 대학생이다.
처음 목표는 명문대, 후년에는 서울 권내. 하지만 세 번째 수능 시험을 치른 후에 선택한 대학은 지금의 대학이었다. 명수는 이곳은 내가 속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첫 해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친구를 제대로 만들지 못 했고, 있던 친구마저 떠나보냈다. 중고생부터 알던 친구의 연락에도 ‘바빠.’라던가 ‘곤란해.’라며 회피했다. 핑계였다.
물론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반갑게 술을 마시러 갔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자격지심으로 꼬질꼬질해진 얼굴로 환한 미소의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다. 번듯한 대학을 가거나 그렇지 못 해도 즐겁고 힘차게 살아가는 친구가 보기 싫었다. 그건 내 악취를 억지로 참아주는 누군가에게 비굴하게 호의를 구하는 기분이었다. 네 번째 소주병을 비우자, 명수는 자신이 거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씻지 못해 거뭇하고 냄새나는 상태로 말끔한 친구를 올려다보는 거지. 명수는 곧 친구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
내가 거지가 된 이유는 하나다. 수능을 망치고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다. 패배자가 모인 이 공간 속에서 앞으로 4년이나 음식물 쓰레기처럼 악취를 풍기며 썩어야 한다. 명수가 자신을 파괴하는 나날은 이렇게 시작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20대 초반. 명수는 자신을 부정하고, 환경을 탓하며 허황되게 보냈다.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빈둥거렸다. 어머니께는 ‘편입’이란 가능성이 있다며 공부를 더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패배감에 사로잡힌 전사는 바닥을 기며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검을 쥐지 못 한다. 명수는 펜 대신 마우스를 쥐고 인터넷에서 소일거리 하며 보냈다. 인터넷에서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편입 준비는 언제까지 할 생각이니?]
명수의 어머니가 참지 못 하고 한 소리를 했다. 남편을 일찍 잃고 하나 남은 아들 뒷바라지를 한 여인은 손에 지문이 다 닳도록 일을 했다. 때문에 원래 나이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였다. 명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하고 있어.]
[너도 벌써 스물 셋이야.]
[그래서?]
명수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녁에 일을 하러 다시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새벽 다섯 시에 식당에 나가 주방 일을 12시간 일했다. 그리고 오후 7시에는 인근 주점에서 주방 일을 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아버지의 품도 못 느끼고 자란 아이라 어머니는 명수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래서 더 다그칠 수 없었다.
[저녁은 해 놨다. 국은 식기 전에 데워먹고…….]
명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너무 낡아서 자꾸 멈추는 컴퓨터 본체를 발로 꽝 찼다. 명수의 어머니도 매일 반복되는 이 모습에 진저리를 내며 방문을 닫았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명수는 바닥에 벌렁 누웠다. 편입 준비는 당연히 안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학도 영어도 이제 모두 잊어버렸다. 수능 공부 외에 다른 공부는 해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분야나 다른 형식의 공부는 겁이 났다.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추가로 술집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빠듯한 살림이었다. 명수의 아버지가 남긴 빚은 끊임없이 ‘아버지’란 존재를 가족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명수는 그 존재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핑계 대야 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명수는 자취를 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겠다. 교통비도 줄고 공부할 시간이 늘어난다. 핑계인 것을 눈치 챘는지 알 수 없지만, 명수의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했다. 자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더 잠을 줄일 지 명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자신을 망친 대가라고 생각했다. 이제 명수는 하나 밖에 없는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왜요? 나 바빠.]
[아들.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뭐가?]
오랜만에 온 어머니의 전화에 명수는 짜증부터 났다. 목소리가 사포를 맞대고 비비는 것처럼 거북했다. 어머니와 통화하던 명수는 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거친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하지만 뭔가 일이 나긴 했다. 안부를 묻는 전화 이외의 전화는 하지 않았으므로. 명수는 학교에 전화해 보고 나서야 휴학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집으로 학교 측에서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명수는 확인 전화를 했다.
[벌써 휴학을 많이 쓰셨네요. 반 학기 남았습니다.]
[그런가요?]
[아……. 군 휴학은 남았네요.]
휴학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명수는 매일 게임을 하고, 술을 마셨다. 하지만 휴학 제한은 명수를 다시 학교로 불러냈다. 자퇴를 할까 생각했지만, 자퇴를 하면 꼼짝없이 사회로 나가야 했다. 명수는 그것이 너무 두려웠다.
과 후배와 동기들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때문에 명수는 혼자 강의를 듣고 혼자 시험을 쳤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공부하는 법도 잊었지만, 공부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응용처리과. 엑셀 같은 소프트웨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는 학과였다. 말 그대로 ‘정보처리 기능사’ 같은 자격증을 취득하게 해주는 전문 학과였다.
‘취업률 99.8%의 대한민국 선진 학과.’
요란한 선전 문구와 달리 실제 취업률은 형편없이 낮았다. 전문직은 전무하고,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다 합쳐도 99.8%는 안 되었다. 술집에 나가는 삐끼도 통계에 포함한다는 소문이 농담처럼 돌았다.
학점은 자격증 취득과 연관 있었다. 명수는 당연하게도 아무 자격증도 따지 못 했다. 덕분에 4학년 졸업까지 명수의 컴퓨터 능력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신기하지만, 전문가가 보기엔 형편없는 수준으로 남았다. 인터넷에 자신의 결과물을 자랑하듯 올리며 자위했지만, 명수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재능이 없음을. 어쩌면 노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수는 노력할 의지가 없었다. 잦은 휴학과 졸업을 위해 5학년을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상황 속에서, 명수는 인생이란 끔찍하단 생각만 하며 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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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 남짓한 방에는 오래된 컴퓨터가 힘겹게 숨을 토하고 있었다. 난방은 물론이고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아, 방은 항상 냉골이었다. 그런데도 가끔 나타나는 개미와 벌레가 있었다. 옆방은 난방이 되는데 자신의 방은 난방이 안 된다는 의미였다.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이다. 하지만 명수는 수리기사를 부르지 않았다. 귀찮았다. 만사가 귀찮았다.
집에서 부쳐주는 돈은 월세 내고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 자신은 식당에서 남은 밥으로 연명하면서 어머니가 보냈을 돈이었다. 하지만 학교 근처 하숙의 월세 값으로는 넉넉지 않았다. 남들은 알바나 과외로 충당할 돈을 명수는 그냥 참았다. 수업도 가지 않았다. 학교 근처가 아닌 하숙집으로 옮길까 생각도 했다. 학교에서 먼 하숙집은 월세가 더 저렴했다. 하지만 명수는 그러지 않았다. 가끔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외출할 때면, 편의점에 들렀다.
대형 유통사의 편의점은 아니었다. 이름도 ‘25시 마트’로 어느 시골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 글자의 간판이었다. 돋음 새김으로 ‘25시’가 강조되어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점포의 전화가 적혀있었다. 배달 가능이라고 썼지만, 과연 배달을 시킬까 싶을 정도로 작은 편의점이었다. 5평 되는 공간에는 그래도 알차게 생활필수품과 기호품을 팔았다. 명수는 가끔 라면을 사러 편의점에 왔기 때문에 배달은 시켜본 적이 없었다. 그 날도 라면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때 발견한 것이다. 추리닝 차림으로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들어선 편의점에는 평소와 다른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난방 이외의 온기는 계산대 근처에서 꽃향기처럼 퍼졌다. 편의점 주인은 아랫배가 남산만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편의점 주인 대신 알바가 서있었다. 뒤로 가지런히 모은 머리는 고무줄로 맵시 있게 묶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낀 여자였다. 나이는 스무 살 초반에서 많아야 중반으로 보였고,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마가 넓고 눈이 커서 더더욱 어려 보였다. 하지만 눈은 깊고 차분해서 신뢰감을 줬다. 명수는 작게 헉 소리를 냈지만 알바는 듣지 못 한 것 같았다. 알바는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명수는 재빨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명수는 진열대 너머로 알바를 관찰했다.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명수는 순간 상투적인 표현이라 생각했지만, 이토록 적합한 표현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으로 작은 책을 들고, 왼손은 작게 말아 입술에 댄 상태였다. 눈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빨간 스웨터와 남청색 청바지의 평범한 스타일인데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게 했다. 편의점 유니폼으로 보이는 노란색 앞치마가 유치할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따금 페이지를 넘길 때만 움직였다. 명수는 얼마나 그녀를 관찰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 그녀를 관찰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명수는 연애를 해 본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 여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명수는 여자가 무서웠다.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초등학교 때,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려다가 여자를 울린 뒤로 더욱 그랬다. 짝사랑하는 아이의 이름은 성주였다. 그가 관심을 표현하던 방법은 어느 사내아이와 똑같았다. 괴롭히고 놀렸다. 짝사랑 하던 여자아이는 말을 하는 도중에 입을 작게 오므리는 버릇이 있었다. 명수는 그 표정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 말은 반대였다.
[너 그러니까 미운 오리 같다.]
당시에 구술 동화를 조별로 발표하던 때였는데, 명수를 포함한 성주네 조는 ‘미운 오리 새끼’를 읽고 있었다. 원래는 백조처럼 예쁘다. 귀엽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성주를 상처 줬던 것이다.
[진짜! 오리 같아! 하하하!]
같은 조였던 성학이었다. 성학은 손가락으로 성주의 얼굴을 가리키며 까르르 웃었다. 성주는 금세 울상이 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명수는 해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주는 교실을 울면서 나가버렸다. 성주의 친구 몇이 교실을 같이 나갔고, 일부는 명수에게로 와 비난을 퍼부었다.
[넌 정말 못 됐어!]
[어쩜 애가 그러니?]
성주의 남은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하고 떠날 때도 명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교실을 나간 성주는 선생님이 데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수업 종이 칠 때까지 성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명수는 수업이 끝나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사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야.’ 하지만 명수는 성주에게 다시 말을 걸지 못 했다. 성주는 명수를 피했다.
조별 수업도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시 조가 짜였다. 명수의 첫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마치 싹이 나자마자 바짝 말라 죽는 광경을 목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싹은 다시 나지 않았다. 재수 학원을 다닐 때도, 대학교에 가서도 없었다. 메마른 땅과 같아서 뿌려진 씨앗 모두가 바싹 말라 죽었다. 시작할 의지가 없었고 겁이 났다.
하지만 지금 명수의 눈앞에 새로운 싹이 돋아 있었다. 한 겨울, 초라하고 어수선한 동네 편의점 구석에서 눈부시게 환한 싹이 돋았다. 명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식욕은 이미 싹 달아났다. 대신 가슴에 환한 불이 켜졌다.
어떻게 하면 좋지? 말을 걸까? 하지만 무슨 말을 해?
한동안 고민하던 명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눈앞에 그녀의 크고 맑은 눈이 있었던 것이다.
[손님?]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명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계산대로 간 것이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당혹감에 양손을 정신없이 놀리던 명수를 그녀는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세요?]
[아……. 그게. 담배요.]
[어떤 담배 말씀이신가요?]
명수는 당황하여 가판대 뒤를 봤다. 제일 처음 들어오는 담배는 초록색 형광 빛에 회색으로 T 가 돋음 새김된 것이었다.
[저기……. T요.]
[네? T요?]
알바는 눈썹을 올리며 되물었다. 명수는 더욱 당황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명수의 손끝을 바라보더니 아아 하며 웃었다.
[아아……. 타임 허밍 말씀이신가요?]
[아, 네.]
담배를 태우지 않는 명수는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녀는 웃으며 담배를 꺼냈다. 손은 가늘고 길었다. 손끝은 분홍빛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녀는 바코드를 찍고 명수에게 담배를 건넸다. 명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담배를 받아들었다.
[2300원입니다.]
[자… 잠깐만요.]
명수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냈다. 라면만 살 생각이라 돈이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 했는데 정확히 2600원이 있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돈을 건넸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그녀는 웃으며 받았다.
[감사합니다. 손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보는 사람이 덩달아 행복해질 만큼 환한 미소였다. 명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가슴께에서 느꼈다. 답례로 어색한 미소를 해주고 명수는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걸었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훈훈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명수는 담배를 쥔 손에서 꼼지락 거리는 무언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건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자신의 심장 박동, 두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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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온 명수는 한동안 허기도 잊고 멍하니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뭘까. 언제부터 알바를 하기 시작한 걸까.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녀라는 싹은 금세 머릿속을 가득 채울 만큼 큰 나무로 자랐다. 머릿속이 그녀의 싱그러운 초록빛 미소로 반짝였다.
[아!]
명수는 담배를 보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황해서 산 담배였다. 담배 표지에는 경고문이 선명한 검은 글씨로 써져있었다.
‘경고 : 건강에 해로운 담배. 일단 흡연하게 되면 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담배 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담배를 안 피는 것은 아니다. 명수는 단지 담배를 피울 기회를 못 접했다. 하지만 담배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나가던 흡연자에게 났던 담배 냄새는 악취로 느껴졌다. 자신에게 그런 악취가 나는 것을 명수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건넨 담배잖아?
한 순간 담배를 건네던 그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명수는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웃는 것이었다. 명수는 담배의 비닐을 벗기고 한 개비 꺼냈다. 하얗고 둥근 원기둥의 담배는 분필처럼 보였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리며 보던 명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부드러운 종이의 느낌이 입술을 간질였다.
[라이터가 없는데…….]
명수는 일어나 가스레인지 앞으로 걸었다. 단 두 걸음 만에 방 끝에 있는 가스레인지 앞에 도달했다. 명수가 하숙하는 방은 화장실이 딸려있고, 세탁기와 간단한 조리 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방의 절반을 차지했다. 컴퓨터와 작은 냉장고를 가져다 놓으니 방은 누울 자리만 남고 꽉 차버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좁은 곳. 명수는 아침마다 창문을 여는 버릇이 생겼다. 방은 냉골이지만 공기는 언제나 오래된 하수구의 묵은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치치치.
담배에 불을 붙이자 이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명수는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담배를 들고 입에 물었다. 코끝에서 담배연기의 열기가 느껴졌다. 속으로 셋 까지 센 뒤에 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수차례의 호된 기침, 눈물. 따끔거리는 폐의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다. 명수는 수돗가의 물을 켜고 담배를 꺼버렸다. 잔기침이 고장 난 자동차의 배기관처럼 툴툴거리며 나왔다.
[도대체 이걸 무슨 생각으로 피는 거야. 젠장.]
명수는 남은 담배를 싱크대에 던졌다. 아직도 눈가가 시큰거렸다. 세수를 할 요량으로 화장실로 들어선 명수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봤다. 빨갛게 된 눈은 담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은 전적으로 게으름과 오랜 자취 생활 때문이었다.
수염은 오래 깎지 않아 뺨에 덥수룩했고, 목에도 몇 가락 긴 수염이 보였다. 머리는 부스스한 정도를 넘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입고 있는 추리닝은 오래 입어 관절 부분이 해져 있었다. 상의 지퍼 너머로 늘어난 내의가 덜렁거렸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내 따라온 것은 좌절감이었다. 명수는 자신조차 감내하기 힘든 몰골로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의 첫 인상은 나와 정반대. 명수는 그제야 강한 허기를 느꼈다. 목으로 넘어오는 시큼한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 현실은 항상 쓴 위액 같았다. 이번에도 현실은 그를 무참히 박살냈다.
- 4 -
명수는 한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다시 숨통을 좼다. 뒤늦게 면도를 하고 씻었지만 자신을 향한 모멸감은 끈적거리는 기름 같았다. 아무리 비누칠을 해도 피부에 스며든 것 같이 남아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스무 살 중반과 후반의 문턱. 아슬아슬한 틈새를 숨죽이고 버티는 삶으로.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점멸하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언젠가 후회하게 될 무의미한 것에 목숨 걸고 집중하는 일상으로.
뉴스를 읽고 리플에 시답잖은 댓글을 달았다. 웹툰을 봤다. 웃긴 대학. 오늘의 유머. 디시인사이드. 네이트 판. 본 것을 다른 사이트에서 보고, 다시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게임을 하고 졸리면 잤다. 컴퓨터 옆에 둔 토익 책은 먼지가 앉았다. 가운데 동그랗게 도넛처럼 먼지가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컵을 내려놨다 생긴 문양이었다. 영어 공부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감도 안 잡혔다. 아니, 명수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데 점점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대답을 구하려면 마우스 커서를 오른쪽 아래로 끌어내려야 했다. 컴퓨터가 알려주는 날짜가 아니면, 시원찮은 창문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와 냉기가 시간의 흐름을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1월 13일 일요일.
27살의 문턱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군대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대학 생활을 지속하며 휴학할 수 있는 기한, 동시에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미룰 수 있는 모든 기회까지 사용했다. 이번에 영장이 나오면 꼼짝없이 군대를 가야 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군대라는 곳의 이야기만 들어도 위가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아예 일찍 갔다면 몰랐을까. 나이가 들어 나보다 한참 어린 녀석들한테 반말을 듣고 얼차려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명수는 군대 생각만 해도 심란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군대 이야기는 그의 불안감을 덜기는커녕 더 가중시켰다. 눈앞이 깜깜했다. 모니터의 빛도 눈을 가린 공포란 어둠은 밝히지 못 했다. 명수는 눈을 질끈 감고 허물어지듯이 누웠다.
2개월. 정확히는 50일 정도 남았다. 영장이 나오면 언제 입대하게 되는 걸까?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지금 군대를 다녀오면 몇 살에 제대하는 걸까? 29살. 너무나도 금방 계산이 됐다. 머리가 텅 빈 채, 아무것도 준비된 것도 없이, 그가 사회로 내던져지는 나이는 이제 이십 대의 패기가 방전된 배터리처럼 바닥만 남은 나이였다. 우웩.
명수는 바닥에 엎드려 토악질을 했다. 하지만 먹은 것이 없어 침만 주르륵 흐를 뿐이었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뭐라도 해둘 걸.
토익 자격증, 정보 기능 처리 자격증, 워드, 엑셀, 한글. 학교에서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자격증이 곧 취업의 길이라는 사탕발림에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다. 다른 학생들은 매일 밤, 종이 위에 코피를 쏟아내며 공부했다. 남들이 치열한 삶을 살 때, 명수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추위가 아닌 공포 때문에 명수는 바들바들 떨었다. 해답이 없는 공포 속에서 헤매던 명수는,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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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어떤 공간에 있었다. 설명할 길이 없는 공간이었다. 위와 아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발을 디딜 공간에는 대지가 존재했다. 거대한 산맥을 축소한 것 같은 대지가 명수의 발밑에서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 볼 수 없었다. 연하고 성긴 그것은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어지러이 흩어지고 있었다. 대지와 맞닿은 그것은 땅 속으로 빠져들었다. 명수는 투명한 물속을 보는 것처럼 땅 속에서 그것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작은 씨앗이었다. 초록색 씨앗은 작은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싹을 내보냈다. 아기 손처럼 작고 부드러운 싹이었다. 어린 싹은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25시 마트’의 알바의 미소였다. 온기가 전해지고 세상에는 촉촉한 비가 내렸다.
명수는 깨달았다. 대지인줄 알았던 것은 거대한 고목 나무였다. 고목나무에서는 그녀의 미소가 새순이 되어 솟았다.
명수는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미소에게 인사하고 싶었다. 동시에 사과하고 싶었다. 성주야 미안해. 그건 내 진심이 아니야. 넌 귀엽고 예뻐.
11살의 명수는 두 팔을 뻗어 고목나무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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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은 상태로 잠에서 깼다. 한 동안 천장을 고목나무로 착각할 정도로 선명한 꿈이었다. 아니, 솔직히 선명한 것은 느낌뿐이었다. 꿈의 내용은 드문드문 기억날 뿐, 뭣 하나 분명한 것이 없었다. 고목나무에서 싹이 나는 것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정반대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은 분명했다.
가슴이 허망해질 정도로 인상이 깊은 꿈이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고요한 방에서 어떤 단서라도 찾을 것처럼 눈에 힘을 주고 천장을 노려보았다. 명수는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를 느끼며 누워있었다. 그건 기묘한 경험이었다. 하얀 방에 온 몸이 둥둥 뜬 채로 자신을 온전히 느끼고 감사하는 느낌이었다. 온몸을 덮고 있던 끈적끈적한 불쾌감은 없었다. 숙면에서 깨어난 상쾌함이 바람처럼 느껴졌다.
쿵. 쿵. 쿵.
하얀 대리석 조각처럼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던 순간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명수는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출입문을 봤다. 배달 전문점 자석광고판이 어지럽게 붙은 철문. 여태까지 방문객이 없어서 노크하면 어떤 소리가 날지 생각도 못 했던 그 문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작은 방이라 노크 소리가 대포 소리로 느껴질 정도로 크게 울렸다.
쿵. 쿵. 쿵.
노크 소리는 다시 들렸다. 명수는 당연히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방문객이 올 일이 없었다. 우편은 건물 밖의 우편함에 넣게 되어 있었다. 미숙한 우체국 직원이거나 옆집을 잘못 찾은 방문객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거슬릴 정도로 적당한 간격을 둔 노크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쿵. 쿵. 쿵.
건물 바깥에 전자자물쇠가 있는 구조의 건물이었다.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건물에 세를 들어 사는 세입자뿐이었다. 아니면, 주인이었다.
[누구세요?]
명수는 부리나케 문을 열었다. 건물 주인이 찾아온 것이라면 따질 것이 아주 많았다. 난방은 되지도 않고, 단열조차 안 되는 망할 건물에 대해 항의해야 했다. 방을 바꿔 주시던지 월세를 깎아 주셔야 합니다! 입을 달싹이며 문틈의 사람을 보았을 때, 목구멍까지 나온 말은 도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위아래로 검은 양복, 와이셔츠는 감청색이었다. 넥타이는 하지 않았고 한 겨울인데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머리는 짧았지만 왁스로 세웠는지 날카로운 인상에 어울리게 다듬어져 있었다. 겨울용 긴 코트를 입은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명수에게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누…구시죠?]
[일단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저… 안이요?]
[실례하겠습니다.]
허락의 말은 없었지만 양복을 입은 남자는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명수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떤 위압감이 명수를 밀어내고 있었다.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남자는 명수를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선글라스 너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명수는 불현듯 자신의 방에 낯선 이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저는 허락한 적이 없는데요.]
[뒤로 물러나신 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당신이 위압적으로 굴어서 그렇지!’
남자는 명수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절대 당신에게 해가 될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남자는 가죽장갑을 낀 오른손을 뻗어 명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인 명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이야!]
남자는 굉장히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른 명수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아주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명수는 마구 욕을 퍼부었다.
[너 뭐하는 새끼야!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머리를 쓰다듬지 않나? 정신 나갔어?]
남자는 시선을 명수에게 돌렸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가죽장갑이 비틀리며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움찔하는 명수에게 남자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단조롭지만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설명하지 못 했습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시간이 부족해? 그리고 뭐하는 짓이냐구!]
[설명한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아니, 주셨으면 합니다.]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남자는 진한 눈썹을 가졌다. 그리고 가늘고 긴 칼처럼 서늘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명수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남자는 목례를 했다.
[제 이름은 ‘장현승’이라고 합니다.]
현승은 코트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명수는 그걸 받아들자마자 읽었다. 까만색 종이에 흰 글씨로 장현승이란 이름만 적혀있었다. 뒤를 보니 전화번호가 있었다. 명함에 있어야 할 직책이나 소속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직업상 구두로 인사드릴 일이 많다보니 명함에는 연락처 밖에 없습니다.]
명수는 화가 난 것보다 어리둥절하고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그를 살폈다. 양복은 절대 싸구려가 아닌 고급이었다. 정신 나간 작자라면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양복차림으로 정중한 말투를 구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의문이 현승이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수는 현승의 정중한 태도에 이미 화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아, 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잠시 앉아 주시겠습니까?]
명수는 아까 불같이 화를 내던 것과 달리 순하게 앉았다. 무언가 자신의 어깨를 누른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현승은 구두도 벗지 않고 현관에 그대로 앉았다. 명수는 그제야 현승의 왼손에 들린 서류 가방을 발견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무시하고 현승은 똑바로 명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것이……?]
현승은 잠시 깊게 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우선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제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고객님께 피해가 가는 일은 없습니다.]
명수는 현승이 ‘고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반응했다. 세일즈맨인가.
[예, 뭐. 좋아요.]
하지만 아침에 꾼 꿈 덕분에 마음이 편한 상태인 데다가, 딱히 할 일도 없던 명수는 흔쾌히 허락했다. 호기심이 동했다. 고급 양복을 입은 세일즈맨이 무엇을 팔러 왔을까? 그것도 싸구려 플라스틱 그릇 하나 제대로 못 팔아줄 고객이 있는 ‘명수의 집’에 문을 두드리며 말이다. 기이한 행동도 궁금했다.
[시작 해봐요.]
명수가 들은 이야기는 확실히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는 말이었다. 그건 완전 미친 헛소리였다.
- 7 -
예전에 들었던 노래 가사가 생각날 이야기였다.
‘냉장고를 열면 코끼리가 있고, 코끼리 코 속에 맛있는 팥빙수, 팥빙수 색깔은 진한 분홍색.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어느 인디 밴드가 정신 나간 목소리로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명수가 현승에게 들은 이야기는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니, 믿는 수준을 떠나서 아주 잘 쓴 헛소리였다. 명수는 네이트 판에 올리면 댓글이 꽤 달릴 헛소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아주 정중하게 이야기를 전했고, 명수가 흡족할 조건도 제시했다. 문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명수는 자신 앞에 놓인 현금 500만원과 커다란 상자를 노려봤다. 현금은 하얀 종이 띠가 둘러진 빳빳한 오만 원 백장이었다. 커다란 상자는 옆으로 밀어뒀다. 당장은 저 상자 속의 내용물보다 현금의 정체가 궁금했다.
‘위조지폐일까?’
이렇게 많은 지폐 다발을 본 적이 없었다. 명수는 종이 띠를 뜯어냈다. 그리고 지폐 다발을 들었다. 백 장의 무게는 생각보다 상당했다. 위조지폐를 확인하는 방법을 기억나는 대로 하나씩 시도해 봤다. 가운데 점선이 있는지 확인하고, 빛에 비춰봐 숨겨진 그림이 나타나는지 확인했다. 스무 장쯤 무작위로 꺼내 확인할 때까지 모두 진짜 돈처럼 보였다. 일련번호가 순서대로라는 점만 빼면 수상한 것은 없었다. 아니, 은행에서 새 돈만 백 장 뽑는다면 일련번호가 순서대로일지 모른다. 명수는 이처럼 큰돈을 본 기억이 없다. 따라서 이런 일은 알지 못 했다.
명수는 돈을 적당히 덜어내어 지갑에 넣었다. 지갑은 평소에 먹던 양 이상을 먹어서인지 소화불량에 걸린 뱀처럼 보였다. 잘 안 접히는 지갑을 펴진 상태로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농협 은행에 들어갔다. 근처에 큰 메이저 은행은 한참을 걸어야했다. 명수는 그런 위험부담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현금지급기에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지나가는지 한참을 살피고 나서야 명수는 안심하고 현금지급기 앞에 섰다. 그리고 체크카드를 밀어 넣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자 익숙한 화면이 떴다. 입금, 출금, 계좌이체 여부를 묻는 화면이었다. 명수는 체크카드가 생기고 처음으로 ‘입금’ 버튼을 눌렀다.
현금지급기가 열리고 돈을 넣으라는 말이 나왔다. 명수는 바짝 마른 입술에 혀를 댔다. 차갑고 까칠한 느낌이 났다. 혀까지 말라있어 입술은 쉽게 적셔지지 않았다. 명수는 지갑을 꺼내 돈을 넣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차분히 열까지 셌다.
‘위조지폐면 당연히 거절당하겠지.’
그리고 눈을 떴다. 차분하게 잔액을 확인한 명수는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참으려 했다가 끄으 하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잔액이 껑충 뛰어있었다. 위조지폐가 아니었다. 진짜 현금이었다. 명수는 남은 돈도 차례로 입금했다. 하지만 거절되는 일 없이 모두 입금 되었다.
‘세상에 진짜 돈이야.’
바닥이 찢어진 주머니에서 쌀알이 새는 것처럼 명수는 실실 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내가 진짜 돈 500만원을 두고 간 것이다. 한참을 킬킬 거리고 웃었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무슨 범죄에 연루 된 돈일 수도 있잖아!’
명수는 의혹을 바로 떨쳐냈다. 어떤 식으로 연루된 범죄인지 몰라도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경우는 보지 못 했다. 그 흔한 계약서나 서약서도 없었다. 말 그대로 돈을 두고 나간 것이다. 사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게 떨치지 못할 의혹마저 가을 낙엽처럼 쉬이 떨어져나갔다. 명수는 남은 돈을 들고 무엇을 할 지 고민했다. 사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것도 아주 오래 됐기 때문에 뭘 사야할 지 몰랐다.
컴퓨터를 바꾸고 싶었다. 너무 낡아서 가끔 재부팅 해주지 않으면 퍼지곤 했다. 스피커는 왼쪽만 나오고 있었고 볼륨이 커지면 잡음이 심했다. 여가수의 노래도 늙은 노인네 기침소리처럼 바꾸는 끔찍한 퇴물이었다. 옷을 사야했다. 입고 있는 옷은 세탁을 자주 거쳐 이제 해지고 색이 바랬다. 밑창이 닳아 바닥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는 운동화도 바꿔야 했다.
현실적인 문제 뒤에 다가온 상상은 아주 달콤한 것이었다. 멋진 양복을 입고 편의점에 찾아간 자신의 모습. 그리고 명수를 아주 다른 사람처럼 바라보는 아르바이트 그녀의 모습. 귀까지 걸린 입을 누가 볼까 싶었다. 명수는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엄청난 나날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확실했다.
- 8 -
양복. 구두. 넥타이. 시계. 최신형 컴퓨터와 스피커. 그 밖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사고도 돈은 잔뜩 남았다. 처음 입는 양복은 굉장히 어색했지만 꽤 그럴 듯 해 보였다. 돈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가격표를 전전긍긍하며 살필 필요 없이 원하는 것을 고르면 됐다. 명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돈에 의한 자유를 느꼈다.
자신감이 생겼다. 이대로 간다면, 오늘이라면 편의점 알바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시나리오도 떠올랐다. 사실 그 날은 정말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고. 그래서 편한 차림으로 찾아간 것이라고. 나는 어떤 대기업의 유망주인데 오늘은 일하다 틈이 나서 왔다고.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연스레 말을 거는 편이 좋겠어. 그래야 궁금해 하지 않겠어?
명수는 어색한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못 할 행동이었다. 마음먹기까지 적어도 다섯 번은 고심하던 명수였다. 오늘의 그는 달랐다. 빳빳한 양복만큼이나 자신감이 꼿꼿하게 섰다.
편의점 문을 들어서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소심한 과거의 명수로 돌아가 그는 편의점 안쪽 음료코너까지 들어갔다. 편의점 그녀의 목소리는 명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통화 중이었다.
[아냐. 괜찮아. 걱정 마.]
명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가늘고 맑은 목소리였다. 어딘지 모르게 하얀색 깃털이 연상되는 목소리였다. 첫 사랑, 성주에게 해주고 싶던 말이 떠올랐다. ‘넌 백조처럼 아름다워.’ 오늘의 백조는 그녀였다.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 오늘은 이름을 알아내야지.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명수는 음료를 하나하나 살피는 척하며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응. 자기도 조심하고. 사랑해.]
깃털이 찬바람에 날아 가버렸다. 명수는 방금 들은 말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 했다. 자신의 손에 든 음료수의 차가운 느낌과 등골에 스치곤 간 찬바람의 차이를 느끼지 못 했다. 냉장고의 문이 탁 닫히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응. 자기도 조심하고. 사랑해.’
명수는 멍하니 계산대로 갔다. 그녀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조금 다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투명한 호수 밑에 비치는 조약돌처럼 언뜻 비치는 미소. 정말 행복한 미소였다. 명수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길 바랐지만, 그 미소는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 저번에 그 손님.]
[안녕하세요.]
충격과 달리 말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타임 허밍 피는 분 맞죠?]
명수는 그녀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명수를 봤다. 명수는 가까스로 첫 날의 일을 기억했다. 당황하다 무심코 산 담배 이름이 ‘타임 허밍’이었다.
[아…. 기억하시네요?]
그녀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 그이도 같은 담배 피거든요.]
[그… 그이요?]
당황하는 명수에게 그녀는 수줍게 입가에 왼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들뜬 기분에 실수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명수는 왼손의 반지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저번에는 발견하지 못한 반지였다.
[아, 제가 결혼을 좀 일찍 했어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초록색 타임 허밍을 꺼냈다.
[이 담배 피는 분이 많지 않은데. 덕분에 기억했어요.]
[그렇죠. 흔치 않죠.]
명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담배를 받아들었다. 마지막 희망도 무참히 산산조각 났다. 남자친구도 아니고 남편이었다. 허탈감이 가슴을 꿰뚫었다. 큰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명수는 돈을 건네자마자 밖으로 나섰다.
[저, 소…손님! 잔돈은 가져가셔야…….]
밖으로 종종거리며 나오는 그녀를 두고, 명수는 집까지 달렸다. 다시 한 번 찾아온 비참함과 함께 욕지기가 났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젠장!
가족도! 대학도! 여자도! 왜 내가 바라는 것은 꼭 엉망이 되는 거지!
양복에 구두 차림은 뛰기에 너무 불편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발목이 아팠다. 명수는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턱까지 찬 숨을 다잡았다. 겨울의 찬 공기가 목에 잔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숨을 차분히 고르고 엉망이 된 양복을 다듬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시간을 들여 차분히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리고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유보하고 싶었지만 이젠 아니다.
명수는 상자 속의 그것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것만 있으면……. 그것만…….
마치 주문처럼 혼잣말하며 명수는 계단을 올라갔다. 신도 벗지 않고 상자 속의 그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것을 사용했다.
- 9 -
[이제 좀 괜찮아요?]
화영은 명수의 어깨에 기댔다. 샴푸 냄새가 느껴졌다. 화영의 흐느낌은 거의 잦아들었다. 붉은 볼 위로 눈물 자국이 보였다. 명수는 손수건을 건넸다. 화영은 말없이 그것을 받았다. 명수는 한 팔로 그녀를 안고 다독였다. 턱 밑으로 그녀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겨울 강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 탓에 춥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였다. 떨고 있었다. 명수는 화영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명수 씨 아니었으면, 저는…….]
[그런 말하지 마.]
명수는 다정하게 다독였다. 화영은 조심스레 팔을 둘러 명수를 안았다. 얼마 간 침묵이 맴돌았다. 자맥질하는 새 한 마리 없이, 강물은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밤하늘에 유난히 별이 많이 보였다. 공기는 포근했으며, 서로의 체온은 따뜻하게 전해졌다.
편의점 그녀의 이름은 화영이었다. 류화영. 참으로 고운 이름. 학창 시절 만난 선배와 이른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가 그를 너무 사랑했다. 가난한 형편에 고졸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다. 언젠가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자. 그렇게 다짐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집과는 반대 방향인 화원(花園)으로 가는 길이었다. 화영이 유난히 피곤해하면, 그는 프리지아 꽃다발을 건네곤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날도 프리지아 향기를 안고 귀가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술 취한 운전자 덕분에 그녀에게 날아간 것은 짧은 비보였다.
기댈 곳 없는 나팔꽃은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잃고 땅으로 추락한다. 그녀는 나팔꽃처럼 바닥을 기며 시들고 있었다. 화영을 다시 일으킨 것은 명수였다. 우연한 만남과 충동적인 술자리로 명수는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절묘한 만남. 둘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운명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실연의 상처는 아픔의 깊이만큼 반동을 갖는다. 슬픔의 수렁이 깊을수록, 다른 사람에게 빠져드는 속도도 빠르다. 우연 같은 만남이 더 이어졌다. 고마움은 호감으로, 호감은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화영은 그렇게 명수에게 빠졌다.
명수는 담배를 꺼냈다. 타임 허밍. 어둠 속에서 붉은 담뱃불은 이국적인 꽃처럼 타올랐다. 담배 연기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피었다. 화영은 무언가를 좇는 눈으로 담배 연기를 바라봤다.
[그이랑 같은 담배였죠.]
명수는 대답 대신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마셨다.
[그래도…… 난 당신을 그이 대신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알아.]
명수의 대답에 화영은 미소를 지었다. 전화 통화를 할 때 보여주었던 그 미소였다. 화영은 두 팔을 뻗어 명수의 목을 감았다. 화장품 냄새가 났다.
[고마워요.]
화영의 입술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닿았다. 따뜻한 체온이 입술에서 느껴졌다. 그녀가 내쉬는 숨결도 느낄 수 있었다. 입맞춤은 금방 끝났지만 여운은 충분히 길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화영과 명수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사랑해.]
[사랑해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고백이었다.
- 10 -
명수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웠다. 상자 속의 그것은 엄청난 효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 이상은 만들어내지 못 했다.
명수는 방에 옷도 벗지 않고 누웠다. 그리고 입술을 만져봤다. 따뜻한 체온과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안았던 팔의 감촉도 선명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가슴에 올려놓자 자신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그의 심장은 화영을 원했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명수는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그리고 커다란 상자를 열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는 그것은 대단한 능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명수는 회색 막대처럼 보이는 그 것을 꺼냈다. 그리고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명수가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시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담배보다 수배는 더 지독하고 강한 담배. 담뱃잎을 잘 말려 돌돌 말아 만드는 시가. 하지만 시가는 아니었다. 명수가 맨 처음 의심한 것은 ‘마약’이었다. 그것도 ‘마리화나.’
수백만 원을 쉽게 내놓는 현승이 건넨 것은 시가처럼 생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이 사용자의 희망을 들어줄 것이라 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불을 피우면 된다. 직접 빨아들일 필요 없이 시가의 향을 즐기는 것처럼, 그저 자연히 타도록 두면 된다. 하나를 온전히 태우면 완벽하게 희망을 이뤄줄 것이라 했다. 현승은 그것을 ‘백일몽’이라 했다.
[‘백일몽’은 원하는 것을 이뤄줄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더 강하게 염원하고 선명하게 그릴수록, 더욱 충실하게 재연해 줄 것입니다.]
백일몽은 마리화나가 아니었다. 마리화나는 기분을 가라앉고 편안하게 만들고, 향이 달콤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붙은 백일몽은 잘린 풀 냄새와 라벤더 향이 났다. 어떻게 마른 잎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였다. 진짜배기 물건. 마리화나보다 강력한 무언가.
[마약인가요?]
[마약은 아닙니다. 실제로 성분을 검사하면 불법적인 것은 아무 것도 검출되지 않습니다.]
현승은 자신 있게 대답했었다.
[새로운 합성 마약 같은 것 아닌가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것입니다. 다만 이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소수이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소수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현승은 강조를 위해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그 소수의 판매자입니다.]
명수는 침을 삼켰다.
[제 방문 목적은 아직 밝혀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을 달성하고 나서야 설명해드릴 수 있겠네요. 이건 굉장히 미묘한 문제라 섣불리 행동할 수 없습니다.]
현승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빨리 끝내고 돌아갔어야 할 일인데, 저로서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명수는 무심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약은 아니니 안심하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제 방문 목적을 위해서도, 고객님을 위해서도 좋은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가격은 제가 지불할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사기도 위협도 아닙니다. 일종의 손해배상금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승은 그렇게 말하며, 백일몽 한 개비를 집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실제와 똑같이…. 아니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이루어 줄 것입니다. 바로…….]
현승은 상자를 닫아 명수에게 건넸다.
[…… 꿈속에서 말이죠.]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7 00:58: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