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15년 동안 친구처럼 지낸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인 70분간의 연애는
제목 그대로 약 70분 동안 남녀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로맨틱 코미디 연극이다.
스포일러라고 하기엔 네이버에 리뷰 한 번만 쳐도 나오는 수준의 스토리가 이 연극을 구성하고 있는
전부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스토리를 공개한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오랜 친구인 두 남녀가
전날 일로 티격태격하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니까.

스토리가 진부하지만 이 연극은 스토리를 보완할만하고도 남을 것들을 만들어낸다.
전략의 일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남녀와 웨이터 하나만 나오는, 세트 한 번 바뀌지 않는 이 연극의
무대는 수십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소극장에서 관객들과의 친밀함을 높이고 연극으로의 집중력을 높인다.
극장이 컸더라면 아마 조촐한 카페의 분위기와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극의 규모가 작고 출연배우도 몇 명 되지 않으며 큰 세트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연극은 대사 위주의 연극이다. 배우 세 명이 나오지만 세 명 중 한 명은 대사가 없으므로,
이 연극은 오로지 남과 여, 두 사람만의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연극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싱싱하고
톡톡 튀는 젊은 언어의 향연, 청춘남녀의 감정싸움, 시종일관(끝부분을 제외하고) 상대를 몰아붙이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대사의 톤들은 스토리가 뻔한 이 연극을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훌륭히 지탱하는
가장 큰 무기이다. 적절한 제스처와 함께 70여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두 주인공의 연기력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극본이 가지고 있는 대사의 힘을 당연히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그만큼 두 배우의 연기는 대단했다)

두 배우의 열정과 능력은 이 연극이 막이 나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막이 전혀 나누어져 있지 않아 70여 분 간이나 고성 속에 오고가는 정신없는 남녀의 대화를 듣다보면
이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어느새 망각하고 만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 연극의 긴장감 역시 끊어질 것
처럼 팽팽한 상황. 감정의 다양한 구슬들을 한 실에 능숙하게, 수십 분에 걸쳐 꿰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임은 연극 문외한인 나도 느꼈다.(나는 사실 듣기에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큰 줄거리가 진부한 대신 그 속에 녹아있는 사건들-남녀가 서로 오해하고 있었거나 공유했던 사건과 기억
들-은 기발하되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소재들이다. 오히려 이렇게 남과 여 사이에
얽혀있는 에피소드들을 밝히는 것이 이 연극에서는 스포일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일어날 수 있는 큰 틀 속에서 이 연극 속 남녀가 사랑에 접근하는 방식과 그들만의 짠한 에피소드들을
엿보는 것이 이 연극을 관람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 연극에서처럼 서로가 서로의 사랑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남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 계기’인데 그것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데 있다.
(아이러니한가?)
짧은 연극이어서 그랬을 수도, 혹은 작가의 역량부족이었을 수도 있지만 중후반에 등장하는 사랑 확인의
방법과 대사가 조금 더 세련되게 장치되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남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애초에
이런 설정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진부한 연애이야기(사실 연애 이야기는 늘 진부하다)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고 생각해볼 때, 누구나 특별한 자신의 연애를 꿈꾸지만 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연애를
영위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사정에 비추어볼 때 늘 조금 더 달콤한 사랑을 꿈꾸는 인간의 본성과 연관된
것일 뿐 연극 자제에 대해 느낀 비난의 감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목마른가? 혹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회의가 드는가? 그렇다면 한 번 시원하게 웃어재낄 준비를
하고 대학로로 향해 조금은 발랄한 이런 부류의 연극을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뭐 나처럼 화요일 40%
(2인기준) 할인권을 끊어서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갈 수도 있다. 아, 끝나고 사연추첨을 통해 선물도 준다.
그러나 나는 선물을 받아서 이렇게 긍정적 리뷰를 쓸 만큼 착한 사람이 추호도 아님을  역시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