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똑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5시 15분.이 시간이면 언제나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눈앞에 켜져있는 TV 화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의식은 줄곧 건너편 건물의 창문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한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5시 40분.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향했다. 언제나 똑같은 속도, 똑같은 경로로 걸어가는 그녀. 그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렌즈 가득히 비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황홀함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빨래를 걷는다. 자신의 손가락을 확대해서 바라보고 있을 그의 시선을 생각하니 손가락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녹아내릴듯한 열기에 떨려오는 손가락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그녀는 빨래를 모두 걷고 거실로 되돌아갔다.

  거실 바닥에 앉아 걷은 빨래를 단정히 개어서 정리한다. 빨래를 갤 때마다 그녀는 작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 날 기분에 따라 부르는 노래를 달랐지만,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렌즈 가득히 비친 자신의 입술을 보며 그는 그 움직임에 맞춰 노래 부르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입술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절로 뜨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빨래를 모두 개고 나면 그녀는 책을 읽는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이따금씩 내용을 암송하기도 하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의식은 렌즈 너머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시계 바늘이 6시를 가리키면 그녀는 책을 덮고 욕실로 들어간다. 욕실의 문을 닫고 옷을 벗어 알몸이 된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그녀를 보지 못한다.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지만 몸의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시야에서 벗어난 만큼, 그는 그녀의 나신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떨리는 손으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욕조 속에 잠겨있는 자신의 몸을 어루만졌다.

  30분이 지나면 그녀는 욕실에서 나온다. 벗은 옷은 욕실에 그대로 남겨둔 채 목욕수건 한 장만으로 달아오른 몸을 가린다. 수건 한 장의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침실로 들어간다. 그 사이, 그녀는 자신의 몸을 샅샅이 흩고 지나가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젖은 머리카락과 붉게 물든 얼굴에서부터,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물방울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눈에 드러났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침실로 들어가 옷을 입는 동안에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자 그 기대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열망으로 손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마음에 드는 연녹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다시 그의 시야 안으로 되돌아왔다.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넓은 부엌을 이리저리 오가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쫓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열띤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