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많았는데, 관객은 적었던, 설경구라는 최고의 블루칩과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한 깜찍한 김태희를 내세운 나름대로 대작 <싸움>은 첫 제작 단계서부터 아마도 실패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그다지 새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D-war가 당한 수모의 길을 비스무리하게 가면서-이른바 스토리가 없다는-흥행에도 썩 신통치 못한 결과를 얻었다.(D-war는 찬반양론이 거센 가운데에서도 흥행에는 성공했는데 말이다.)

돈이 무서워 영화관에 가서는 보지 못했던 이 영화를 며칠 전 DVD출시에 맞추어 보았다는 글은 이미 고파스에 한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다 보고 참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사람들의 혹평에 부화뇌동하는 이른바 ‘냄비’는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영화를 곱씹었다. 그리고 설날 차례를 지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컴백을 단행, 이렇게 그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곱씹은 영화를 다시 한 번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곱씹은 <싸움>은 침을 튀겨가며 비난할 만한 저질 영화는 아니었다. 나름 코믹했고, 나름 긴장감 넘치는 액션 씬도 있었고 무엇보다 김태희와 설경구(이하 본인의 관심도+가나다 순)도 있었다. 나름 감동적일 뻔 했던 결론과 유쾌하게 비트는 마지막 반전도 괜찮았다. 마지막에 너무 티 나는 우유광고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조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이 영화를 싸잡아서 매도했단 말인가. 본 사람은 그렇다 치자. 요새 캠판도 구하기 힘든 국내 영화를 다운 받았을 리도 없는데, 이 영화에는 대부분 비난 일색이었다. 보지도 않고.

 이 ‘보지도 않고’라는 구절에 이 영화가 홀라당 망한(아마도 제작사 기준으로)이유가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사람들은 정말 ‘보지도 않고’ 이 영화가 재미없을 것이라 판단했으며, 보지 않았다. 도대체 왜? D-war는 보기라도 하고 매도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왜 <싸움>은 그러한 평가의 도마에조차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곰곰이 그 시기의 나를 되돌아보자. 이렇다 할만한 재미있는 영화는 없었다. <색즉시공2>와 <나는 전설이다> 등 확실히 잡아끄는 영화가 없는 가운데 스크린도 많이 동원한 <싸움>은 분명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의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색즉시공2>는 그저 그럴 것이란 확신에, <나는 전설이다>는 내 타입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리고 <싸움>은...<싸움>은....왜?

 그 비밀은 졸렬한 마케팅 전략에 있었노라고 의심한다. <싸움>은 애초에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모든 것을 까발려 놓고 시작한다. 김태희는 연기가 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유치원 학예회도 아니고 왜 연기가 ‘는’ 것을 굳이 보러가야 한단 말인가! 김태희가 내 딸도 아닌데), 설경구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식의 배우 마케팅은 배용준을 사모하는 일본 아줌마들에게나 먹힐 방식이다. 이제 더 이상 이름값만으로 흥행을 좌우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영화의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잘 아는 사실이다.(아직 황정민 만이 크게 말아먹은 영화가 없다...이미 설경구도 <역도산>으로 한 번 진하게 말아먹지 않았던가. 물론 그 과정에 제작자의 고집이 컸다지만)

 인물 중심의 화제 몰이도 졸렬했지만, 정말 연기가 늘은건지 성량이 늘은건지 감이 안 오는 김태희의 샤우팅과 함께, 인과관계도 어설프게 설정된 주연들 사이의 증오를 ‘액션’으로 풀어냈노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리고 그 장면들을 TV의 영화소개 코너에 내보낸다. 그나마도 어설픈 액션씬을 내보냈다. 애초에 스토리로 큰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을 미리 예감한 초조함에서인지, 혹은 배우들의 무게감에 기댄 자신감이었는지, 이 영화는 애초에 마케팅 단계에서 영화의 전반을 ‘거의 다’ 여과 없이 까발려 대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10분도 영화관에 앉아서 보지 않은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어떻게 이 영화를 ‘아는 것처럼’ 까대게 되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 상황에서 그 영화를 보겠다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중천> 때보다 향상된 김태희의 연기를 보러 가야하는 것이냐, 그나마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는 설경구의 연기를 그저 ‘서커스’보듯 보러 가야하는 것이냐, 이미 다 본 액션과 스토리를 한 번 더 곱씹기 위해 가야하는 것이냐, 그만큼의 영상미는 있느냐, 등등의 온갖 핑계가 내 마음을 동여매었던 것이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싸움>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가 망한 영화를 보자. <나는 전설이다>가 그나마 손님을 몰고 스쳐지나간 뒤 뒷북 친 <30 Days of night>이 바로 그 것이다. 두 영화를 다 본 내 생각으로는, 그 영화는 좀비 영화라는 기존의 호러, 혹은 고어(이 영화의 경우 고어적 측면)적 기대감을 <나는 전설이다>보다 영상적으로는 훨씬 충족시킨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영화는 그 영상이 바로 딜레마였다. 예고편에서 충격적인 영상을 한 컷이라도 보여주기에는 그 영화는 그것이 핵심이었다. 그것이 나간다는 것은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영화의 예고편은 그런 충격적 영상의 언저리만을 실루엣처럼 보여주고, 결국 <나는 전설이다>와 차별화할 점을 찾지 못한 그저 시기를 잘못 탄 좀비영화로 전락했다. <나는 전설이다>는 그나마 선빵을 쳤고, 윌 스미스가 있었다. <나는 전설이다>에 나오는 좀비들이 그 동안 나왔던 느릿한 동작이 아닌 뛰어다닌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낀 친구에게 <30 Days of night>에 나오는 좀비들이 더 역동적이고도 무섭다는 이야기를 ‘입으로’ 전해야 함이 안타까울 정도로 괜찮았는데 말이다.

 각설하고 <싸움>은 누구 말마따나 ‘비난의 수위에 비해서는’ 괜찮았다. 김태희는 성숙했고, 설경구는 여전했다. 액션과 화면 구성은 스피디했으며 조연들도 괜찮았다. 그러나 물론 내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영화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포장을 하면 더욱 설레는 생일 선물과 같은 것이다. 그 포장을 주인공이 직접 뜯게 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내용물이 좋아서 포장이 어떻든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정이 되지 않아 200원짜리 츄파춥스를 넣었다면 200원 정도의 감사는 받자. 좋은 배우들과 열심히 만든 이 영화, 내용물을 미리 너무 까발렸다.

 이 영화의 패인 분석이 맞았다는 전제하에, 과연 마케팅의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자신감이었을까, 혹은 불안감이었을까.

                                                                                                                         2008. 2. 8
                                                                                                                         writtenjohn

p.s 포스터에 있는 글귀 정말 와닿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ㅋㅋㅋ